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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와이 Jul 30. 2022

¡Encanto!

스페인어를 안다면,

여전히 잘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스페인어 맛을 본 이후 마치 눈이 밝아지는 열매를 먹은 것처럼 보이는 세상의 지경(boundary)이 아주 조금 넓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특히 영화나 소설같이 이전엔 별생각 없이 스쳐지나 보내던 것들 중 번뜩 눈이나 귀에 걸려드는 것들이 있다.


디즈니의 최신작 '엔칸토(Encanto)'에 나오는 노래 한 구절.  


Columbia, Te quiero tanto!
콜롬비아, 널 진짜 진짜 사랑해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영화의 배경은 '콜럼비아'이고, 배경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일부러 ‘라틴 아메리카’ 스페인어로만 더빙판이 제작되었다고 한다.

(덧붙이자면 유러피안 스페인어와 라틴 아메리카 스페인어는 발음뿐 아니라 일부 생활 용어도 차이가 있다. 영국식 영어와 미국식 영어의 차이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

세심하게도 더빙 배우들 역시 콜롬비아인 배우들이 참여했다고.


제목인 ¡Encanto! 를 번역기에 넣고 돌리면 ‘매력’이라는 다소 심심한 말만 제시되는데, 내겐 ‘겁나 멋진!’ 정도로 느껴진다. 단어의 동사형인 Encantar는 좋아함을 넘어 ‘열광하는’ 또는 ‘사랑하는’ (I’m lovin ‘it)의 뉘앙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법적인 힘을 떠나 본인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영화의 주제를 담은 제목이랄까?


영화의 주요 사건이 벌어지는 배경이자 마법의 힘을 지난 공간인 '까씨따'는 집을 의미하는 'Casa(까사)'에 작다는 의미를 지닌 접미사 '-ita'를 접목하여 '작은 집'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극한 상황에서 가문을 재건해냈던 그 작은 지점이라는 느낌을 내포한 단어이다. 또한 주인공의 할머니는 '아부엘라'라고 불리는데, 이는 'Abuela'라는 단어 그대로 '할머니'라는 의미이다. 만약 '아부엘라 할머니'라고 하면 '할머니 할머니'라고 하는 셈인 것(역전앞?). 그리고 할머니의 본래 이름은 '알마'인데, 이는 'Alma(영혼)'을 의미하는 단어로 '마드리갈 가족'의 정신적 지주인 할머니의 캐릭터를 잘 보여주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 이름으로도 많이 쓰인다!


El español


출처 : https://youtu.be/5RJaxKaqWnw

스페인어를 모국어, 혹은 공용어로 사용하는 21개국의 나라를 El español이라고 한다. 전 세계 70억에 달하는 인구 중 15억의 인구가 사용하는 확장성이라곤 없는 중국어 다음으로, 약 4억의 인구가 스페인어를 모국어 내지는 모국어에 준하는 언어로서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다. 물론 제2외국어로 영어를 사용하는 인구를 생각하면 영어의 확장성을 따라갈 순 없을 테지만. 여기에 모국어가 영어인 미국의 3억 인구 중 1억 이상의 인구는 히스패닉 계열임을 감안하면 스페인어의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은 더욱 높아진다.


더욱이 세계의 대중문화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에서의 라틴 아메리카 인구의 급증은 세계의 문화 트렌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불과 20년 전엔 마카레나(Macarena)같이 귀를 잡아끄는 독특한 멜로디와 코믹 요소로 인기를 끌었던 라틴 팝은 1990년대 후반 월드컵 송으로 유명했던 Livin’ La Vida Loca 사실 제목으로는 스페인어 노래일 것 같지만, 사실 유명한 후렴구와 제목만 스페인어를 부른 리키 마틴과 섹시 스타 샤키라(Shakira)라는 인물들에 의해 슬슬 인지도가 올라가더니, 최근엔 앤 마리(Anne Marie)의 'Ciao Adios I'm done'같이 팝 음악 전반에서 스페인어 가사를 쓰거나 실제 스페인권 가수들과 협업을 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영화계에서는 더욱 직접적으로 이런 흐름이 보이는데 아예 소재와 배경 자체를 라틴 아메리카로 잡고 그 고증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멕시코의 전통 축제인 '죽은 자들의 날(El día del muerto)'을 배경으로 한 '코코(Coco)'나 앞서 이야기한 '엔칸토' 등이 그 예이다.


사실 미국이라는 나라가 탄생 배경의 절반 정도의 지분은 스페인 문화권에 있음은 현재까지도 미국 서부에 광범위하게 남아있는 지명에서도 알 수 있다.

  

로스앤젤레스가 아니라 로스 앙헬레스(Los angeles)
샌디에이고 가 아니라 샌 디에고(San diego)
산타페가 아닌 산타 페(Santa Fe)


라는걸 스페인어를 알지 못했다면 아마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로스앤젤레스던 로스 앙헬레스던 뭔 상관이야?'이라고 생각하는 건 '김치던 기무치던 뭔 상관이야?'라는 것과 비슷하게 그저 '모름'에서 비롯된 거라는 것... 그리고 이렇게 조금씩 무지에서 벗어날수록 할리우드발 대중문화에 길들여져 있던 나, 그로 인해 내 인식 속에 뿌리 깊게 박혀 있었던 '미국식' 영어를 돌아보게 된다.


스페인어를 알게 될수록 각종 미디어에서의 그의 위상이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가 보인다. 아니, 정확하게는 '미국 내에서'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다. 예전 같았으면 그저 하하하 웃고 지나갈 포인트였을 텐데, 아는 게 죄라고 그냥 웃지 못하고 뇌 속에서 한번 멈칫 걸리는 것은 이러저러한 느낌들이다.


학기 초, 주인공이 긴장된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간다. 소심하게 책을 꺼내던 주인공 옆으로 온 동급생이 갑자기 스페인어로 뭐라 뭐라 말을 걸기 시작하고 당황하던 주인공은 슬쩍 그 자리에서 벗어난다.
FBI인 주인공이 마약 판매 조직을 검거하기 위해 잠입한다. 조직원들은 스페인어로 자기들끼리 떠들고 있다. (자막도 이 부분은 번역 없이 '알 수 없는 외국어'라고 나오곤 한다.)
중요한 정보를 빼내야 하는데 전부 모르는 언어로 되어 있다. 당황의 연속.(화면엔 Contrasena, 즉 password가 떠 있다)

 

등등...


미국 내 히스패닉 인구의 증가로 인해 라틴계 사람들은 미국 대중문화가 타깃해야 할 포지셔닝은 되었을지언정, 적어도 아직까진


'알아들을 수 없는 말'

'영어가 아닌데 사람들이 많이 쓰는 다른 어떤 이상한 말'

'내가 모르는 말을 당당하게 하는 하층민'


의 이미지를 벗지 못한 것 같아 보인다. 반면 같은 대중문화 안에서 프랑스어의 이미지가 어떻게 소비되는지 생각해보면 그 차이가 더 명확해진다. 대한민국의 대중문화 속 아직 '영어'를 쓰는 것에 대한 환상이 살아 있듯, 미국 문화에선 '불어'가 그 위치를 점하고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에밀리 인 파리(Emily in Paris)'에서 에밀리의 동료들은 에밀리 흉을 볼 때마다 불어로 떠들곤 하던 장면을 떠올려 보면 된다.)


지성미를 뽐내거나 우아하게 보이고 싶을 때, 심지어 등장인물의 현재 상황이 좋지 않아도 원래 상류계층이거나 좋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은근슬쩍 내비칠 때 좋은 방식 중 하나는 '불어를 할 줄 아는 것'인 것이다!


Hasta la vista, Baby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내가 그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스페인어를 알게 되면 그런 차이가 보여


'재미있다'


스페인어를 알게 되면 해리포터에 나오는 주문들이 영국식 포장지를 입은 스페인어(라틴어 계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Agua-가 붙으면 스페인어 Agua(물)에서 비롯된 물에 관련된 마법들이고, Bombar(폭파), Ascendio(상승), Incendio(화재) 등등은 스페인어를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다. 신비한 주문들이 좀 덜 신비해 보일 순 있지만 호그와트 마법학교에 간다면 주문 외우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영화 코코의 가장 유명한 ost인 'remember me'를 스페인어 버전 'recuerdame'로도 들어보자. 스페인어 노래의 매력을 조금은 알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그럼 이만,

Hasta la vista.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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