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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Oct 31. 2024

공격적인 언사들

에이리언 vs 프레데터

좌우 양쪽에서 나를 미워하는 꽤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럴 법도 하다. 지난 수년간 가장 악랄한 어휘들을 동원해 제도권 민주화, 산업화 양대진영을 대차게 물어뜯고 다녔으니 말이다.  




사실 정치사회적으로 내고 싶은 목소리가 있다면, 내고 싶은 목소리는 있는데 이를 스스로 표출할 만한 '밑천'은 전무하다면, '제도권 대감님들'과의 연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대감님들과 연대를 하더라도 그들에게 완전히 포섭되어 본래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을 완전히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 때 많은 이들이 페미피씨에 반대하는 길을 걸어갔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현실적인 이유로 대감님들에게 지원을 요청하러 떠났고, 그랬던 대부분이 지금은 본래의 문제의식을 상실한 채 그저 대감님들의 지령문 매뉴얼이나 딸딸 외우고 다니는 거수기로 전락해 버렸다.


기성세대 민주화, 산업화의 '대감'들은, 너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해도 되는데 다만 페미니즘이나 피씨주의를 건드는 것만큼은 용인할 수 없다고, 그것만은 포기해야 도와줄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간단하게, 너희의 문제의식 대부분을 포기하고서 그저 백날천날 이재명 개X끼 김건희 개X끼나 외치는 제도권 정치판의 치졸하고 유치한 앵무새역할이나 하라는 것이다.


필자가 제도권 기성세대 대감들, 그들과 혐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극도로 혐오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언제나 주둥이로 자유와 민주를 떠들어댔지만 정작 그 '자유' '민주'에는 페미 피씨를 거부하고 반대할 권리 같은 건 포함되지 않았던 것이다. 대감들은 언제나 자신들이 허락해 준 좁디좁은 선택지 속에서 에이리언이냐 프레데터냐, 프레디냐 제이슨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고통을 선사하고선 그런 고통스러운 고뇌를 '자유'와 '민주'라고 불렀다.



그래서 지난 수년간 그들에 대해, 그 세태에 대해 좋은 말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준다는 건 없고 달라고만 요구하는 이들에게 도무지 좋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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