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세상을 불태웠을 것이다

모두가 파괴를 원했기에, 누군가가 시작했을 뿐

by 박세환

한때 블리자드의 크래프트 시리즈와 함께 전략 시뮬레이션 시장을 양분했던 '커맨드 앤 컨커'라는 게임 시리즈가 있었다. 이 게임의 흥미로운 한 장면.


2차 세계대전의 파국을 지켜본 아인슈타인 박사는 역사를 바꾸기 위해 타임머신을 만들어 과거로 돌아가 아직 권력을 잡기 전의 젊은 히틀러를 암살한다. 악의 싹을 잘랐으니 이제 사랑과 평화로 가득한 꿈과 희망의 미래가 펼쳐지겠지?

하지만 현재로 되돌아온 아인슈타인은 새로운 악몽을 마주한다. 히틀러는 사라졌지만, 이번엔 스탈린이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고 있었다. 히틀러를 지운다고 역사의 큰 틀이 바뀌는 건 아니었던 것이다.




저명한 예언가들의 2차 대전 예언들은 '우연히 히틀러가 탄생해서' 맞은 것이 아니라, '히틀러와 같은 빌런이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세상의 조건 때문에' 실현된 것이다. 비과학적이고 초자연적인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보다 이성적인 측면에 대한 이야기이다. 간단하게, 2차 대전이 발발하던 시기의 세계는 이미 그러한 파국이 '예정된' 정신문화관념적 상태에 놓여 있었다는 말이다.


니체는 신의 사망을 선언했고, 칼 슈미트는 정치를 적과 동지의 구별로 환원시켰다.
평화나 정의, 윤리, 도덕과 같은 개념들에 대한, ‘문명의 진보’라는 개념에 대한, 더 나아가 인간 그 자체를 향한 거대한 회의감이 세상을 뒤덮고 있었다.



서로 죽고 죽이고, 결국 자신도 파멸해 버리자는 염세와 위악의 마음이 많은 이들에게 퍼져나갔다. 대재앙을 불가피한 결론으로 만들어낸 시대정신이었던 것이다. 그런 토양 속에서 전쟁은 피할 수 없다. 히틀러가 시간선에서 없어졌다 해도, 히틀러의 배후에 이미 넉넉하게 자리 잡고 있던 ‘파국의 정신'은 어떤 식으로 건 자신의 존재를 분출하고야 말았을 것이다. 허틀러든 히둘라든, 다른 누군가가 등장해서 그 '파멸의 임무'를 기어코 달성하고야 말았을 것이다.


거대한 파국은 사람들의 정신적 구조 속에 내장된 미래였고, 예언들은 단지 그 도래를 조금 앞서 지적했을 뿐이다.




많은 이들이 지금 시대를 "100년 전의 재탕"이라고 부른다. 나 역시 그렇게 느낀다.
진보를 자처하지만 노동계급의 삶에 관심도 없는 가식적인 엘리트 좌파들.
그들의 위선을 혐오하며 점차 극우 파시즘에 눈길을 주고 있는 대중들.
지금의 '대안우파'를 과거 파시즘의 리브랜딩 정도로 본다면, 작금의 세상은 조지 오웰이 백 년 전에 진단하고 한탄했던 당시와 매우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진보’라는 이름의 위선은 결국 윤리와 정의, 사랑과 평화라는 말들 자체를 의심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의심은 모든 가치를 회의하고, 결국은 자기 삶까지도 부정하게 만든다.
그 의심과 회의 끝에 오는 것은?

“이 저주받은 빌어 처먹을 세상! 그냥 모조리 다 파멸해 버리자.”

만인과 만인이 서로를 죽고 죽이며 부수고 증오하고, 그렇게 다 같이 파멸하자는 위악의 정서. 이것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십억의 머리와 심장들을 거치며 인류의 새로운 합의(?)로 떠오르고 있는데, 이토록 위악적 정신문화로 가득한 세상에 또다시 히틀리든 하툴리든 뭐시기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 아니겠는가?


전쟁은 시대정신과 문화적 흐름 속에서 먼저 그 뿌리를 내리게 된다.

설령 누가 그걸 예언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예정된 파국은 애써 다른 누군가의 입을 빌리지 않고서 스스로를 실현해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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