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의 언어를 빌려온 비자유주의자들에게
정치의 무대에서, 어떤 모순은 반복적으로 여러 시대와 국가를 넘나들며 되살아난다. 바로 좌파 정치운동이 자유주의적 언어를 빌려 쓰면서, 정작 그 내면과 실천은 철저히 비자유주의적이라는 모순이다.
마르크스 이후 좌파는 단순한 사상 비평을 넘어, 현실을 바꾸는 ‘실천’을 핵심으로 삼아왔다. 이는 많은 좌파 사상가들과 운동가들이 이론을 넘어 행동으로, 운동으로 나아가게 만든 동력이었다. 하지만 태초 마르크스가 언급했던 ‘실천’은 ‘혁명’의 다른 표현이기도 했다. 폭력적 변혁, 즉 기존 체제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물리적 전복 말이다. 그러한 목표 달성은 개별적 자율성을 존중하는 방식의 조직운영과 이에 기반한 느슨한 연대만으론 가능할 수 없었고, 반드시 강도 높은 통제와 위계질서, 일사불란한 지령체계가 요구되었다.
그래서 많은 좌파운동 조직들이 군대처럼, 혹은 광신적인 종교집단처럼 운영되었다. 이견은 배신으로 간주되었고, 불복종은 숙청으로 이어졌다. 쏘오오련, 중국, 캄보디아 등 현실 사회주의권이 보여준 전형적인 전체주의적 특성들은, 단지 권력의 타락이라기보다는 '애초에 그런 방식으로 싸우고 승리해 온’ 운동권 정치조직들의 조직문화가 그대로 국가 운영의 원리까지 승격된 것으로 보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문제는 많은 좌파 조직들이 현실정치의 무대 위에선 종종 자유주의의 언어를 입에 담는다는 점이다.
해방, 해체, 다양성, 포용, 저항, 해방, 등등..
구호는 “다양성과 해방을 위한 투쟁단”이지만, 현실은 내부 비판자를 가차 없이 탄압하는 폐쇄적인 조직폭력. 자유주의 언어의 외피 아래 폐쇄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조직문화. 이 서로 사맛디 않은 특성들을 양손에 따로따로 지닌 채, 많은 좌파 정치조직들이 그렇게 살아왔다.
“우리는 저 가증스러운 극우 파쇼 놈들을 무찌르고, 이 땅에 진정한 자유와 해방, 참된 민주주의를 가져오기 위해 싸운다!”
저들 세계의 익숙한 구호. 하지만 실제 그들이 권력을 잡고 난 뒤, 혹은 자치적인 영역을 확보한 뒤 보여주는 모습은 그 언어와는 거리가 멀다.
‘다름’에 대한 포용은 평균 이하이고, 내부 비판자는 침묵시키거나 제거한다.
반서방 민족주의 NL에서부터 페미니즘-피씨 운동권까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 모순은 매번 유사하게 반복된다.
"지금 대 민주화 선배님께서 말씀하시는 데 집중 안 하고 딴청을 피워? 너희 이런 썩어빠진 정신머리로 민주주의 쟁취할 수 있겠어? 자유와 해방 쟁취할 수 있겠어?"
"안 되겠다! 너네 학번 전부 학교 광장에 집합해! 오늘 화끈하게 빠따질 함 가자!"
오늘날 세계의 정치시장에서, 소위 진보 좌파연 하는 이들의 언행 비일치에 대한 비판과 조롱은 일상적이고도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흔한 공격 패턴이 되었는데
이럴 거면 차라리 말과 실천을 일치시키는 것이 낫지 않은가?
더 이상 상대주의, 제멋대로 자유분방, 다양성, 포용 같은 자유주의의 언어를 빌려 쓰지 말고 당당하게 말하라는 것이다. 자유 내지 다양성을 포기하고, 폐쇄적 조직성과 통제, 집단의 가치를 '정직하게 대중에게 공표’하자.
“우리는 자유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유와 상대주의가 아닌 명백한 '옳음'의 편이며, 우리에게 반대하는 목소리들은 응당 제거되어야 한다. 우리는 폐쇄되고 통제된 공동체를 원하며, 이질적 가치와 감정은 파괴되어야 한다.”
이러면 물론 말도 많고 탈도 많겠지만, 최소한 지금처럼 "다양성을 외치며 린치를 가하고", "자유를 외치며 검열을 일삼는" 어처구니없는 내로남불은 피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자유주의 구호’와 실질 사이의 위선 비판들로부터 비로소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
‘다양성 옹호’라는 그럴싸하면서도 실현이 불가능한 허상을 걷어내고서 여러분들이 그토록 원한다는 변혁과 통제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전략과 실천 간의 괴리로 인해 계속해서 반감과 회의, 좌절밖에 남지 않는다. 향후 초래될 파장이 두렵다는 이유로 '통일성'작업을 계속해서 회피한다면, 여러분들이 외치는 변혁은 그저 ‘구호만 시끄러운 허상’으로 몰락하게 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좌파 내지 진보연 하는 이들에게 진절머리를 느끼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이념 때문이 아니라 그 이념을 포장하는 방식, 말과 실천의 괴리, 그리고 그 뻔뻔함 때문이다. 세상 어떤 정치조직이건 기본적으로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대중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과거 군부독재정권 당시 정부가 즈들 말 안 듣는 아해들 몽둥이로 뚜드려 팰 때 매번 들먹였던 명분이 '방어적 민주주의'였다. 최순실이 통진당 강제해산 시킬 때 나온 명분도 '방어적' 민주주의였다. 추가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때, 이스라엘이 이란을 폭격할 때 들먹였던 명분 역시 '선제적 방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