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탄핵정국 사태로 쏙 들어가 버렸지만 국제적으로는 지금 엄청 심각하게 여겨지고 있는 시리아 이야기를 좀 해보겠다.
시리아 아사드 대통령 북한식 독재자였다. 반서방 계열이고, 그 아비로부터 권좌를 세습받아 철권을 유지했다. 15년 전, 중동을 뒤덮은 민주화의 물결이 시리아에도 닿아 자신의 권좌가 위태로워지자 그는 비상계엄을 발동해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시민들에 대한 무력제압을 시도했고, 불행히도 당시 시리아의 군인들은 자기 내 대통령 명령을 '충실하게' 수행해버리고 말았다. 동방의 어느 나라처럼 눈치껏 설렁설렁 이 아니라 말이지..
그러자 나라는 즉각적으로 파국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전국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무더기로 학살을 당했고, 결국 시민들은 살기 위해 무기를 들었다. 민주화운동은 내전으로 이어졌고, 그 내전이 10년을 넘어가면서 전 국토가 초토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자는 '도로 아사드'가 될 것처럼 보였다. 반군의 주도권을 쥐게 된 이슬람주의자들에 대한 경계심은 서방세계로 하여금 반군에 대한 지원을 줄이도록 만들었다. 반면 아사드는 러시아, 이란, 헤즈볼라등 전통적인 반미라인의 지원을 빵빵하게 받으며 승승장구했던 것이다.
결국 아사드에 적대적인 반군 세력들은 국토의 끄트머리 후미진 곳(이들리브 일대)까지 내밀려 튀르키예의 비호 하에 정말 초라한 목숨만 부지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거나 어떤 식으로 건 아사드 정부와 쇼부(?)를 보고 얌전해지는 쪽을 택하던가, 이도 저도 아니면 지하로 내려가 숨죽이는 쪽을 택해야만 했다. 그렇게, 압제자는 용서받을 수 없는 실책으로 정치적 정당성을 상실했으면서도 이를 응징받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호의호식할 것으로 보였다.
...
하늘 아래 영원한 건 없다던가. 아사드 정부군의 주도 하에 혼란이 정리되는 듯했던 시리아에 다른 변수가 찾아왔다.
먼저 아사드의 최대 후원자였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가 예상을 훨씬 웃도는 저항에 직면하면서 국력을 심각한 수준으로 소모하게 되자 더 이상 시리아의 아사드를 과거처럼 지원하긴 어려워졌다. 그리고 이란과 헤즈볼라 역시 최근 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르면서 많은 힘을 소진해 버렸고, 특히 아사드의 지상군으로 눈부신 활약을 해 주었던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에 의해 거의 궤멸 직전까지 내몰렸다.
지금까지 아사드를 지켜주던 모든 외세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러자 그간 죽은 듯이 숨죽이고 있던 반군들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들리브의 반군들이 알레포에서 대승을 거두자 이에 고무되어 각지에 숨어있던 반군들이 전 국토에서 들불처럼 일제히 들고일어났다. 그리고 불과 일주일 만에! 일주일 만에 전세는 완전히 뒤집혔다.
불과 일주일 만에! 시리아 전국토는 반군에게 다시 접수되었다. 지금 정부군은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절망적인 항쟁을 진행하고 있지만, 지금의 반군 기세라면 일주일은 커녕 내일도 넘기기 어려워 보인다.
국제사회가 개입하여 반군을 자제시키지 않는다면(근데 누가?? 왜??), 이제 아사드에게 남겨진 선택은 몇가지 없다.
1. 외국으로 망명
2. 히틀러의 벙커 엔딩
3. 반군에게 체포 후 처단
물론 반군이란 게 하나의 수직적 체계로 묶여있는 통일된 집단이 아니다 보니 그들이 승리한다 해서 시리아 내전이 완전히 종식된다고는 보기 어렵다. 향후 정국 주도권을 놓고 자신들끼리 싸움을 지속해 갈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건, 이 내전의 시발점이었던 아사드 정부군은 분명 끝장이 났다는 것이다. 아마 IS의 뒤를 따라가겠지ㅇㅇ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서도 일부 세력의 적극 비호로 승승장구할 수 있어 보였던 아사드. 하지만 결국 그도 어떤 식으로 건 응분의 대가를 지불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사필귀정의 엔딩을 영원히 회피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 글을 적고 나니 다마스쿠스가 함락되었고 아사드정권의 붕괴가 공식적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아사드의 소식은 오리무중인데 아마 결정적인 순간에 비행기를 타고 레바논 쪽으로 탈출하지 않았나 조심스럽게 짐작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