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와이 Oct 26. 2020

모든 것이 변해 버렸다.

남의 나라에서 겪은 남 얘기 같지 않은 이야기

2020년 10월 26일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처럼 난 이 시간에 서 있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통해 이 곳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일 년 남짓 살아오며 알게 된 해외생활의 소소하고 가벼운 경험들과 유용한 정보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2020년 3월 어느 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밤은, 역사상 유례없던, 적어도 내 짧은 역사상으론 처음 겪어보는, 전 세계가 동요할 만한 사건(이며 아직 현재 진행형인 그것) COVID-19으로 인해 첫 휴교령이 발표된 무렵, 잠 안 오던 어느 날 밤 잠든 아이들 발치에 누워있던 그때였던 것 같다.


그 당시엔 이 곳보다는 고국의 상황이 (수치상) 더 안 좋은 상황이어서 그곳의 소식에만 귀 기울였을 뿐, 그 이후에 이 곳에 어떤 상황이 벌어지리라고는 전혀 예상도 못하고 있던 그런 때였다.


하지만...


타임머신을 탄 듯 이 시간에 서 있는 지금, 내가 그저 가벼이 나누려던 정보들이 지금 얼마나 유효한 것이 될는지 가늠을 할 수가 없다.


주변 많은 지인들의 생업이 힘들어졌고,

꿈을 접고 고국으로 발길을 돌린 사람들은 셀 수 없으며,

사랑하는 가족의 부재가 생기기도 했다.

무엇보다 사람들 속에서 마음의 힘과 여유를 얻는 일이 쉽지 않아졌다.


그래도 어떻게든 이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 노력하던 2020년의 전반기를 지나,

이 상황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는,

그런 시기를 이 곳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살아가고 있다.


상황이 이럴진대 그나마도 얕디 얕은 내 정보들을 가벼운 마음으로 올릴 수 있나 싶다. 남의 나라에 살면서 겪은 신선한 얘기를 올리고 싶었는데, 아마 남의 나라에 살면서 겪는 전혀 안 신선한 얘기만 하게 될 것 같다.


그나마 이 상황의 시작 무렵에 서랍에 넣어두었던 기록들을 몇 개 꺼내어 본다.

————————————————————

2020년 3월 7일 토요일, 단체 생일파티


작은 아이네 반 친구 5명이 합동 생일 파티를 하는 날이다. 확진자가 늘고 있다는데 가도 되려나 염려스러웠지만, 두 달 전쯤 인원체크를 했던 약속이고  둘째의 친구 엄마들 얼굴이라도 익혀볼 기회인가 싶어서 참석을 강행하기로 했다.

장소는 MADRID JUMP!라는 점핑 테마의 키즈파크였는데 매장 문을 열자마자 훅! 끼치는 열기... 애들과 어른들이 뒤섞여 바글바글 와글와글... 역시나 마스크 따위 쓴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그나마 서로 볼인사(besos)는 하지 말자고 하는 것 정도가 영향일까? 아이들 손에 살균제만 열심히 뿌려주고 들여보내고 나니 정신이 어질어질.

갔다 온 아이들은 지금까지 가본 키즈파크 중 제일 재미있었다며 내일 또 오고 싶다고 하는데, 보내 놓고 괜찮을까 맘 졸이는 건 부모 몫이다.


————————————————————

2020년 3월 9일 월요일


아침에 학교 갈 준비를 다 마쳤는데 갑자기 큰 아이가 오슬오슬하면서 몸이 안 좋다고 한다. 주말에 지은 죄(?)가 있는지라 덜컥 겁이 났다. 이래서 죄를 지으면 안 되는구나... 큰 아이가 그러니 작은 아이도 그럼 언니만 학교 안 가냐고 하며 자기도 쉬고 싶다 땡강을 부리기 시작한다. 이 와중에 남편은 오전에 자동차 수리를 하러 가본다고 재택근무를 하겠다고 하고... 아니, 이 사람들이??!!

아이들 학교 선생님들에게 오늘은 집에서 쉬겠다,

라고 이메일을 보내고 나니,

... 아이들이 너무나 말짱해 보여서 순간 화가 날 뻔했다.


그러나, 그날 밤

15일의 휴교가 공식적으로 결정되었다.

학교 하루 쉰다니 마냥 신난 아이들. 식사는 생식과 인스턴트조화식?
이 때는 몰랐다. 이 모습이 몇 주간, 아니 몇 달간(앞으로도 언제 끝날지 모르게) 계속 될 것을...

————————————————————

2020년 3월 10일 화요일


어젯밤 급하게 까르푸에 다녀온 지인이, 휴지가 동났고 쌀이 없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살짝 겁나는 마음을 안고 근처 메르까도나(Mercadona)로 출발.

...

진입하는 데만도 교통정체가 어마어마했다. 나 역시 주차자리가 없으면 그나마 주차장은 넓은 다른 마트로 돌아나가려다 천만 다행히 옥외주차장에 차가 빠지는 자리에 차를 댈 수 있었다.

...

매장 안에선 다들 입은 다물고(역시나 마스크는 없다. 낀 사람 한 명 보았다, 기침을 심하게 하던 그분은 방역마스크 같은 것을 끼고 있다.) 조용히 쇼핑이 진행되고 있었다. 손에 라텍스 위생장갑을 낀 사람은 많이 보였다. 일단 걱정과 달리 일단 쌀(!)은 있었다. 귀한 메르까도나 초록 쌀을 잔뜩 쟁이고, 5리터 생수를 10병 채우고 나니 카트가 쉬이 밀리지 않는다. 평소 잘 사 먹던 24구짜리 계란은 품절(살짝 비싼 품종은 남아 두 팩을 살 수 있었다) 고기류도 역시 빈 품목이 많았다. 이 나라 사람들이 즐겨먹는 소스류와 파스타, 빵, 밀가루, 햄 등이 많이 비어 있었다. 매장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조용했지만 다들 홀린 듯 정신없이 물건을 쓸어 담고 있었다. 계산을 기다리는 줄도 생전 겪어본 적 없이 길었다. 카트를 대 놓고 계산을 기다리다가 이것저것 보이는 대로 집어넣고 있는데, 카트가 없어 물건을 바리바리 안고 가던 여자분과 눈이 마주쳤다. 서로 웃픈 표정으로 눈인사를 나누었다. 이게 무슨 일일까요? 란 표정...


조용히, 비어가고 있는 매대. 이 날 계산하는데에 1시간 넘게 걸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2년간 무엇을 할 건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