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제가 끝난 '후에' 외치는 저항
압제에 대해 진정으로 저항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의 모습은 결고 깔끔하거나 아리따울 수 없다. 압제자들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스피커들을 활용하여 저항자들을 악마화 시키기 때문이다. 저항자가 공식적으로 '아름답게' 여겨질 수 있는 것은 압제가 완전히 물러나고 헤게모니 교체가 완료된 이후여야만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점부턴 그동안 저항 자라 불렸던 이들이 더 이상 저항자가 아니게 된다.(새로운 주류 담론을 세운 새로운 기득권자가 된다.)
만약 어떤 사회에 '진짜 저항자'가 존재한다면, 어떤 식으로 건 이들은 아름답게 여겨질 수 없다. 만약 아름답게 여겨지는 저항자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 저항을 연기하는 어떤 배부른 기만자 위선자일 것이다.
1945년 8월 15일이 있기 이전의 광복군은 오늘날에야 광복군이지 당시엔 광복군이 아니었다. 대 일본제국과 천황폐하께 반항하는 반역도당이었지.
8월 15일 이전의 광복군들은 "하찮은 반역자 버러지들"이 됨을 기꺼이 감내하며 저항과 투쟁을 이어갔던 것이다. 스스로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신념으로 저항하는 이들은 타인으로부터 사악하거나 혹은 하찮게 여겨짐을 신경 쓰지 않는다.
저항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것은 오직 압제가 끝이 나야 가능해진다. 때문에 위선자, 기만자들은 언제나 "8월 15일부터" 저항을 외친다. 엊그제까지만 하더라도 "천황폐하 만세"에 목이 쉬어나가던 이들이 8월 15일 이후엔 "대한독립 만세"로 목청이 터져 나간다. 이들은 이미 죽어버린 왜놈 송장에 있는 힘껏 매질을 가하며 "자신이 얼마나 투철한 저항 자였는지를" 입증받고 싶어 한다. 물론 부질없는 일이다. 욕먹지 않고 미움받지 않음을 확보받은 뒤에 외치는 저항이 무슨 저항이란 말인가!
진정한 저항자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발생한 문제의식을 기반해, 욕먹는 것에 개의치 않고 목소리를 내려 하지만 위선자, 기만자들은 그 어떤 자체적 문제의식도 없이 "어느 편에 서서 소리를 질러야 더 멋있는 사람으로 보일까?"를 고민하며 목소리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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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여성인권, 동물권, 범죄자의 인권, 이슬람과 제3세계 문화에 대한 존중을 외치는 것이 정신 나간 행위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이 양보해봐야 "그랬던 시절"은 68 혁명으로 끝이 났다. 68 혁명 이후에도 계속해서 '저런'주장에 반대했던 사람들은 정신 나간 극우 파시스트 노답 복고주의자로 매도당해야만 했다.
68 혁명 이후에 어느 쪽이 주류였고, 누가 저항자였는지는 양심이 있는 모든 이들이 알고 있다.
물론 주류라 해서 다 나쁘고 저항 자라 해서 다 옳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저항자가 아니면서도 저항자인 척을 하려 한다면, 그것은 위선이고 기만이 된다. 바로 "8월 15일부터 광복군"인 것이다! 다시 말 하지만 진정성이 없는 위선자 기만자들은 언제나 "어느 편에 서서 싸워야 더 멋있고 아름다워 보일까?"를 고민하며 편을 정한다. 이들은 항상 입으로 저항을 외치며 기꺼이 주류 담론의 편에 선다.
진짜 힙한 사람은 애써 힙해 보이려 애쓰지 않는다. 애쓰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힙하며, 이러한 힙함은 종종 삶을 더 고단하게 만들기에 종종 그 힙함을 감추려 하기도 한다.(남과 다른 사람은 사회생활에 적응하기 힘들다.)
오직 "힙하지 못한 자들"만이 일부러, 애써서 멋지게 힙해 보이려 노력한다. 물론 타인의 시선에서 멋지고 힙해 보이려 노력한다는 그 자체부터 이미 그는 힙하지 못하다. 오직 비하의 의미에서 '힙스터'라 조롱받을 뿐이다. (보통 중학교 2학년 터울의 사춘기 청소년 내지 신좌파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그러하다. 이 시대의 진정한 "8월 15일부터 광복군"들 아닐까 한다. 단 한 번도 저항자였던 적 없는 이들이 멋으로 저항을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