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는 거 싫다고 우기면 우길수록 상황은 더 수렁으로 간다.
어떤 상황을 가정해 보자. 공이들 회원이 한 명 있는데, 이 회원이 페미니스트와 언쟁을 다가 너무 열이 받아서 그 페미를 칼로 찔렀다고 말이다. 이게 공중파 뉴스를 탔고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이때 대표가 보여야 하는 바람직한 반응은 하나이다. 그냥 X 됐구나~ 생각하고 최대한 빨리 사람들 앞에 나아가 불판 깔고 도개자를 박는 것이다. 상대방이 말을 좀 기분 나쁘게 했다고 그걸 칼로 쑤시는 게 '멋진 일'이 될 수 있을 거라 진지하게 믿는 미친 새끼를 그저 반페미라고 회원으로 받아줬던 제 잘못입니다. 숭고하고 거룩하신 페미님들과 세상사람 분들, 우매하고 저급한 저희들로 인해 얼마나 상심이 크시옵니까. 그저 미천한 것들 불쌍히 여기사 한 번만 살려주시면 착하게 살겠네 어쩌네 궁상궁상~ 무조건 이렇게 나가야만 한다.
이렇게 나가면 우리의 패배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고 공이들 조직의 타격이 불가피하다고요? 그 '패배'와 '타격'은 미친 새끼가 미친 짓 한 순간 이미 기정사실화 된 거고요, 지금 이렇게라도 도개자 박는 게 그나마 정치사회 논의의 장에서 우리가 목숨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조직 절반 날아가고 개병X 반불구가 되겠지만 그나마 지금 이렇게라도 안 해두면 우리에겐 아예 미래가 없다고 말이지.
지금 이 계엄/탄핵정국을 '선량한 민주페미 vs 사악한 반페미 X대남 파시스트'로 잡고 몰아붙이려는 시도가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계속해서 통보가 들어온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솔직히 말해서 이제 이 판은 당분간 완전히 망한 거다. 트롤을 해도 좀 적당히 했어야지. 이건 뭐 어떻게 손을 써 볼 여지가 거의 없다. 이로써 동덕여대 사태를 거치며 궁지에 몰렸던 페미 쪽은 윤석열 반대 운동에 올라타며 상당 부분 세를 복원하게 될 것이고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간 반페미 반피씨 진영이 애지중지 쌓아왔던 모든 발언권과 영향력에 치명적 상흔을 입고서 어두컴컴한 지하로 숨어 들어가 끝이 안 보이는 긴 터널을 견디며 훗날의 재기를 기획하는 것뿐이다. 마치 시리아반군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가장 최악의 반응은, 이렇게 무너지는 게 너무 억울하다는 이유로 끝까지 계엄 잘못 인정 안 하고 눈귀 막고 버텨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어차피 배수진이라 더 이상 돌아갈 곳도 없다! 이리된 이상 끝까지 간다! 계엄이 뭐가 잘못? 칼슈미트! 초법상황! 좌빨척결! 박정희정신!
... 사실 그게 그간 우리가 그렇게 욕해왔던 '페미정신'이에요 이 사람들아.. 무언가 일이 틀어진 거 같지만 여기서 물러서면 다 끝장이고 그러니 끝까지 깽판 치며 버텨야 한다 동덕여대 라카 찍찍 동상 콩콩
정신 나간 페미들이 동덕여대에서 했던 짓거리를 전국단위로 벌이고 있는 거라고. 이럴 거면 앞으로 동덕여대, 페미니스트 어떻게 깔 거야? 세상이 좌빨에 뒤덮여있으니 그냥 총칼로 민주정 엎어버려야 한다는 주장을 그냥 동의해 버렸는데 세상이 한남 가부장에 뒤덮여있으니 우리는 초법적으로 깽판 쳐도 공동체가 오냐오냐 해줘야 한다는 페미들 앞으론 뭐라고 깔 거야?
이재명 되는 걸 막기 위해선 틀린 것도 맞다 해주고 맞은 것도 틀렸다 우기면서 악대악으로 싸워야 한다면
가부장 한남 막기 위해선 틀린 것도 맞다 해주고 맞은 것도 틀렸다 우기면서 악대악으로 싸워야 했다는 페미는 뭐 때문에 잘못됐다 할 거야?
이번 기회를 거치며 다시 한번 진지하게 느끼는 건
산업화 박정희정신 종교 전통보수주의 태극기 전광훈 우파, 한국에서 이 쪽 계보는 이제 좀 사라졌으면 한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거치며 다들 느꼈겠지만 이들은 진짜 진심으로 '그렇게 하는 게 멋진 일'이 될 수 있음을 믿어왔던 이들이다. 그런 이들이 권력과 연계되어 영향력을 가졌고, 박정희 구국의 결단 운운 방송들을 하며 '그런 상상력'을 끝없이 증폭시켜 왔다. 그리고 우리는 그 결과를 보고 있다. 누가 X 됐는가? 느그들이 입만 열면 그렇게 떠들어대던 '종북좌빨'이 망했는가? 아니면 느그들이 망했는가?
민주진보진영에 내려오는 오랜 격언(?) 하나를 들려주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그들(NL)은 정권을 잡고 세상을 바꾸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하지만, 진영을 망치고 세상을 어지럽히기엔 지나치게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