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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복지가 아닌 순수 내 능력만으로 먹고사는 거야!

시장 쟁이의 심리적 근원

by 박세환

세금과 복지를 폐지해 모든 사회 구성원은 오직 자신의 능력과 성취만으로 먹고살 수 있어야만 하며, 시장에서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 무능력자라면 복지라는 명목으로 남의 성취물에 기대어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굶어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보면 나름 '유능한' 사람들이 있다.


유능하다는 게, 그러니까 번듯한 직장 다니는, 최소한 남한테 손 안 벌리고 자기 능력으로 한 가정을 부양할 정도 되는 사람들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매번 돌아오는 세금 고지서를 보며 "왜 내가 세금을 많이 내서 비렁뱅이들한테 복지를 제공해주어야 하는 것인지" 한탄을 늘어놓곤 한다.


당신이 그것을 좋아하건, 싫어하건, 우리는 이미 유능력자의 성취 일부를 세금으로 강탈하여 무능력자의 삶을 어느 정도 보장해주는 정부 주도의 재분배 시스템 하에서 살고 있다.(그 정도는 당연히 북유럽에선 높게, 한국에선 낮게 나타난다.)

자, 정말로 나라가 모든 복지정책을 폐지하여 재분배에 관한 그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는다면(더 이상 지하철 공사에 지원도 해주지 않는다. 정부의 세금 지원이 없기 때문에 전철료는 3000원으로 폭등한다.), 세금이 줄어들어 당신은 더욱 행복해질 수 있을까? 당신은 지금까지 그러했듯이 "순수 당신의 능력만으로"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까?


당신이 사장이건 직원이건, 당신이 몸담은 회사는 무언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해 내어 시장에 내다 팔 것이다. 그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그 구매자들이 있기에 당신의 회사는 운영되는 것이다. 물론 당신도 당신의 자리를 보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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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정부에 의한 재분배 시스템이 모두 폐지된다면, 하위계층 사람들은 당연히 손해를 본다. 보통 하위 50%의 사람들은 내는 세금 대비받는 혜택이 많았을 테니까, 정부의 재분배 시스템 폐지는 이들의 삶에 엄청난 타격을 입힐 수밖에 없다. 이들은 더 이상 정부로부터 생계 보조금을 받을 수 없으며, 민영화된 필수적 공공서비스들을 더욱 비싼 가격으로 이용해야만 할 것이다. 기본 교통료는 3000원 이상이다. 의료비? 말도 말자. 아프면 이제 그냥 죽는 거다.

어쩌면 이러한 삶이, 처음부터 그들이 감당했어야 하는 지극히 '시장주의적으로' 정당한 삶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자, 이 하위계층 사람들은 정말 필수적인 생활비로 소득의 전부를 활용해야만 한다. 그마저도 아끼고 아껴, 줄이고 줄여서 써야만 한다. 당신 회사의 매출은 어떻게 될까? 이 하위 50%에서 대규모의 '인생 탈락자'들이 발생한다면, 소비시장의 탈락자들이 발생한다면 당신 회사의 근로복지시스템은, 인건비 지출 계획은 어떻게 달라질까?

대공황 때, 리만사태 때, 밑바닥 인생들 싹 다 갈려나가니까 그 차상위계층의 삶은 더 행복해졌던가?


다시 말 하지만, 당신이 그것을 찬성하건 반대하건 이미 우리는 승리자의 성취 상당 부분을 '몰수'해서 가난뱅이들에게 나누어주는 강압적 재분배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당신의 삶 역시 그 속에서 이루어지고, 그렇게 돌아간다.


만약 이 체제가 해제되고 오직 시장원리로만 돌아가는 세상이 도래한다면, 지금 자신의 능력을 자신하며 살아가는 이들 중 얼마가 계속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이들 중 얼마가 "평소 자신이 비하하고 조롱하던"이들과 같은 급으로 굴러 떨어져 나가게 될까?


기억하자. 자유시장에서, 더이상 구매자를 찾을 수 없는 능력은 능력이라 불릴 수 없다. 모든 능력은 오직 구매자가 지불하는 금액으로만 판별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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