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의 두 영화는 1990년대~2000년대 초반(소위 '노무현'으로 상징되는..)에 끗발 날렸던 흥행작들로 당시 한국의 반체제-반문화 전성기를 잘 보여준다. 영화의 주인공은 조폭, 건달이다. 이들이 저지르는 반사회적 행위들은 낭만화되고 대중들은 열광한다. 살인범 신창원이 국민적 영웅이 되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장래희망에 조폭, 건달, 깡패가 심심찮게 등장하여 교육자들을 애먹이던 그런 시절이었다. 일진 청소년의 일탈을 낭만화하는 분위기 속에 학교폭력이 극단으로 치솟았던 시절이기도 하다.(무수히 많은 '박세환들'이 여기에 죽어나갔지만 아무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누차 말했듯 이게 필자가 정치사회적 문제의식이라는 걸 가지게 된 시발점이다.)
오늘날 민주진보의 가장 열성적 지지층이 된 '그 세대들'은 저 분위기에 심취했고, 환호했고, 열광했었다.
2.
일전 당의정에서 활동할 적 이름을 대면 알 법한 저명한 진보인사 한 분에게 들었던 이야기이다.
이 분은 딱히 엄숙한 격식이 요구되지 않는 자리에서도 애써 풀정장 세팅을 하고 다니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진보인'에게 한 소리를 들었단다. '진보'에선 그렇게 꽉 막힌 정장을 고집하는 게 좋지 않다고. 우리 진보는 소위 '보헤미안 정신'이라는 게 있어서 좀 풀어지고 건들건들? 해 보이는 걸 좋아한다고 말이지. 너무 범생이처럼 보이지 않는 게 좋다는 말인데,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더라는 말을 내게 해 주셨다.
대체 이러한 진보 반체제-반문화적 정신문화는 어떻게 탄생해 널리 퍼져가게 되었던 것일까?
...
3.
'반란'이라는 개념은 전근대에도 있었지만 근대 이후의 '그것'은 전근대의 '그것'과 다소 차이가 있었다.
전근대에도 '반란'은 있었지만, 매번 사회의 극히 일부만을 바꾸었을 뿐이다. 문제의 근원이라는 왕이나 일부 기득권 대감님들, 혹은 정책 몇 개를 바꾸고 나면 반란은 사그라들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무수히 많은 '반란'이 있었지만 봉건질서체제 그 자체는 계속해서 유지되었고, 그렇게 전근대적 봉건질서는 수천 년의 시간 동안 유지, 존속될 수 있었다.
그러다 미쿸 독립, 프랑스 대혁명과 함께 '근대'가 발화되지 이야기는 완전히 바뀐다.
미쿸과 프랑스의 '반란자들'은 그저 왕 내지 대감님 몇 목을 따는 선에서 '일'을 마무리하지 않았다. 그들은 체제 자체를 왕창 뜯어고쳤다. 봉건제를 무너뜨리고 초기 근대적 자유주의 공화주의 질서라는 것을 수립한 것이다. 이와 함께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수천 년간 유지되던 도덕 윤리적 가치질서체계 자체도 엄청난 격변을 겪게 된다. 과거에는 악덕이었던 것들이 미덕이 되고, 미덕이었던 것들이 악덕이 된다. 전복과 해체!
4.
다시 말 하지만 이건 (수 천년 간 같은 도덕 윤리체계 속에서 살아오던..) 인류에게 있어서 엄청난 충격이었다. 지금 미덕인 무엇인가는 미래의 더 발전된 체제의 입장에서 보면 악덕일 수도 있다! 니체는 이 근대적 충격을 '계보학'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발전시켰고, 그런 니체를 통해 그런 문제의식(도덕 윤리의 가변성)은 더욱 넓게 퍼져나가게 된다.
분명히 마르크스의 이론은 니체보다 더 과격했다. 마르크스주의는 우리가 지금 시점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그 도덕 윤리적 가치들에 대해 지배자들이 우리를 노오예로 복속시키기 위해 만들어놓은 통제장치 즈음으로 치부했다. 때문에 우리는 도덕, 윤리적 인간이 되어선 안되며, 오히려 그걸 거부하기위해 노오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인간이 해방된 '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5.
지금 우리에게 주어지는 도덕이나 윤리가 영원불변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 지금 옳다고 여겨지는 무언가가 더 발전된 미래의 기준에선 악덕이고 어리석은 행위일 수 있다는 생각. 더 나아가 도덕 윤리가 단순히 낡은 걸 넘어 사악한 통치자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만들어진 간사한 세뇌장치에 불과하다는 생각. 여기서 진보좌파적 반체제 정신문화가 탄생했다.
좌파 반체제주의자들은 단순하게 왕이나 대감 몇 놈의 목을 따는 걸로 끝나는 '반란'을 기획하지 않았다. 왕이나 대감 몇 놈을 넘어 기존의 모든 질서 윤리체계가 다 거짓이다. 고로 우리의 '반란'은 단순히 왕의 목을 따는 걸 넘어, 수백 수천만 인간의 머릿속 도덕윤리체계 그 자체를 모조리 불사르고 태워버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인류사회 전체를 '재구축'해야만 한다!
어차피 공산주의라는 인류문명 최종엔딩의 시점에서 보면, 지금 개돼지들이 부둥부둥하고 있는 현시점에서의 도덕 윤리들이란 전부 거짓 허상에 지나지 않을 테니 우리는 그래도 된다.
그렇게 반체제 좌파들은 현시점에서의 모든 도덕 윤리체계들을 비토 하고, 거부하는 성향을 가지게 된다.
6.
좌파의 반체제에 있어 중요한 점에 또 하나 있다. 초기 진보좌파들은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은 철저한 유물론자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유물론은 '물리물질적이고 실질적인 모션'을 중시한다.(이 지점에서 관념론으로써의 종래 종교들과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
기존의 가치질서체계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생각(관념)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물리물질실질적인 모션(유물)으로 표출되어야만 한다! 물리물질실질적으로 표출되지 않는 생각(관념)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이 그 문제의식을 표출(유물)해야 세상이 실질적으로 바뀌던가 할 거 아닌가!
여기서 저항자, 반란자라는 명목 하에 사회의 모든 도덕 윤리 가치질서를 무시하는, 껄렁껄렁 건들건들 깡패 건달과 같은 태도를 막연하게 낭만화하는 풍조가 나타났다. 그 기원이 여기에 있었다.
7.
68 혁명을 통해 '신좌파'가 나오면서 비로소 '껄렁껄렁 건들건들 아무렇게나 마약 섹스' 이런 삶의 태도에 대한 낭만화 풍조가 나타났다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일부만 맞는 이야기이다. 물론 68 신좌파 혁명을 통해 '그런' 태도가 '더' 활성화된 건 맞다. 하지만 거기까지 오게 되는 그 사상적 기원은 이미 구좌파 시절부터 아나키즘이나 반권위주의 등등을 통해 충분히 마련되어 있었다는 점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물론 구좌파시절의 '반체제'가 신좌파의 '반문화'와 완전히 같지는 않다. 이를테면 구좌파의 반체제 '껄렁껄렁'은 그저 최종단계 공산주의를 임하게 하기 위한 준비과정 즈음으로 여겨지는 측면이 있었다. 그들의 믿음대로 공산주의 세상이 도래하면 '껄렁껄렁'을 내려놓고 다시 얌전 유순 범생이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68 혁명 시점에 오게 되면 그러한 '믿음'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소오련 스탈린체제, 마오쩌둥과 문화 대혁명, 북한 김 씨 일족 등등 현실 사회주의의 오점들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하며, '공산주의체제를 통한 인류문명 완성 엔딩'이라는 진보좌파의 오랜 믿음에 대한 반론들이 들끓게 되었고, 그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나온 신좌파는 여기에 답을 내어놓아야만 했다.
신좌파의 답은 심플했다. 그토록 고대하던 현실 사회주의조차도 완전한 정답은 아니었고, 인류문명체계 안에서 어떤 완성으로써의 정답을 찾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는 것이다. 그럼 이제 답은 하나다. 문명질서 그 자체를 거부하자! 여기서 좌파의 반체제는 반문화로 넘어간다.
이제 더 이상 '껄렁껄렁'은 공산주의를 위한 준비단계 따위가 아니다. 우리는 그 어떤 체제이건 문명질서 그 자체를 거부한다. 고로 우리의 껄렁껄렁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앞으로도 영원토록 지속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좌파식 반문화였다.
중요한 건 구좌파식 반체제건 신좌파식 반문화건 지금 현 자유민주체제 하에서의 문명질서를 긍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엔딩의 시점을 어디에 두건, 일단 지금 여기서는 '껄렁껄렁' 할 것이다. '껄렁껄렁'에 있어 신좌파와 구좌파의 차이란 딱 그 정도인 것이다. 알면 알 수록 느끼는 부분인데, 신좌파와 구좌파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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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이러한 진보적 반체제-반문화 풍조가 특히 최악인 점은 바로 대중 전반에 대한 경멸에 있다.
진보좌파의 반체제-반문화 풍조에서 가장 나쁘게 보는 태도는 '현 제체에 대한 순응'이다. 소위 말하는 '범생이들' 말이다. 그래서 반체제-반문화를 숭앙하는 진보좌파들은 찐따, 샌님, 마마보이, 파파걸, 체제부역자, 비겁자 등 온가지 프레임을 동원하여 '범생이'적인 삶의 태도를 짓밟아왔다. '범생이'는 사라져야 할 구체제의 부역자이다! 그래서 진보좌파가 주도권을 잡은 문화시장 속에 '범생이'는 더 이상 긍정되지 않는다. 위에 언급한 두 영화처럼 주인공은 언제나 반체제-반문화적 '저항자'여야만 했다.
그런데 생각을 해 보자. 아무런 밑천이 없는 노동계급 대중 일반이, 그런 '껄렁껄렁' 삶의 태도를 유지하면서 체제 내에서의 생존을 보장받는다는 게 가능한가? 능력, 재산, 외모, 지능 등등에 있어 특별한 자산(?)을 가지지 못한 일반 노동대중 입장에서 그러한 껄렁껄렁 반체제-반문화적 삶의 태도를 유지한다면, 그는 바로 체제로부터 배제되어 소멸하게 될 것이다. 사실상 자/살행위나 다를 바가 없다.
그런 반체제-반문화적 태도를 일상에서 꾸준히 유지존속해 나갈 수 있는 이들은 역설적으로 기존 체제 하에서 상당한 밑천을 가지고 있는 중상위 계층(상위 중산층, 귀족)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진보좌파가 중시하던 반체제-반문화적 삶의 태도는 진보좌파의 초기 의도와는 다르게 귀족 상위중산층을 중심으로 퍼져나가게 되고, 그렇게 한가로이 살아도 생존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그들의 우월한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주는 일종의 지위재화로 변질된다. 바야흐로 '사회의 일진들'인 것이다. 그리고 이 '상위계급 좌파 엘리트들'은 자신들처럼 반체제-반문화적 껄렁껄렁을 시도하지 못하는 하급 노동계급 대중들을 찐따 범생이라 비하하고 조롱하며 경멸한다.
진보좌파 정치세력이 맨날 입으로는 노동대중을 위한다 떠들어대지만 실재 지지기반은 귀족 상위중산층 상아탑 지식인계급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분명히 말하건대, 기존 체제 질서 속에서 불가피하게 '순응'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노동대중일반을 향한 이러한 경멸과 멸시 풍조를 극복해내지 못한다면, 진보좌파가 그들의 의도대로 하급 노동대중 일반으로부터 사랑받는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200년 동안 그러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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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마지막 사족을 붙이자면, 진보좌파의 무수한 갈래 중 하나인 페미니즘도 이 반체제-반문화 도식의 영향을 짙게 받았다. '남성'이라는 폭정의 근원을 설정하고서, 그 치하에 존재하는 모든 도덕 윤리체계를 부정한다. 남녀 간의 사랑은 거부장질서의 더러운 세뇌 프레임이며, 가부장 기득권에 부역하는 족쇄로써 이성애 가족질서는 붕괴되거나 재구축되어야만 할 것이다. 우리 여성들은 이러한 혁명적 변화를 쟁취하는 날까지, 저 간악한 냄져무리에 맞서 단일대오로 투쟁해 나아가야 한다. 투쟁!
16년 강남역시국 때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이 전태일이나 윤봉길 같은, 소위 까방권으로 여겨져 온 어떤 '권위들'을 모독하려 했던 건, 남성 가부장 질서체계하에 있는 그 어떤 도덕 윤리도 인정치 않겠다는 그들 나름의 반체제-반문화적 선언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가치체계 하에서 '같은 여성들'의 단결을 요구했고, 이에 응하지 않는 '범생이 여성들'에겐 가부장제의 부역자라는 딱지를 붙여 린치를 가하고 다녔다. 여기서 이들의 과격한 '반체제' 방법론에 동의하지 않는 '온건한' 여성들의 반발이 뿜어져 나왔고 결과적으로 강남역에서 시작된 페미니즘 열기 전체가 가라앉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