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자유시장 담론은 정말 약화되었는가?

우리는 아직 안심할 수 없다.

by 박세환

일전 모 진보그룹에서 복지에 관한 강의를 들었던 적이 있었다. 전반적으로 평이한 수준의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강의는 나를 굉장히 불편하게 만들었었는데, 그 이유는 강사가 지닌 여론 현실에 대한 안일한 인식 때문이었다.


"(보편 복지를 추구하는) 우리는 이미 담론장에서 승리했어요. 이제 남은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실현시키느냐 하는 문제뿐입니다."


정말? 정말로 기본소득과 같은 보편복지를 추구하는 좌파들은 담론장에서 승리해서 다수의 여론을 우리 편으로 확보했으니 두어 번의 선거만 거치고 나면 북유럽 수준의 복지국가를 이룩할 수 있게 되는 건가??


사실 이 강사뿐이 아니다. 실제 좌파 중에서 경제를 좀 배웠다고 하는 지식인들을 만나보면 "극도의 시장자유를 추구하는 경제학 파벌들은 이미 한풀 꺾였다."는 이야기를 손쉽게 들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은 내가 자유지향적인 경제사상들의 사회적 영향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경계와 공포는 비현실적인 데다 다소 신경질적인 수준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나도 그들의 말이 옳기를 바란다. 입만 열면 부자감세와 규제 철폐, 쉬운 해고를 부르짖는 그들의 사회적 영향력이 별 볼 일 없었으면 한다. 내가 그들에 대해 지나치게 과대 경계를 하고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안심시키려는 그들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결정적인 요인이 있다.


많은 이들이 이상적 복지사회라고 동경하는 북유럽 국가들은 보통 전체 GDP의 30%가량을 복지비용으로 지출한다. 한국은? 10% 정도이다. 이러니 한국의 복지는 항상 빈곤할 수밖에 없다. 불쌍한 사람들은 넘처나는데 이를 도와줄 비용은 부족하니 언제나 항상 사각지대 투성 이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내용은 위에 언급한 그 복지 강사의 강의에서 나왔던 것이기도 하다.


20191211_180959.jpg


자, 그들의 말데로 경제적 담론 투쟁의 장에서 입만 열면 부자감세와 규제 철폐, 쉬운 해고를 떠들어댔던 이들이 이미 몰락하였고, 복지와 분배를 강조하는 좌파 경제 패거리들이 진즉에 승리한 상황이라면, 우리는 왜 아직도 저 "더 많은 복지"를 실현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어째서 북유럽과 같은 복지국가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


여태껏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과 손실을 요구하며, 그만큼 복지와 분배를 늘리려 할 때마다 어떤 반응들이 나왔었는지 생각해보자! 아마 다들 익숙한 이야기들일 것이다.


"복지 너무 많이 해주면 국민이 나태해져서 안돼!"

"무능력하면 마땅히 굶어 죽어야지 어째서 타인의 노력 결과물에 기대어 생존을 보장받으려 하는 거지?"

"부자들도 힘들다! 복지비용 마련한다고 부자들한테 세금 더 거두면 투자가 줄어들 것이다!"

"어째서 유능한 사람들이 유능함에 기반해 이룬 정당한 성취의 일부를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고 강제하는 거지?"

"우리는 '아직도' 너무 가난하고 저개발 상태라서 분배가 아닌 성장을 말해야만 한다!"

"가난한 사람은 대기업의 투자활성화로 구원받아야지 정부의 복지로 구원되어선 안된다!"

"부자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투자, 가난한 이에게 쓰는 비용은 지출!"

"자기 능력과 노오오오력으로 스스로를 구원하라고 해라. 왜 남한테 공짜밥을 얻어먹으려 드나?"

"이 무능력자들아! 복지 무임승차 꿈.도.꾸.지 마라!"

"북유럽도 복지 너무 많이 해서 조만간 망할 거야. 아마도. 누가 조만간 망할 거라고 그랬어."


20191211_183339.jpg



저기요?

뭐라 하셨죠?

저한테 '자유지상주의에 대한 피해망상'이라 하셨던 분들 또 뭐라 그러셨더라?

좌파 경제가 이미 담론장에서 승리했다고요? 보편복지가 이미 주류 담론으로 자리 잡으셨다고요?

그래서 넘들 복지지출 30% 할 때 우린 아직 10% 하고 있는 건가요? 빈부격차 꾸준히 계속 증가하고 있는 건가요?


… 정신 똑바로 차리자. IMF 이후로 좌파는 단 한 번도 경제담론장에서 승리했던 적이 없다.

복지국가는 절대 마른하늘에서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녕 복지국가를 만들고자 한다면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것은 자유시장 신봉자들을 향한 헤게모니 전쟁이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에서 (GDP 대비) 복지비중은 절~~~~~대 10%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며 전투순양함이 날아다니고 프로토스랑 외교 거래하는 날까지 주당 근로시간은 결코 50시간 이하로 내려갈 수도 없을 것이다!


그리니 좌파 엘리트들아. "시도만 하면 이룰 수 있다."라고 허언 좀 뱉지 말아라.

냉수 먹고 정신들 차려라. 현실인식 똑바로 들 해라!


20191211_181300.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역사의 주체. 그리고 페미니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