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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Jan 15. 2024

아이의 삶, 으른의 삶

평생을 아이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의 삶이 으른의 삶보다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지.


아이는 아이이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으른만큼의' 책임을 요구받지 않는다. 아이는 으른보다 정신문화관념적으로 더 쉽게 배려받고 더 쉽게 사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약자라는 명분 하에서 자신의 삶에 대해 으른만큼 책임질 필요가 없고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 언제나 보살핌을 요구할 수 있다.

으른이 아이에게 죄를 지을 경우 엄청나게 강하게 처벌받지만

아이는 아이이기 때문에 으른에게 죄를 지어도 으른만큼 처벌받지 않는다.


"아이는 억압받는 불쌍한 약자. 으른은 그 아이를 탄압하는 부당한 압제자."라는 민주진보적 사회인식 때문에 이러한 상황은 더욱 심화된다. 으른 앞에서 "나는 으른에게 억압받는 불쌍한 약자"라는 프레임을 들이밀며 법정에서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피해자마냥 뻔뻔한 마인드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필자의 '남성약자론'과도 연계되는 부분인 게

전통 보수적인 남녀관계 하에서
여성은 보통 아이의 삶과 역할을

남성은 보통 으른의 삶과 역할을 요구받기 때문이다. 


물론 너무나 당연하게도, 필자의 가치관에선 

'상대적인 아이'를 요구받는 여자의 삶이 

'상대적인 으른'을 요구받는 남성의 삶보다 결코 나쁘지 않으며, 오히려 그 반대라고 여긴다.


+촉법소년 폐지를 요구하는 대중의 정서 심리와 페미니즘에 거부감을 표명하는 대중의 정서 심리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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