이준석 : 해석을 독점당한 세상의 우울한 프로필

정작 이준석의 경제관은 아무도 공격하지 않았다.

by 박세환

이준석이 정치적 올바름을 조롱할 땐 제도권 전체가 그를 찢어발기기 위해 달려들지만, 그가 연금을 빌미로 좌파경제를 모독하고 친시장 친자본적 입장을 피력할 땐 온 세상이 두 팔 벌려 바다처럼 그를 끌어안는다.

이준석이 이대남들의 입장을 대변할 때 제도권 정치는 가장 날카로운 송곳으로 그를 마구 찔러대지만 이준석의 경제관이 힘없는 밑바닥 노동계층을 타격할 때 그건 그냥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줄 아는 냉철한 시각'이 된다.

이준석이 페미니즘과 대립각을 세우며 여성계 대감마님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건 도저히 넘길 수 없는 중죄지만 이준석이 '지자체 자율화'라는 명목으로 최저임금과 근로시간제한을 무력화해 하층 노동자들의 삶을 박살 내려했음은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다.


신성한 토론 중에 감히 여성의 생식기를 입에 올리는 천박함은 용서할 수 없지만 기본소득을 조롱하고 좌파경제를 모독한 건 결코 잘못이 아닌 이 세상에

‘이준석의 여성혐오를 비난하는 페미니스트들’만 넘치고, ‘이준석식 신자유주의를 타깃으로 삼는 좌파’는 없기에

그의 발언을 문제 삼아 도덕적 매장을 가하는 그 순간까지도 이준석의 경제관은 끝내 논쟁되지 않으며
아무도 공격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그것은 틀리지 않았던 것."이 된다.


그러니 이준석이 욕을 먹고 언젠가 정치판에서 완벽히 무너지는 날이 올지라도, 그가 남긴 경제관은 제대로 반격받은 적 없이 성역화되어 제도권이 사랑하는 온실 속에서 더욱 풍성하게 뻗어나가게 될 것이다.


능력, 경쟁, 성과, 하비에르 밀레이, 실패자는 정당하게 굶어 죽는 게 공정, 복지는 퍼주기, 복지는 도둑질, 부자감세, 쉬운 해고, 규제철폐, 각자도생, 약육강식, etc...





세상의 대감님들은 문화적으로 ‘민감한 도덕성’을 강조하면서 경제적으론 가장 무자비한 시스템을 용인했다.

경제는 친시장 친자본 + 문화는 페미피씨

이렇게 '무엇이 올바름인지'가 합의되었고, 이후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이 해석틀 내로 끼워 맞추어질 뿐이다.


이준석의 성공은 시장과 능력주의가 옳았기 때문으로. 이준석의 실패는 정치적 올바름의 거룩한 대의를 거슬렀기 때문으로.

이준식이 뭘 하건 모든 결과물은 세상의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듯 대감님들이 정해놓은 결론으로 귀결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대감님들의 이념적 합의안'은 틀리지 않은 채로 살아남는다. 이준석의 승패는 있어도, 그에 대한 해석의 선택권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정답도 오답도 이미 결정돼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고, 아무것도 질문할 수 없다. 우리는 그저 '해석권을 독점한 대감님들의 각본을 바라보며, 고작 댓글로 투덜거리는 귀찮은 손가락들'일뿐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은 이준석을 죽이거나 살리거나 하는 그런 게 아니다. 우리는 대감님들이 독점한 해석권 자체를 가져와야만 한다. 그전까지는 이준석이 성공해도 실패해도 기뻐할 수 없다.

해석권이 '저들'의 손아귀에 있는 한, 이준석이 어디서 무엇을 하건 그의 존재는 자본과 페미니즘이 손잡은 지옥 원탁회의의 우울한 프로필일 뿐이다. 시장은 성역으로, 페미피씨에 대한 비판은 금기로 만들어버린 저주받은 무대 위에선 그를 경멸하는 것도, 그를 영웅화하는 것도 결국 같은 놀이에 불과한 것이다.


지금 공론장에 넘쳐나는 '이준석'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를 한없이 심란하게 만드는 이유이다. 그것이 칭송이건, 비난이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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