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세환 Dec 23. 2022

성역화와 악마화는 같은 동전의 양면

길가의 돌멩이에 어떤 '의미'를 씌우려 하지 마라. 성역화건 악마화건..


1. '잘 먹고 잘 살고 섹스를 즐기는 삶'이 천박하다고 경멸받아서는 안되며, 그런 인간의 원초적 욕구는 존중받아야만 한다.

2. '잘 먹고 잘 살고 섹스를 즐기는 삶'이 그 자체의 쾌락을 넘어 물신화 되고, 이에 따라오지 못하는 '박세환들'을 찐따라 무시하고 경멸하는 차별과 배제의 근거로 활용되어선 안된다. 


이 두 가지가 참 어려운 분들이 많은 듯 하야 어떤 이야기를 하나 들려줄까 함.




르완다에는 다수의 후투족과 소수의 투치족이 수백 년 동안 어우러져 그냥저냥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제국주의 백인 지배자들'이 들어왔다. 


'Divide and Rule'. 나누고 지배하라!


백인 지배자들은 수 백 년 동안 어우러져 살면서 이젠 그 구분 경계조차도 모호해진 후투와 투치 두 종족을 다시 애써 열심히 나누기 시작했다.


"자신이 후투인지 투치인지 잘 모르겠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 백인들이 그 답을 알려주겠다. 잘 들어라! 이제부턴 키 크고 늘씬하고 예쁘고 잘생긴 인싸들은 투치, 그렇지 못 한 아서플랙 찐따 박세환들은 후투다! 알았느냐!"


구분도 안 가는 사람들을 이런 히틀러도 울고 갈 멋진(?) 새 기준으로 재 분류해버린 백인들은 이후 투치를 일종의 귀족으로 정해놓고 식민통치하의 모든 특혜를 몰아주었다. 당연히 '찐따' 후투들은 노오예 취급을 받았고ㅇㅇ


그러다 백인 통치자들이 물러서고 르완다에도 독립된 정부가 들어서게 된다. 


미얀마의 로힝야족 이야기를 알 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자, 이렇게 백인 지배자들이 사라진 르완다에서, 다수의 후투들이 투치들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1994년 4월 일. 드디어 일이 터졌다. 증오에 가득 찬 후투 극단주의 정치세력의 '시작 신호'와 함께,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인 테러가 터져나왔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순수한 이웃이었던 후투인들이 망치와 돌을 들고서 투치인 이웃집으로 처 들어가 투치인 아내와 딸들을 겁탈하고 온 가족을 돌로 때려죽였다. 무수히 많은 투치인들이 '엊그제까지' 이웃, 친구, 동료들에 의해 저잣거리로 끌려 나와 맞아 죽고 산 채로 온몸이 불타게 된다.


"(그게 뭔지도 모르겠지만..) 투치 안 할게요! 제발 살려주세요!" 어느 투치인 소녀가 죽어가며 외친 이 비명소리는 유언이 되었고 '르완다 학살'의 참상을 보여주는 끔찍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렇게 광란의 석 달이 지나가는 동안 무려 50~100만의 투치인들이 살해당했는데 이는 히틀러의 유대인 홀로코스트 이래 가장 끔찍한 대량 학살의 기록으로 남아있다.(공교롭게고 유고내전과 세르비아인 주도의 학살이 일어난 시점과 겹친다. 국제사회의 관심이 유고지역으로 쏠린 틈을 타 일어난 일이었다.)


결국 이 광란을 보다 못한 투치 반군이 나라를 점령하면서 이 살육도 끝이 났다. 그렇게 새로이 권력을 잡은 이들은 바로 난감한 상황에 직면한다. 대체 이 미친 증오와 반목을 어케 끝내야만 할 것인가! 그들이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그냥 다 잊자! 아무것도 없었던 거다. 아무 일도 아니었던 거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자. 이제부터 후투나 투치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건 존재한 적이 없었던 거다. 이는 정부의 명령이다.."


(물론 학살을 주도했던 후투족 수뇌부들은 당연히 전범으로 처벌받았다.)





"우리에게 '투치인'이란 어떤 존재여야 합니까? 존중해야 할 귀족입니까? 척결해야 할 악마의 쓰레기들입니까?"


만일 어느 르완다인이 이런 질문을 한다면, 당신은 어떤 답을 들려주고 싶은가?

여기서 시작의 두 문장을 다시 한번 더 반복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1. '잘 먹고 잘 살고 섹스를 즐기는 삶'이 천박하다고 경멸받아서는 안되며, 그런 인간의 원초적 욕구는 존중받아야만 한다.

2. '잘 먹고 잘 살고 섹스를 즐기는 삶'이 그 자체의 쾌락을 넘어 물신화 되고, 이에 따라오지 못하는 '박세환들'을 찐따라 무시하고 경멸하는 차별과 배제의 근거로 활용되어선 안된다. 


+후투족과 투치족이 어울려 살았던 르완다 일대 다른 이웃나라들에서도 제국주의 이후 두 종족 분쟁에 의한 수많은 학살이 일어났다. 이를테면 투치족이 더 많았던 부룬디에서는 투치들이 후투들을 학살하곤 했는데 이 수도 다 합치면 거진 50만이 된다고 한다.

작가의 이전글 잘 먹고 잘 살고 섹스 잘하는 게 나쁘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