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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Jan 16. 2024

시마즈 요시히로

꼬인 인생

영화 노량에서 메인빌런으로 나와 나름 근엄한 포스를 풍기던 시마즈 요시히로는 사실 왜장 중에선 꽤 불쌍한 케이스에 속한다. 


규슈 남쪽 사쓰마지역을 통치하던 시마즈 가문의 일원으로 전장의 선봉을 자처하며 규슈섬 통일을 추진했으나 하필 히데요시가 일본의 본토라 할 수 있던 혼슈지역을 먼저 석권해 버렸다. 규슈를 통합한 시마즈 가는 혼슈를 통합한 히데요시한테 체급면에서 상대가 안되어 결국 히데요시한테 귀속, 가문의 영지도 1/3로 다시 축소되어 버리고 만다. 만일 시마즈 요시히로가 20년쯤 먼저 태어나 규슈통일을 먼저 완수했더라면, 노부나가-히데요시의 전국체패에 더욱 강력한 걸림돌로 작용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역사의 IF는 없는 법.




히데요시의 전국통일 후 시마즈 가는 요시히로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던 형이 담당했고, 무사체질의 요시히로는 '무사로써' 계속 살아가기 위해 조선으로 출병해 계속 활약을 이어나가지만 그러한 그의 분전에도 임진왜란의 전황은 일본 측에 계속 불리하게 진행된다. 


결국 왜란의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가 순천에서 이순신 함대에 고립되고, 시마즈는 고니시 살린답시고 자신의 남은 전력을 닥닥 긁어가 노량으로 진격한다.


영화에선 고니시가 자신을 살리기 위해 피똥 싸는 시마즈를 위해 후방에서 이순신을 공격하러 나갔다가 시마즈가 자기 부하를 죽인 걸 보고 마음을 돌리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 시마즈는 고니시의 부하를 죽인 적이 없다. 그냥 고니시는 (자신을 살리려고 죽을 둥 살 둥 싸우는) 시마즈를 구원해 준답시고 '감히' 이순신이랑 비벼볼 생각이 애초부터 1도 없었고 그냥 시마즈를 고기방패로 던져 넣고서 자기만 살아 도망칠 요량이었던 것이다. 뭐 결과적으로 시마즈는 다들 잘 알다시피 복날 개 맞듯이 처 맞고서 강물에 장사 거하게 치르고 간신히 목숨만 건져 본국으로 ㅌㅌ했다. 그래도 소 뒷걸음치다 쥐 잡듯 이순신 킬을 딴 게 최고의 업적ㅇㅇ

(그렇게 본국에 돌아오고 나서 고니시한테 X랄한 후일담이 없는 걸로 봐서 나름 대인배 기질은 있었던 듯하다.) 





그렇게 본국으로 귀국하고 나니 일본열도는 이에야스파벌(동군)과 反이에야스파벌(서군)로 쫘악 갈라져 있었더랬다. 평소 이에야스와 친분이 있었던 시마즈는 내심 이에야스 쪽에 붙고 싶었던 것 같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면 이 인간의 말년은 그나마 좀 편했을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시마즈가 무언가 해 보려 하기도 전에 시마즈의 군단이 '갑자기 거병한' 서군 세력들에게 에워싸여 버리고 말았다. 구술했듯 노량에서 이순신이랑 엮였다가 대부분의 부하들을 남해바다 물고기밥으로 꼬라박고 온 시마즈 요시히로에게 남은 전력은 기껏해야 1500명. 이걸 가지고 자신을 포위한 서군세력에게 저항하는 건 무의미했고 결국 요시히로는 똥 씹은 표정으로 얼떨결에 서군에 가담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서군의 대장 이시다 미츠나리는 '꼴랑' 1500명 들고 와서 똥 씹은 표정하고 있는 시마즈를 떨떠름하게 취급한다.)


원래 서군 할 마음도 없었고

자신을 찬밥 취급하는 이시다도 마음에 안 들고

병력은 이순신한테 다 조공해서 1500명밖에 안 남았고 

자신을 고기방패로 야무지게 잘 써먹은 고니시랑 같은 편인 것도 영 떨떠름하겠고


시마즈 요시히로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거의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언가를 할 여건도 아니었다. 그렇게 동군한테 또 한 번 더 처발리면서 전력은 80명(!)까지 줄어버렸고 그 상태로 다시 한번 목숨만 건져서 규슈 쪽으로 달아나지만..(이 때도 살아서 도망친 걸 보면 확실히 탈출 능력만큼은 발군이었던 것 같다..)



이미 일본 천하는 이에야스의 것이 되어 있었다. 이에야스는 자신이 나름 공을 들였음에도 결국 서군으로 들어가 자신에게 칼을 겨눈 시마즈를 손 봐주려 했는데, 평생 밖으로만 돌아다녔던 시마즈 요시히로와 그렇게 정이 깊지 않았던 시마즈 본가에선 "요시히로 쟤가 말년에 노망이 나 혼자 미친 짓을 했을 뿐 우리 시마즈가문과는 전~~ 혀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라며 칼손절을 친다. 그리고 그 호소가 먹혀들어가 이에야스는 시마즈가문을 징벌하려던 계획을 철회한다.


여하튼 그렇게 모든 끈이 다 떨어져 나간 시마즈 요시히로는 일본의 후미진 강원도 두메산골에 처박혀 치매로 고생하며 벽에 X칠이나 하다가 쓸쓸하게 사라지고 만다. 무려 '이순신을 죽게 만든' 무장의 말로치곤 꽤 처량한 엔딩인 것이다.


영화 노량의 마지막 부분에서 시마즈 요시히로가 둥둥 울리는 조선군의 북소리에 머리통을 싸매고 "저 북소리 좀 없애줘. 작작 좀!"이러면서 괴로워하는데 동서남북 전천후로 다 꼬여버린 그의 인생 전반을 관통하는 상징적인 장면이 아니었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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