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냐 사민이냐
좌파들은 언제나 하위계층의 고단한 삶을 '광고'한다.
어떤 사람은 기본적인 안전조건도 갖추어지지 않는 열악한 근무환경 속에서 하루 12시간씩 주말도 없이 일하는데 그래 봐야 고작 간신히 생계가 가능한, 가족이 간신히 굶지 않을 수준의 급여만을 받을 수 있다. 그의 동료 중 누구는 그런 환경에서 일하다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누구는 그 직장마저 상실해서 굶주리다가 가족 동반자살을 했다더라.
자, 당신은 이들이 불쌍하지 않은가?
이 지점에서 좌파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들이 이걸 불쌍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이 불쌍하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아니, 남이 불쌍하기 이전에 이미 많은 이들은 자신부터가 '저렇게'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이 노동계급의 저 고단한 삶을 알지 못해서 좌파 경제를 지지하지 않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좌파 경제를 지지하지 않는 것은 밑바닥 노동계급의 삶이 충분히 불쌍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경제의 구조가 생소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아직 너무 열악해서 저들에게 베풀 재원이 없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아쉽지만 허리띠를 졸라매고 더욱 열심히 일하는 길 뿐이라고 철석같이 믿고들 있다. 그래, 전형적인 시장의 세뇌이다. 그러나 68 혁명 이후 좌파들의 지적 수준, 특히 경제에 관한 인식 수준이 현저히 낮아졌기 때문에, 유감스럽게도 대다수의 '좌파'들은 저 자유 시장논리를 논파하지 못한다.
노동계층의 삶이 열악한 이유는 간단하다. 자본가들이 그들에게 많은 돈을 지불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현장의 안전, 근로복지 수준, 국가의 기본적인 사회안전망, 어느 것 하나 돈문제가 아닌 것이 없는데(기업이 직접 지출하건, 아니면 정부가 세금을 거두어 이를 대신 해주건), 아무도 노동계급 문제 해갈에 '돈'을 지불하려 하지 않으니 밑바닥 노동계급의 삶의 질 문제는 극복되지 않는다.
왜 아무도 이들에게 돈을 쓰려하지 않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세상이 자꾸만 발전하면서 특별한 기능을 갖추지 못한 인간의 노동력 가치는 계속해서 하락하게 된다. 간단하게, 할 줄 아는 것이라곤 벽돌 나르기 내지 서류 정리에 불구한 대다수의 노동력들은 가면 갈수록 그 수요가 떨어지게 된다. 이들은 너무나 과잉되었고, 지천에 널려있기 때문에 자본가들 입장에선 이들이 아쉽지가 않다. 그러니 전체 사회가 발전하면 할수록 이들의 몸값은 올라가긴커녕 내려가기만 한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자본가들은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게 되고, 그렇게 절약한 만큼 이득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이 반복될수록, 당연히 일반 노동계층의 삶의 질은 더욱 하락한다. 그리고 이것은 애초에 시장의 원리로 극복이 가능한 부분이 아니다.(애초에 이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이 시장의 원리다!)
세상에서 가장 위선적인 시장쟁이는 이렇게 말한다
"자본가가 인건비 절감 폭리를 취하면 일시적으로는 노동계층의 손해인 듯 보이지만 결국 자본가는 그 폭리를 또 다른 투자에 활용하기 때문에 결국 노동계급에게 더 많은 고용의 기회가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오늘날엔 이 이론이 거짓이라는 것을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다. 자본가 계급의 수익이 아무리 증가해도, 그 증가분은 추가 투자로 이어지지 않았음을 우리는 지난 30년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자, 우리는 이 지점에서 선택을 해야만 한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곤 벽돌 나르기나 서류 정리에 불구한, 다수의 노동계급은 '정당한' 시장원리에 의해 모두 굶어 죽고 도태되어 노동시장과 소비시장에서 퇴장당해야 마땅한가? 이것은 아마 시장 쟁이들의 선택일 것이다. 이들이 대거 소멸되면 수요와 공급의 원리 속에서 인간 노동력의 가치가 제자리를 되찾을 것이라고, 아마도 시장 쟁이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만약 이것에 반대한다면? 이러한 능력의 불균형이 필연임을 인정하고, 경제구도 속에서 폭리를 취하는 이들로부터 막대한 세금을 거두어 밑바닥 계층의 삶을 보조해주는 정부 주도의 재분배를 지지해야만 할 것이다.
+선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당신'이 어느 계층의 사람이냐는 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