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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Dec 20. 2022

잘 먹고 잘 살고 섹스 잘하는 게 나쁘냐?

생명정치에 대한 비판을 비판하다.

생명정치, 혹은 생명관리정치. 미셸 푸코가 도입한 개념으로 그냥 간단하게 말하자면, 고오결한 어떤 무언가를 위한 헌신이 아닌, 그냥 시민들 '잘 먹고 잘 싸고 섹스 잘하게 만들어 주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정치를 말하는데, 현대시대의 정치의 99%는 다 이 '생명정치'라고 보면 된다. GDP 증가나 주가/부동산의 등락 여부가 정권을 판가름하는데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되는 그런 정치 말이다.


솔직히 지금 시대에 거의 대부분 나라들은 '정치 잘 함'을 어떤 신적 존재에 대한 헌신이나 숭배, 한 명의 왕이나 황제를 위한 충성과 복종 이런 걸로 논하지 않잖아? 그냥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잘 먹고 잘 사는 게 최고의 테마지. 생명정치ㅇㅇ





이 '생명정치'의 현실을 그켬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현대 자유주의 문명을 거부하는 이들 중에 많은데, 이들은 인간을 그저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 '어떤 고결한 무언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다 피 흘리며 죽어야 하는 그런 고상한 존재'로 가정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래, 인간의 이기성을 그켬하는 극단적인 이타주의로 이들은 그저 '잘 먹고 잘 살려하는' 인간의 근성을 천박하고 더럽고 징그럽게 치부하면서 거부감을 표하는데 현대 자유주의 문명은 생명정치를 부추겨 인간의 이 천박한 이기심을 극도로 강화시킨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다. 


당연히 3 사분면 구좌파 내지 4 사분면 전통 권위주의 쪽에 많다.


사실 이러한 관점에 대한 비판을 수년 전 글로 남겼던 바 있는데(https://brunch.co.kr/@pmsehwan/45) 여기서 몇 가지를 조금 더 추가해보고자 한다. 


'숭고한 헌신과 희생'은 그러한 이타적 헌신과 희생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 '어떤 문제적 상황'을 필연적으로 가정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일제강점기나 2차 세계대전 때처럼 말이다. 


인간이 이기적이어서는 안 되며 '언제나 희생하고 죽을 준비가 되어있는 극도로 이타적인 상태'로 유지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특정 문제적 상황'이 영원토록 극복되지 않은 채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불편한 결론을 피할 길이 없다. 일제의 압제는 끝나선 안되며, 세계대전은 종결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다. 


적을 향해 총을 쏘고 폭탄을 던지며 자신의 삶도 기꺼이 내 던졌던 안중근이나 윤봉길 같은 이들이 그렇게 스스로를 희생하면서, 자신의 후손들도 자신처럼 그렇게 살아가길 바랬을까? '무언가를 위한 숭고한 희생과 헌신'이라는 테마가 영원히 유효할 수밖에 없도록, 이 저주받은 일제강점기가 끝나지 않은 채 영원토록 지속되길 바랬겠냐 이 말이다.


결국 이런 극단적 이타주의 엄숙주의자들은 "그럼 모든 문제가 끝나고, '적'이 소탕되고, 당신이 최종적인 승리자로 등극하였다면 그 이후 남겨진 인간들은 어떻게 다스릴 생각이야?"라는 총론적인 질문에 답변할 수 없다.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헌신은 이후 등 따습고 배부른 삶을 살아가게 된 후손들의 존재로 인해 더욱 빛이 나게 된다. 링크의 글에서 언급한 데로, 이타의 가치는 이기의 존재로 인해 비로소 그 숭고함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지금 시대 역시 많은 문제 상황들을 품고 있으며, 그 문제 상황들에 대처하기 위해 '희생과 헌신'이라는 가치가 여전히 유효할 수는 있다. 그리고 자유주의식 생명정치 풍조가 사람들로 하여금 이러한 문제 상황에 대해 직면하지 못하도록 막는데 일조하는 측면 역시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원초적이고 이기적인 욕구를 긍정하면서 이를 위한 '과정적' 희생/헌신을 주장하는 것과, 인간의 이기성 자체를 부정하고 오직 숭고한 희생/헌신만을 '목적화'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막판에 한 마디 첨언하자면, 현대 생명정치를 다른 방식으로 비판하는 이들도 있긴 하다. 궁극적인 행복이란 결코 맛 좋은 음식이나 섹스 따위로 달성될 수 없고 폭포수 아래서의 깊은 사색과 성찰, 깨달음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인데 현대 자유주의 문명은 식탐과 섹스와 같은 '본질적이지 않은' 것들을 강조해 오히려 인간으로 하여금 해갈될 수 없는 영원한 영적 갈증에 허덕이게 만든다는 이들 말이다.



보통 이런 이들은 특정 종교에 귀의하여 폭포수나 헛간 등지로 들어가 가부좌 틀고 수행하는 삶을 살게 되는데 이런 이들은 딱히 문제가 될 게 없다. '인간의 행복'이라는 테마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으니까. 다만 그 행복에 이르는 경로가 좀 다를 뿐이다. 참고로 필자 역시 이쪽 방면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

1. '잘 먹고 잘 살고 섹스를 즐기는 삶'이 천박하다고 경멸받아서는 안되며, 그런 인간의 원초적 욕구는 존중받아야만 한다.

2. '잘 먹고 잘 살고 섹스를 즐기는 삶'이 그 자체의 쾌락을 넘어 물신화 되고, 이에 따라오지 못하는 '박세환들'을 찐따라 무시하고 경멸하는 차별과 배제의 근거로 활용되어선 안된다. 


이 두 가지가 그렇게 어렵나요?? 다들 이해가 잘 안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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