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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와이 Jun 28. 2021

다가오는 보랏빛 향기의 계절

라벤더의 보랏빛 바다

어느 나라든 흔히 볼 수 있는 꽃과 나무가 있다. 우리나라의 은행나무, 벚나무가 그렇듯 라벤더는 스페인의 길거리나 심지어 아파트 단지 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물 중 하나다.


라벤더의 꽃말은 ‘정절, 풍부한 향기, 기대, 대답해주세요’라고 한다. 꽃말 그대로 라벤더라는 이름에서도 특유의 잔잔한 향기가 나는 듯하다. 그러나 라벤더 한그루가 홀로 서 있으면 아마 못 보고 지나치고 나서 “어? 그게 그거였어?” 할 정도로 가냘프고 보잘것없다.


하지만 이 작은 꽃이 모여 인생 샷을 찍을 만한 멋진 풍경을 연출해주는 장소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마드리드에서 북동쪽으로 한 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브리우에가 Brihuega라는 도시는 유명하진 않지만 전 세계 라벤더 소비량의 10퍼센트를 차지하는 산지인 곳이다.


2020년 7월 초의 어느 주말, 난 머릿속이 익어버릴 듯 뜨거운 오후 햇빛을 받으며 브리우에가로 이동하고 있었다. 내심 이동하는 길목에도 엄청난 보랏빛이 펼쳐져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우리 뭐 잘못 찍고 온 거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아무것도 안 보이기에 슬슬 실망감이 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마을에 도착했지만, 무척 작은 곳이라 실수로 한번 밖으로 빠져나오니 다시 돌릴 길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옆에서 운전하는 사람의 미간엔 점점 주름이 잡힌다. 내 잘못도 아니건만, 여기 가자고 제안한 사람의 입장이 난처했다. 구글 지도만 따라가다 비포장 도로에도 한번 들어갔다오고.


우여곡절 끝 네비에 어찌어찌 lavanda field를 찍고 나서야 다시 길을 타고 꼬불꼬불 산길을 올라가는 길이 재설정되었다. 조금만 더 있다간 동행자가 당장 차를 돌려 집으로 가자고 할 것 같았다.


바로 그때,

드디어 끝없이 펼쳐진 라벤더 밭이 나타났다!


노상 주차장과 주차요원도 있고 밭 주변에 음료수와 라벤더 관련 제품을 파는 간이 가게도 마련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7월 둘째 주부터 라벤더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6시 정도였는데, 스페인의 시간 상 제일 더운 시간이고 뙤약볕이 뜨거워 어디서든 더위를 피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마침 저녁 먹을 시간이기도 해서 브리우에가 마을로 내려갔다 오기로 남편과 의기투합하였다. 오는 길엔 불만 가득했던 그도 막상 라벤더 향을 맡고 나니 기분이 누그러져 보인다.


마을 곳곳은 축제 준비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여기저기 보랏빛으로 장식이 되어있어 눈길을 끈다. 축제가 시작되기 전 방문한 것이 아쉽다.


근처의 카페테리아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있는데,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자꾸 옆으로 지나가기에 궁금증이 생겨 그 길을 따라 올라가 보니 정원이 있었다. 마침 딱 문을 닫는 시간이라 안을 보진 못했지만 대신 이곳의 탁 트인 경치가 보이는 전망대의 시원한 그늘 아래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라벤더 밭으로 다시 갔다.

더 이상의 이야기는 불필요하다.



보랏빛으로 가득한 시야에 달콤한 향기는 보이는 것보다 더 크고 진하게 다가온다. 해가 지며 한낮의 열기가 점점 식기 시작한다. 석양이 물결 위에 내리며 바삐 움직이던 벌들의 날갯짓이 잦아들고 바람결에 꽃도 흔들리고 나도 흔들리고.


연보랏빛 바다에서 헤엄치는 가족들을 바라보며 몇 개월 동안 집안에 갇혀 있으면서 들었던 갖가지 우울한 생각들을 떨쳐버릴 수 있는 용기가 생겼고, 지금 이곳에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는 긍정의 힘이 생겼다.


혼자 외로이 서 있을 땐 그저 풀 한 포기 같았던 존재가 여럿이 함께 어우러져서 누군가에게 잊을 수 없는 노래를 들려주고 있었던 그곳.


Brihuega의 Campos de Lavanda


덧, 8월에는 이 곳에서 해바라기 밭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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