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을 종교로 받드는 사람들
나의 정치성향은 원래 대안 우파에 가까웠다.(물론 그때는 ‘대안’ 우파라는 단어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우파라고 칭했지만 지금 기준으로 보면 빼박 대안 우파다.) 그러다 스스로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특히 경제이념을 좀 뒤져보다가 우파에서 주로 밀었던 자유 시장이라는 것이 온통 모순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후 극심한 경멸감과 함께 좌파로 전향했다.
우파였을 때나 좌파로 넘어갈 때나, 그리고 지금까지도 내 주변엔 좌파가 없었다. 나 빼고 다 우파이고 난 우파들 속에서 피어난(?) 자생 좌파라, 친 좌파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좌파로 성장(?)한 다른 이들과는 여러 가지로 많이 달랐다. 특히 정서적으로 그랬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지지 여부를 떠나서, 나는 다른 좌파들과 정서적인 간극이 심하다는 것을 종종 느끼곤 했다.
나에게 있어서 좌파사상이란 그냥 그저 ‘조금 더’ 합리적으로 보여서 선택한 상품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이 반대편의 것보다 더 이성적이고 체계적으로 여겨지는 한,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 명확하게 틀렸음을 입증받지 않는 한, 나는 아마 이쪽 이념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나의 계산(?)이 틀렸음을 명확히 입증받는다면(ex : 모순 없는 완벽한 자유시장이란 것이 실현 가능하다고 밝혀짐), 나는 기꺼이 지금 이념을 쓰레기처럼 집어던져버리고 우파진영으로 전력 질주할 의사가 있다.(물론 전향 이후 지금까지는 한 번도 그런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다.)
나는 이미 그것을 한번 이행했던 적이 있는 사람이며(우→좌), 적어도 나의 생각으론 이것이 바로 ‘이념’을 대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바람직한 태도라 본다.
…
내가 아닌 다른 좌파들은 좀 다른 것 같았다. 적어도 나의 눈에는, 그들은 종종 이념이 아닌 종교를 믿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것도 기독교 이슬람교식 계시 종교. 의문을 허락지 않는, 절대복종은 최고의 미덕.
기독교나 이슬람교 류의 종교는 애초에 이성으로 판단하면서 믿는 것이 아니다. 이들 종교에선 인간 이성의 불완전성을 시작부터 가정하고 들어가며, 이에 기반하여 인간의 불완전한 이성으로 신을 판단하고 계산해보려는 태도를 배격한다. 무언가를 의심하고 입증해 보려 했다간 이단으로 몰릴 수도 있다.
미덕은 오직 하나.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절대 긍정. 흰 것을 검다 하고 콩을 팥이라 해도 “그냥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수긍하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가 된다.
당연히 현대문명의 관점으로는 말이 될 리 없는 엉터리 억지 주장들도 그냥 눈 귀 막고 무조건 옳다 주장해야만 한다.(“우주만물을 어떻게 7일 만에 창조하냐 엌ㅋㅋㅋㅋㅋ”) 이러한 태도는 당연히 이성주의, 합리주의자들의 비웃음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아예 박제당해서 온라인 공간을 떠돌기까지 한다.
물론 ‘그들’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사탄 마귀의 사악한 심리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고 꿋꿋하게 신념을 지켜내었노라고 더욱 자랑스러워한다. 주변의 조롱을 훈장으로 삼는다. 어찌 인간이 신을 판단하려 한단 말인가! 그분께서 말씀 하사 1 더하기 1이 7이라 하시면 그냥 무조건 7이 맞는 것이다. 이유는 나도 모르는데 아무튼 7 임!
뭐 그래, 종교는 워낙에 종교니까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인간이 만든 ‘이념’은 그렇게 믿으면 안 되는 것이다.
…
종종 다른 좌파들은 나를 ‘무례한 사람’으로 여기는 것 같다. 좌파의 세계엔 단순한 이성 논리만으론 설명되지 않는, 오랜 탄압을 받으며 자신들끼리 만들어온 어떤 문화적, 종교적(?)인 관습 같은 것이 있는데 나는 그런 것들에 대해 전~~~~ 혀 경외를 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종종 신성하게 여기는 위대한 사회주의의 선조들이라던가, 전설적인 운동가들이라던가 신성한 개념, 신성한 의식 따위는 나에겐 그저 (돈이 아닌) 이성으로 계산하고 사고파는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이 그토록 신성해하는 위대한 사회주의의 영웅들 내지 신성화된 개념들은 내겐 기껏해야 “그냥 좀 쓸 만했던” 즘에 지나지 않는다. 응, 느그 레닌, 느그 스탈린, 느그 모택동, 느그 김일성(근데 이 자식은 쓸 만하지도 않네), 느그 페미니즘, 느그식 정치적 올바름.
전에도 누차에 걸쳐 언급했던 부분이지만, 특정 대상이나 개념이 ‘선성화’내지 ‘악마화’ 되어버리면 그것으로 대상에 대한 고찰이나 논의는 종결된다. 그리고 담론에 고찰과 논의가 끊기면 반드시 질적 저하가 뒤를 잊는다.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변화되지 못하며, 결국 그렇게 고이다 썩게 된다.
내가 무례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눈에는 흔해 터진 자유시장 논리 하나도 논파 못하는 주제에, 낙수효과를 논박하는 A4용지 한 장 분량의 글도 스스로 못써내는 주제에 어떤 특정한 신성성과 그에 의한 예법에나 집착하는 낡고 고인 당신들이 더 한심해 보인다.
자신보다 한창 아래인 후배가 던진 평범한 반론에도 답변 못해서 얼굴 시뻘게진 채로 선배 후배 운운하며 예법이나 따져대는 그런 고이고 썩은 것들이 무슨 자유시장을 논파하고 스피커 담론지형을 뒤집어 ‘민주적 사회주의’를 이룩해 내겠단 말인가!!
나의 철학도 친구(포스트모더니즘 아님. 좌파 엘리트 주의자)의 명언(?)을 언급하면서 이번 화를 끝내도록 하겠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스승이었던 헤겔을 뚫고 나왔기에 위대해질 수 있었다.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자라 말하는 이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마르크스를 계승한다 말하면서 150년 전의 그 사유로부터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