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드나 시진핑이 보장해주는 자유가 진정한 자유인가?
약자에 대한 특별보호를 주장하는 좌파(특히 신좌파)들이라면 언제나 마주해야만 하는 딜레마가 있다. 그것은 바로 "약자에 대한 특별배려의 울타리는 필연적으로 그 울타리 내로 들어오고파 하는 타자의 자유를 제약하게 된다."는 것이다. 약자는 바로 그러한 '자유 제약'을 통해 안전한 영역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부분은 68 혁명 이래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간판 하에 무제한의 자유로움을 지향했던(아무 곳에서나 섹스하고 마약을 하는 것이 마치 깨어있음의 증표처럼 여겨졌던…) '진보들'에겐 무척 껄끄러운 가시로 다가온다.
혹자는 자유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면서 이 껄끄러움으로부터 도피를 하려고 한다. 간단하게, '진정한' 자유란 자신들이 쳐 놓은 사회적 울타리를 넘지 않는 선에서만 보장될 수 있는 것이라는 식의 변명 같지 않은 변명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쳐 놓은 울타리를 넘지 않는 선에서의 자유? 그럼 그 울타리는 대체 누가 만드는 거지? 그럼 나도 "세상 모든 사람들은 나를 불쾌하게 만들지 않는 선에서의 무한한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물론 직간접적으로 나를 불쾌하게 만드는 행위는 '진정한'자유가 아니다."라고 말해도 되는 것인가? 이를테면 나는 검은색 가죽재킷을 좋아하지 않으며, 이것을 보면 정서적 트라우마를 일으킬 수 있으니 너희는 내 눈에 띄는 범위 내에선 검정 가죽재킷을 입어선 안된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자유'이다!
이런 식의 '자유로움'은 요컨대 아사드나 시진핑도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국민들에게 언제나 "외세에 부합하여 바트당(혹은 공산당)의 권위를 불안하게 만들 수 있는 언행을 제외한" 모든 종류의 자유를 보장한다. 바트당이나 공산당은 사악한 서방의 침략자들에 저항하여 시리아의, 중국의 힘없는 인민들을 지켜주기 위해 존재하는 최후의 울타리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시리아 내지 중국 인민의 무한한 안녕을 위해 선 아무도 그 울타리를 함부로 넘어가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언행이 그 '울타리'를 넘어가는 것이고 어떤 언행까진 아직 괜찮은 것인지의 구체적인 규정은 바트당 내지 공산당의 똑똑하고 현명하신 엘리트분들이 정해주신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히틀러 내지 전두환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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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누차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나는 포스트모던식 무제한의 자유에 찬성하지 않는다. 나는 좌파로써 '특정 약자 그룹'에 대한 특별보호의 울타리 제공이 필요하다고 믿으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부 자유 제약은 필연적으로 수용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내가 다른 좌파들에게 말하고 싶은 부분은 이것이다. "기만 떨지 말자!"
좌파가 요구하는 '약자에 대한 특별보호 제공'과 '완전한 자유'라는 것은 애초부터 상호 병립 불가능하다는 것을 제발 깔끔하게 인정 좀 하자는 것이다. 이제 분리되어야 할 이들은 '우리'로부터 분리시켜야만 한다! '무궁무진한 자유'는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방향이 아니다!
+나는 박정희나 전두환조차도 '그들이 개별 국민의 자유를 제약했다는 이유'따위로는 비판하지 않는다. 다만 그러한 자유 제약이 전체 공리 증진 내지 약자 보호라는 측면에 있어 바람직했는가 정도의 고찰을 해 볼 뿐이다.(ex : 장발 내지 미니스커트 단속은 전체 사회의 공리 증진에 있어 대체 무슨 기여를 하였는가?)
그러나 그런 식의 비판이 아닌, "자유를 제약했으니 무조건 나쁘다!"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려 한다면 우리의 정부는 세금도 거두지 말아야 하고(당연히 복지는 중단된다.) 법률 집행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