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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와이 May 20. 2021

떼네리페(Isla Tenerife), 그 섬 1

윤식당의 그 곳을 가다

정말 오랜만에 네 가족 모두 영화관으로 출동했다.

더빙이 아닌 스페인어 자막으로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을 찾아, 커다란 캐러멜 팝콘과 콜라를 챙겨 들고서 본 오늘의 영화는,

 

미나리(Minari)


윤여정 배우님은 이 영화에서 '여느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로 분했고, 이를 통해 오스카상을 수상하는 기쁨을 얻었다. 삭막한 미국으로 건너가, 뿌리를 내려보고자 하는 한국 이민자들의 삶을 담담히 그린 이 영화는, (이민으로 이 타국에 온 것은 아니지만) 미처 한 곳에 내리지 못하고 바람에 실려 다니는 듯한 느낌으로 살고 있는 나와 우리 가족에게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물론 아이들+어린이 취향 남편에겐 상당히 지루하단 평이...ㅋㅋ)


그녀의 수상소감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부분. 윤여정 님의 이런 위트가 너무 좋다. 미나리에서의 순자는 영화 안에서만이 아니라 실제로 윤여정이란 이름으로 살고 있는 듯하다.


사실 윤여정 배우님은 미나리 이전에 우리 집 안에선 '윤식당'의 요리사 할머니로 이미 알려진 분이었다.

COVID-19로 인한 이동통제가 극심했던 작년 봄 기간 동안, 지지고 볶는 하루를 마치고 조금은 평온감이 감도는 저녁시간, 온 가족이 모여 하루에 윤식당 한편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매일의 일상을 잠시 뒤로 하고
조용한 소도시의 한적한 풍경과 어우러짐을 꿈꾸다.

영원한 봄을 간직한 스페인의 어느 작은 섬.
온화한 기후만큼이나 인정 넘치고
따뜻한 사람들이 사는 곳.
여유롭게 흐르는 시간을 즐기고,
어떠한 것에도 쫓기지 않는 이곳에 [윤식당2호점]을 엽니다. - 출처 TVN-


반짝반짝하는 푸른 바다와 소박한 작은 마을.

그렇게 우리 가족의 여름 휴가지는 자연스레 그곳, '테네리페'로 결정되었다.


그렇게 떠난 2020년 7월의 3주간의 기억들.

활화산인 떼이데 산을 중심으로 해안을 따라 도로가 이어져 있다. 북쪽 해안은 가파르고 남쪽으로 갈수록 평탄한 지형인데, 윤식당 촬영지인 가라치코는 서북쪽이다.

[1] Marazul, 푸른 바다


마드리드 바라하스 국제공항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반 거리 카나리아 제도(Las Islas Canarias/The Canary Islands)의 7개의 주요 섬 중 제일 크고 인구가 많은 섬인 테네리페(Isla Tenerife)는 스페인의 남서쪽 대서양 건너편, 위도로는 유럽이 아닌 아프리카의 모로코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테네리페에는 북공항(aeropuerto de Tenerife norte)과 남공항(aeropuerto de Tenerife Sur) 두 개의 공항이 있는데, 우리가 이용한 공항은 수도인 산타 크루스(Santa Cruz) 근처의 북 공항이었지만 숙소를 남서쪽의 아데헤(Adeje) 근방의 마라술(Marazul)로 결정하였다. 스페인어로 Mar는 바다, Azul은 파란색을 의미하는데, 그 이름 그대로 파란 바다의 지역답게 산 후안 해변(Playa San Juan), 두퀘 해변(Playa de Duque), 파냐베 해변(playa Fañabé) 등의 특색 있는 해변들이 주욱 이어져 있어 아이들과 함께 자주 바닷가에 나가기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특이한 점은 유럽 사람들에게 테네리페가 워낙에 휴양지로서 인기가 있는 지역이어서인지, 각 리조트마다 특정 국적의 사람들이 모이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일례로 우리가 에어비앤비로 잡은 콘도가 있는 Marazul 리조트는 프랑스인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어서(심지어 집주인도 프랑스인) 호텔 수영장의 워터 에어로빅 프로그램도 프랑스어로 진행될 정도였다.



-Marazul 근처

아쉽게도 리조트 근처의 해변은 해수욕 하기엔 적합지 않았지만 석양이 질 무렵 산책을 하며 해가 지는 대서양의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좌측, 숙소에서 보였던 석양. 우측 사진의 바다 멀리 보이는 것이 카나리아 제도의 섬 중 하나인 라 고메라 La Gomera 섬.


- Costa Adaje 근처의 해변들 : Fañabe beach, Playa de Torviscas, Playa del Duque


Fañabe beach, Playa de Torviscas, Playa del Duque 등의 해변은 해수욕장으로서 개발이 많이 된 지역이었다. 이것은 근처에 편의시설이 많아 편리하다는 의미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이 많고, 해변이 그다지 깨끗하지는 않았다는 의미도 된다. 하지만 각종 액티비티를 제공하는 가게들이 많고, 가까운 Siam mall에서 쇼핑을 즐기며 레스토랑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기도 좋은 해수욕장 들이다. Duque 해변 근처의 Centro Comercial Plaza del Duque에는 명품 편집샵들도 있어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가봐야 할 곳.


Fañabe beach, Playa de Torviscas에 비해 Playa del Duque의 모래가 더 하얗고 고운데, 이는 모래를 인공적으로 뿌려 만든 해변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떼네리페는 화산섬이기 때문에 해수욕장의 모래가 검은빛을 띠는 것이 일반적이다.


- Callao Salvaje

깊고 푸른 바다빛이 인상적이다.

근처에 영국인들이 선호하는 리조트가 있어서 그런지, 영국식 아침식사를 파는 가게가 몇 군데 있었다. 이 곳 해변에선 해수욕은 하지 않았지만, 유독 푸르러 보였던 바다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 Playa San Juan

Marazul에서 북쪽으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던 바로 산 후안 San Juan 해변이 우리 가족이 가장 여러 번 찾았고 사랑했던 장소이다. 해변의 모래는 화산암 특유의 검은 빛깔을 띄며, 둥글게 마모된 검은 돌들도 섞여 있는 해변이었다. 스페인 북부 해변에서 보았던 하얗고 아름다운 모래빛에 한껏 높아져버린 안목엔 최고로 아름답다!라는 말을 붙이진 못하겠지만, 가족단위로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모이는 (반면 Duque 해변 등은 젊은이들이 모인다) 파도가 잔잔하고 아름다운 해변이었다. 또한 공중 화장실도 있고, 발에 붙은 모래를 씻어낼 수 있는 수돗가도 있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놀기 좋았다. 단, 레스토랑은 많지 않았기에 식사는 대부분 숙소로 돌아와서 하거나, 싸간 간식으로 요기를 하는 정도로 해결했다.

산 후안 해변에서 각기 다른 날 찍은 사진들. 조용하고 평화로운 이 곳이 우리 가족의 최애 장소였다.

[2] 가라치코, Garachico


윤식당을 촬영한 가라치코를 가는 것은 이번 여행의 목적과도 같았기에, 당연히 숙소를 벗어나서 간 첫 행선지가 되었다. 따뜻하고 작은 마을, 테라스에서의 한가로운 식사를 기대하면서, 혹시나 윤식당을 촬영했던 바로 그 식당이 열었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서 출발!


평탄한 지형의 남부 해안을 벗어나 떼이데 산 지역을 가로질러 북쪽으로 갈수록 험난한 지형+꼬불꼬불한 길이 이어진다. 저 멀리 보이는 떼이데 산의 정상을 바라보며 한 시간 가량을 달려 아, 드디어 저 쪽이 가라치코인가?라고 생각하며 산비탈을 내려갈 즈음엔 비탈의 경사가 무지막지하게 심해서 마치 차를 타고 그대로 바다로 돌진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차를 타고 그대로 바다로 들어갈 것 같은 느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렌트한 차의 승차감에 아직 익숙지 않은 데다 수 없이 만나게 되는 급 커브들 때문에 온 가족 모두 멀미가 나고 있어서 어서 차에서 내리고 싶었다.


우여곡절 끝 드디어 가라치코에 도착!

기대감 만발!


가라치코의 상징인 Plaza de Libertad,  자유의 광장. 그런데 이 분위기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갔을 때의 가라치코는, 프로그램에서 보여주었던 반짝임을 잃고 있는 상태였다...

때는 2020년 7월, 코로나라는 마왕이 할퀴고 간 흔적이 생생하던 그때, 가라치코는 그 타격으로 인해 심각한 내상을 입었음이 분명했다.


정상적이었으면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로 북적였을 이 길들이, 그저 조용하고 적막하기만 하다...
Youn's Kitchen 자리. 굳게 닫혀 있다.

식사를 하기 위해 찾아간 윤식당의 그 자리엔 굳게 닫힌 문만 있었고, 근처의 해산물 레스토랑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 또한 윤식당에도 꽤 비중 있는 역할(?)로 출연했던 근처의 고급 레스토랑도 역시나 문이 닫힌 상태. 그나마 윤식당의 건너편 건물에 있는 작은 피자 가게가 문을 열고 있어서 몇 가지 메뉴를 시키고 털썩 앉았다.


아이들 역시 "여기가 윤식당에서 나온 곳이야?" 라며 실망한 눈빛이 역력했지만 이내 좋아하는 페퍼로니 피자를 먹으며 콜라를 마시고 나니 기분이 풀려 광장에 나가 뛰어놀기 시작한다. 나와 남편은 그 모습을 보며 남은 식사를 천천히 했는데, 드문드문 여러 나라의 말소리가 지나가긴 했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광장의 따사로움과 여유와는 거리가 있는 분위기였다. 꾸물꾸물한 날씨 때문일까 내심 그 탓으로 돌리고 싶었지만...


몇 가지 알게 된 것!


- 윤식당에서 고기나 햄을 파는 carneceria(정육점) 한 곳이 자주 등장하는데, 식당 자리와 그 정육점은 같은 건물의 다른 면이었다! 그 거리가 걸어서 어느 정도 떨어진 곳처럼 만든 건 편집기술이었던 것!

- 그리고 정유미 분이 상큼하게 걸어서 출근하던 Plaza de Libertad 자유의 광장은 ‘영상에서 만큼은 넓지 않았다’. 촬영 기술의 덕이었지 않았나 싶다.

- 박서준이 없는 키티 놀이터는 그냥 동네 놀이터였을 뿐이었다......^^;;;

아이들이 없어 더욱 썰렁한 놀이터. 저 공룡의 정체는??? 바로 손소독제 디스펜서.


이렇게 점심을 때우고 바닷가 쪽으로 걸어갔다.

다행히 천연 바위 해수욕장(Piscinas Naturales de El Caletón)은 운영을 하고 있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이용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천연 수영장은 바위 사이에 물이 고여 잔잔하지만, 근처의 파도가 상당히 높고 험한 곳이라 다른 해수욕은 하기 어려워 보였다.

높고 험한 파도. 마스카 지역과 이어져 있는 떼네리페 북서부 해안은 해안이 급경사로 이루어져 지리상으로 좋은 모래 해변이 생기긴 어렵다.
커피를 한잔 하고 싶은 마음에 찾아가 본, 동네 개가 옥상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던 까뻬떼리아 Proa 도 역시나 문을 닫았다...


바닷가 근처 Heladeria de Abuelo(직역하면, 할아버지 아이스크림 집)에서 윤식당 식구들이 먹듯이 젤라또를 사 먹어 보았다.

아쉽게도 가게 안을 찍은 사진이 없지만 다양한 천연 과일 맛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에 왠지 모르게 실망스러운 이 마음이 조금은 달래지는 것 같았다....


가라치코는 그대로 가라치코일 뿐이었다.

그 빛을 바래게 만든 것이 이 마을의 탓이 아님을 알면서도,

아, 남은 3주나 이 떼네리페에서 보내야 하는데, 이런 실망만 계속되는 건 아닐까란 생각들,

정말 오랜만에 오게 된 여행인데, 행선지를 잘못 선택한 거 한건 아닌지, 약간의 후회가 밀려오고 있었다.


과연 어떤 여행이 될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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