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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Oct 20. 2022

러시아 진영 의식과 르상티망

진영 의식이 르상티망을 만든다

 

"러뽕들은 단지 서방세계를 향한 르상티망에 찌들어 있을 뿐!"이라는 말을 주야장천 해 왔는데


그럼 '그들'은 왜 르상티망을 느끼게 됐을까? 그리고 권위주의자라는 '페친 C'와 같은 경우는 왜 그 르상티망을 가지지 않을까?


오랫동안 자유민주주의와 전통권위주의, 공산주의 진영이 전 세계를 놓고 대립해 왔으며, 최종적으로 자유민주파가 승기를 잡기까지, 엄청난 파괴와 죽음이 있어왔다. 이 싸움의 역사에서, 자유민주 입장을 지지하던가 어느 특정 진영에 소속의식을 가지지 않을 경우 '죽어간 전통권위주의와 공산주의들'에 대해 그저 무덤덤하게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몰락해 간 전통권위주의 내지 공산주의 진영에 진영 소속의식을 가진 이들은, 그들이 죽어간 과정들에 의해 르상티망을 느끼게 된다. 마치 무협지에서 죽은 부모와 스승 건에 대해 르상티망을 품는 주인공처럼 말이다. "스승님의 원수! 네놈을 결코 용서치 않으리라!!"




지겨울 정도로 반복하는 말이지만, 능력 부족으로 몰락하는 '개개인'에 대해서는 좌파경제로 보살펴 주어야 하겠지만 능력 부족으로 몰락하는 체제나 집단에 대해서 동정심을 가지는 건 사치이다. 죽어가는 사람은 살려야 하지만 고장 난 냉장고를 동정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체제나 집단은 개개인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일 뿐이기에, '구린' 체제는 재깍재깍 죽어 없어져야만 하며, 더 우월한 체제가 그 자리를 대체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은 끝없이 반복된다. 


이러한 필자의 입장은 체제경쟁이라는 부분에 있어 극단적 시장경쟁 만능주의자적인 면모가 있으면서도 역설적으로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변증법과 비슷한 부분도 있다. 


이 또한 지겨울 정도로 반복하는 말이지만, '현대 러시아 푸틴 정권'이라는 건 이미 실패가 입증된 체제이다. 그나마 유능하다는 푸틴 이후 러시아가 소련 말기로부터 지속된 지난한 혼란기를 좀 벗어났다곤 하지만 여전히 러시아는 몰락하는 중이었다. 경제적으로나 인구로 보나 정신문화적으로 보나 대체로 그러한데, '그 유능하다는 푸틴' 역시 몰락하는 속도를 조금 늦추었을 뿐 "전반적으로는 여전히 마이너스"라는 불편한 추세 자체를 반전시키지는 못 한 것이다. 


푸틴 체제가 계승 의식을 가지고 있는 과거의 체제는 제정 러시아이며, 그들은 이 부분을 애써 감추려 하지도 않는다. 


제정 러시아. 짜르의 무자비한 압제 하에 극소수의 대귀족들만 잘 먹고 잘 살면서 전 인구의 절반이 농노라 불리는 노오예 만도 못한 가축으로 취급받으며 살아가던 지옥 같은 시절이었다. 그래서인지 소수의 올리가르히, 실로바키들이 이것저것 다 해 먹고 대다수의 인민은 거지 쓰레기 취급을 받으며 총알받이로 내몰리는 작금의 러시아 모습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찌 생각할런 진 모르지만 필자는 레닌의 공산혁명과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폭력들에 대해선 그나마 좀 긍정적(?)으로 봐주는 편인데, 쏘오련의 모든 것이 다른 발달된 서유럽 국가들에 비하면 여전히 낙후되었다 한들 러시아의 그 이전 단계인 제정 러시아 시절과 단순 비교하자면 그래도 더 나은 체제였음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오예만도 못한 가축이었던 대부분의 러시아 신민들 입장에서 쏘오련의 프롤레타리아트 인민이 된건 그래도, 그나마 업그레이드된 상태라 보아야 한다. 때문에 만일 필자가 적백내전 시절의 러시아인이었다면 필자 역시 레닌의 적군을 위해 활동하였을 것이다.



노동계급의 르상티망을 적절히 자극했을지라도, 적어도 쏘오련의 건국자들은 나름의 비전을 가지고 있었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러시아는 다르다. 그들의 체제는 낙후되었고 자국민들에게 조차 아무런 비전을 제공하지 못한다. 죽어가는 나라, 내부적인 불만, 이 모든 걸 돌리기 위해 이웃나라를 향해 전쟁이나 일으키고 있는 건데 이런 마인드는 본질적으로 역사 속의 말 탄 야만족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여윽시 그 조상에 그 후손...)


러시아가 왜 망하고 죽어가야 하는가? 날씨가 좀 추워서? 하지만 워낙에 땅이 커서 그 속엔 나름 농사지을 만한 영토가 있고 그 영토는 1억 5천만 인구를 살 찌우기에 충분한 규모이다. 게다가 넘처나는 지하자원들. 이 정도면 하늘의 축복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사실 북유럽의 위대한 복지국가들이나 캐나다의 경우 러시아보다 딱히 더 좋은 지리적 환경을 가지고 있다 말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잘 살아 나가는 중이다. 


... 작금 러시아의 몰락상은 그저 체제의 열등함 때문이다. 여기에 다른 변명의 여지는 없다. 




페친 C는 스스로 편의상 권위주의 계열이라 칭하지만, 이미 모순을 드러내고 죽어갔거나 죽어가는 중에 있는 그 어떤 체제들에 대해서도 진영 의식을 가지지 않는다. 진영에 대한 계승 의식이 없기에, 그는 어느 특정 정치 계보에 대해 르상티망을 품지도 않으며, 그러한 건전한 거리두기 속에서 그의 사상은 그 어떤 정신적 속박도 없이 자유롭게 발전한다. 사실 정치사회 논의의 장에서 자기 사상을 펴려는 이의 입장에서 바람직한 태도는 이런 것이다. 그 어떤 특정 진영 의식을 가지지 않는 거.


애써 진영 의식을 가지려면 그나마 상대적으로 더 성공적인 체제에 대해 가지는 것이 당연히 바람직하며, 이미 실패가 입증된, 그 어떠한 진보적인 비전도 제시할 수 없는 구 체제(앙시앙 레짐)에 대해 진영 의식을 가지는 건 가장 어리석은 일이다. 프랑스 혁명기의 수구적인 왕당파와 다를 바 없다.


+반복하는 이야기지만 필자는 한니발 바르카의 고대 카르타고 제국을 좋아한다. 로마 토탈워를 하면 매번 카르타고로 플레이해서 로마를 멸망시키는 걸 목표로 삼는다. 로마로는 거의 플레이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치역사적으로 냉정하게 따지자면 로마의 승리가 더 바람직했다는 걸 부정하지도 않는다. 로마인들이 더 훌륭한 체제를 가지고 있었던 게 사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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