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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Oct 21. 2022

민감한 이야기 '낙태'. 논리로만 이야기 하자.

생명권 지지의 일관성

1. 낙태를 찬성하는 근거 중에 대표적인 건 '임신-출산과 초기 양육까지 사실상 거의 전부를 전담해야 하는 여자 측의 일방적인 고통과 희생'이다. 임신으로 인한 태아의 발생이 모체의 의지로 통제가 되는 사안도 아닌데, 무작위로 발생하는 중차대한 사안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만 일방적으로 전담시키는 건 부당하다는 거지. 이 모든 과정을 한 발 떨어져서 속 편하게 관망할 수 있는 너네 남자 녀석들은 이 사안에 대해 손 떼라는 게 낙태 찬성론자들의 주된 골자 되시겠다. 그리고 다들 알겠지만, 민주진보 리버럴이라는 이들이 이 입장을 적극 지지하는 편이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도 함 해 보자. 




2. 난민은 지금까지도 전 유럽을 시끄럽게 달구고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대안우파 출현에 큰 기여를 했음은 누차 언급해 온 바이다.) 간단하게, 어느 나라도 '난민'이라는 이 귀찮은 대상을 떠 앉고 싶어 하지 않는다. 


중동에 재스민 혁명이 한창이던 2010년대에는 이 문제가 정말 심각했다. 많은 중동국가들이 민주화로 인해 파생된 내란으로 엉망이 되자 어마어마한 인파가 혼란을 피해 유럽을 향해 몰려왔다. 물론 유럽의 어느 나라도 이들을 받으려 하지 않았고 말이다.  


보통 난민들이 유럽으로 진입할 때  그 관문이 되는 나라는 보통 이탈리아와 그리스이다. 때문에 유독 이탈리아와 그리스가 더욱 난처한 상황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몰려드는 난민 속에서 두 나라는 다른 EU 국가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는데, 다른 나라들은 계속 모른 척을 하기 일쑤였다.


결국 이를 보다 못한 EU의 수장 독일이 이 난민들을 '나치 시절 유대인 수용소에(!)' 대거 수용하기로 함으로써 최악의 상황은 간신히 모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 독일과 EU가 끝까지 이 문제를 외면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웃나라들의 무관심과 통제할 수 없는 난민 유입에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된 이탈리아와 그리스가 차후 들어오는 난민들에 대해 기관총을 난사해 다 죽이겠다고 선포라도 한다면 국제사회는, 그리고 세계의 민주진보 리버럴들은 뭐라고 반응했을까? 아무래도 사안에 대해 받게 되는 책임과 피해의 강도가 나라마다 다른데, 이웃나라들은 다들 무책임하게 나몰라라 하고 있으니 난민에게 기관총을 난사해 다 죽이던가 추방하겠다는 이탈리아, 그리스 두 나라를 다른 나라들이 비난 해선 안된다라고 말할까?


(이웃나라들의 이러한 무책임한 태도는 결국 이탈리아의 극우정권 성립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3. 난민 문제에 직접적인 피해를 받지 않아도 되는, 잘 정돈된 담장과 정원에 둘러싸인 고오급 주택에 살고 있는 귀족 상류층 리버럴 인텔리 엘리트들이 남의 삶 망가지는 거 신경 안 쓰고 난민에 대해 무책임할 정도로 이상주의적인 입장만 늘어놓고 있다는 비판은 사실 오늘내일 나왔던 이야기도 아니다. 


아니, 난민 문제뿐이던가? 이들은 흉악범도 사형시키지 말라 그러고 고문도 하지 말라고 그러며 사람도 아닌 개 고양이도 함부로 때리지 말라고 주문한다. 심지어 죽어가는 가축이 불쌍하다며 고기도 먹지 말라고 그러면서 육식을 즐기는 이들을 살인자처럼 취급하기 일쑤이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오직 태아, 태아만은 죽여도 된다고 말한다. 




4. 그러면 혹자는 또 이렇게 말한다. 태아 문제는 조금 다른 게, 태아를 독립된 인격체로 볼 수 있는지 많은 의문이 있다고. 태아를 그저 팔이나 다리와 같이 모체에 종속된 신체 일부로 볼 수 있지 않겠냐고. 난민이나 다른 문제와 달리 낙태 문제는 여성 신체의 자유라는 측면으로 볼 수도 있다고 말이다. 자기가 자기 팔 하나 자르겠다는데 남이 뭐라 할 수는 없다고 말이다.


태아를 모체의 일부로 보아야 할지, 독립된 사람 인격체로 보아야 할지는 아직 과학자들도 완전한 결론을 내리지 못 한 사안이다. 과학계에선 양측의 주장이 여전히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태아에 대해 사람일 수 있는 가능성과 아닌 가능성이 중첩된 상태라 보아야 한다. 양 쪽의 가능성이 중첩되어 있는 사안에서, 보통 민주진보 리버럴들은 어떤 입장을 취해왔을까?


세월호 사태 때, 지금 즘이면 이론적으로는 다 죽었을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이 입을 모으고 있었음에도 민주진보 리버럴이라 할 수 있는 진영에서는 계속해서 생존자를 수색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상대방이 더 이상 살아있는 사람이 아닐 수 있는 가능성과 반대의 가능성이 중첩되어있을 때, 민주진보 리버럴들은 보통 살아있는 사람의 가능성에 대해서 더 중시하는 입장을 취해왔고 이는 시공간을 넘어 대체로 일반적이었다. 그랬던 이들이 낙태 문제에 대해서 만큼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닐 가능성'에 대해서만 극도로 집착한다.





5. 사실 나 역시 모든 세부항목, 이를테면 강간으로 인한 임신 내지 산모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상황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태아가 인간일 수 있다면 정확히 몇 주부터 그렇게 보아야 하는지 등등 복잡한 사안 하나하나에까지 명확한 답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있다. 


정치 사회 논의의 장에서 입장을 말하려는 이라면 항상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자신이 주장하는 입장들 간에 정합성이 틀어져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필자가 반미주의자들을 그렇게 까고 부쉈던 건, 조지 부시 때는 그렇게 침략자를 비판하던 자들이 반미진영에서 침략을 감행했을 땐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거나 아예 대놓고 침략을 지지하는 모습이 나타나는 게 무척 고까왔기 때문이다.


낙태 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실 태아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존재이다. 죄악으로부터 완벽하게 무결하며, 고로 예수 부처에 가장 근접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 존재를 죽여도 된다면, 이미 충분히 더럽혀진 삶을 살아온 흉악범 정도는 사형시켜도 된다. 흉악범뿐인가? 이미 사람의 기능을 할 수 없음이 명백해진 체로 천문학적인 관리비만을 지출시키고 있는 식물인간이나 뇌사자는 가족이 죽일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이탈리아와 그리스 정부가 난민을 죽여도 이해해 주어야 한다. 가축을 살해해 고기를 먹는 건 지극히 정당하며, 사람도 아닌 개 고양이를 두들겨 패는 정도는 당연히 주인의 마음이어야 한다. 그렇게 주장해야 민주진보 리버럴 정합성 시비가 생기지 않으며 논리에 일관성이 있다.


추가로 나이 처먹고도 연애도 결혼도 못 하고 직업도 없이 방구석에서 부모 등골이나 빨아먹고 있는 '앰생들'은 부모의 의지로 죽일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반대로 아프고 병든 부모를 부양하는 게 너무 힘들 경우 자식이 부모를 '고려장'한다 해도 우리는 이를 비난해선 안된다. 당신이 노 부모를 대신 모셔줄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러한 민주진보 리버럴 진영 특유의 정합성 딜레마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필자가 낙태를 지지할 일은 아마 영원히 없을 것이다.


기억해라. 우리 모두는 태아였다. 지금 태아인 자들과 우리의 차이점이라곤 그저 모체의 속에 있는가 밖으로 나왔는가 정도뿐이다. 




6. 낙태를 논할 때, 정작 가장 중요한 문제는 당사자인 태아에게 발언권이 없다는 것이다. 

만일 필자가 모체 내에 있을 때, 그리고 그 상태에서 필자의 부모님이 개별적 사정에 의해 필자를 지워야 하나 고민할 일이 있었다면 필자는 분명 이에 반대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태가 감행되어 세상의 공기를 마셔보지도 못한 체 그렇게 지워져야 했다면, 필자는 죽어서도 어버이를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7. 보통 여까지 이야기가 들어가면 나오는 반응은 이것이다. 


"그렇게 너무 논리만 따지면서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다."


.. 사실상 토론의 항복 선언이라 볼 수 있다. 게임에서 GG와 같은 신호인 거지..


+어떤 진보인은 이렇게도 말했었다. 생명윤리 그까짓 거 마구 짓밟아도 된다고. 이것도 죽이고 저것도 죽이고 필요와 쓸모에 따라 마구 죽여도 되게 하자고. 그러면서 낙태도 할 수 있게 하자 하니까 그땐 정말 할 말이 없긴 하더라. 일관성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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