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세환 Jan 14. 2024

노부나가-히데요시-이에야스

일본 사회의 변모

일본사에서 전국시대 종결기는 중국사에서 '삼국지'시대만큼이나 많이 언급되는 대목이다. 삼국지에서 유비, 조소, 손권을 놓고 많은 이들이 아직까지 운운하고 있듯, 일본사를 보는 이들 역시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세 사람을 놓고 가타부타 하기를 즐긴다. 


종종 삼국지의 조조에 비견되는(하지만 필자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간단하게, 노부나가는 그저 조조의 '일면'만을 품고 있을 뿐이다.) 오다 노부나가는 무척 잔인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앞길에 방해가 된다 싶으면 일단 죽이고 보는 폭력 사이코패스적 인물로 무수히 많은 이들의 피로 목욕을 하며 자신의 세력을 키워나갔다. 


아니다 싶으면 일단 다 죽이고 보는 이런 화끈함은 어느 정도 성공에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그렇게 한 칸씩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이를 증오하는 적 역시도 한 움큼씩 늘어만 갔다. 결국 그는 열도통일을 목전에 두고 앙심을 품은 부하의 배신으로 목숨을 잃는다. 도덕도 윤리도, 타자의 원한도 생각지 않고 일단 무력을 휘두르고 보는 전형적인 '난세'의 인물이었으며, 바로 그 '난세의 방식'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반면 노부나가의 뒤를 이은 히데요시나 이에야스는 이런 화끈하고 솔직한 폭력쟁이 노부나가에 비해 뭔가 좀 더 야시꾸리하고 응큼한 인물로 묘사된다. 무언가 속에 딴생각을 품고서 얼굴에 비열한 미소를 띠는 그런 캐릭터 말이다. 그런 면모 때문인지 '세 사람' 인기투표를 하면 항상 노부나가가 가장 높게 나온다고 한다.(마치 삼국지의 유비처럼)


하지만 필자는 이 히데요시 내지 이에야스의 '야시꾸리함'을 조금 '변호'해 보고자 한다. 





노부나가-히데요시-이에야스. 이 세 사람의 캐릭터 차이는 당대 일본사회가 변모해 가던 양상과 정확하게 연동된다. 구술했던 노부나가의 시대는 '일단 죽이고 보는', '일단 남을 죽여놔야 내가 살아남는' 난세였다. 그런데 그 노부나가를 거치며 열도가 어느 정도 통일되는 양상이 나타나자, 이제 '폭력'이 아닌 '정치'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1차원적 폭력이 아닌, 설득과 타협, 협상의 시대로 나아가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1차원적 폭력'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던 노부나가도 결국 자신이 그토록 선호하던 그 방식으로 세상을 떠나지 않았던가!


히데요시-이에야스가 무언가 더 야시꾸리했던 게 아니라, 이들은 전대 군주가 행하지 못했던 통일일본의 '정치'를 수행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치라는 미명하에 이루어지는 이러한 설득, 타협, 협상들은 아직까지 '전국시대의 방식'에 더 익숙했던 일본인들에겐 뭔가 남자답지 못한, 야시꾸리하고 음험한 무언가로 여겨졌을 뿐.  


이시다 미츠나리가 이에야스와 대립하는 과정을 담은 일본영화 '세키가하라 전투'에 나오는 장면 하나.

임진왜란동안 이순신한테 싸다구 한방씩 사이좋게 얻어맞고 고국으로 귀환한 일본의 무장들은 전쟁기간 동안 일개 문관으로 와서 감찰활동이니 뭐니 하며 자신들을 엿맥여 온 이시다 미츠나리 일당에 대해 깊은 앙심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두들겨 패 주려고(난세의 방식) 했는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를 만류하며 차라리 (이시다와 친한) 고니시 유키나가(영화 '노량'에 나왔던 그놈 맞다. 임진왜란의 선봉장)한테 전쟁당시 있었던 일들로 고소장을 날리라고 조언한다. 무력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도울 수 없지만 고소고발로 승부 보겠다면 그건 자신이 도와줄 수 있다고 말이다. 


물론 이에야스 말을 듣고 그렇게 따라 했던 무사들이 정작 역관광을 당했다는 게 웃픈 사연이긴 하지만(결국 세키가하라 전투 때 이시다와 고니시의 목을 따 버림으로써 무장들의 질긴 원한은 비로소 종결된다..), 이러한 양상 자체가 세상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야삽함의 상징'이라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역시 난세동안 적의 피를 마시며 성장해 왔던 인물이다. 이는 히데요시 역시 마찬가지이며 이 둘은 모두 오다 노부나가와 함께 전장을 누비면서 '무사'로써 같이 성장했다. 그런데 시대의 양상이 바뀜과 함께 무장의 캐릭터가 같이 바뀌게 된 것이다. 장비, 여포형 캐릭터에서 문관형 캐릭터로. 


결국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최종 승리를 거두고, 일본은 긴 평화기에 접어든다. 그리고 칼을 잡았던 사무라이들은 붓을 잡는 문신들로 변모해 가게 된다.


+이런 '문신들의 정치'가 반영된다는 점은 필자가 일본 전국시대 종결기를 중국의 삼국지보다 높게 평가하는 부분이다. 중국의 삼국시대 역시 삼국이 정립되고 난 이후엔 문관중심의 질서가 고착되고 전장의 칼보단 문사의 붓으로 티키타카하는 양상이 나타나지만 나관중은 이게 재미없다 생각했는지 이 대목을 대폭 축소시켜 버렸다. 그래서 삼국지에서는 (물리적 시간으로는 전반부보다 김에도 불구하고..) 삼국정립 이후 이야기의 비중이 거의 없고 유비관우장비가 살아있던 전반부의 내용이 전체 분량의 70~80%를 차지한다. 때문에 '삼국지'를 읽은 독자는 무사들의 피칠갑으로 논해지는 '난세의 방식'만을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간만에 우크라이나 전황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