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va, españa!
지금으로부터 딱 일 년 전, 2020년 3월, 스페인 전역에 강도 높은 이동통제가 시작되었다.
내가 끄적거려 놓은 기록에 따르면,
- 2020년 3월 11일, 전국 학교 휴교령 시작
- 2020년 3월 14일, 비상사태가 선언
- 2020년 3월 15일, 식료품이나 생필품을 목적으로 한 이동 외엔 허용되지 않는 강도 높은 이동 통제가 이루어졌다.
- 2020년 3월 16일, 모든 나라로부터의 입국이 금지되었고,
- 2020년 3월 22일, 국가비상사태 2주 연기되며 이동통제가 계속되었다.
생전 겪어보지 못한 전 지구적 위기 상황, 전쟁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역설적으로 주변은 너무나 조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간간히 들리는 앰뷸런스 소리와
시민을 통제하는 경찰차의 왕래
뉴스와 신문기사에서 나오는 매일 가파르게 올라가는 사망자 수치로
여기 어디에선가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와의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두 아이의 엄마로서 난, 가정 안에서 ‘보이는 적’(?)과의 작은 전투를 매일매일 치러야 했음을 기억한다.
바로 ‘교육’과의 전투이다.
휴교령이 내려지고, 급작스레 학교 관계자도 학부모도, 학생도 모두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상황을 수습해나가야 했다. 초반엔 단지 ‘형식’만 온라인이었을 뿐, (심지어 일부 다자녀 가구에는 학습할 수 있는 도구조차-컴퓨터- 충분히 갖추어지지 않았다..) 선생님의 관찰과 피드백 아래 학습해야 할 아이들이 무작정 컴퓨터 앞에 내던져진 식이었다.
아마도 그동안엔 엄격한 통제 아래 온라인 기기를 사용할 수 있던 아이들은, 무방비 상태로 기기에 노출되기 시작했고, 집중력 없이 흘려듣는 수업이 아이들에게 학습이 되었을 리 만무하다.
결국 학습에 대한 모든 부담은 ‘학부모’에게로 넘겨지고 있었다. 과제를 수행시키고 막히는 부분을 지도해줄 ‘어른’이 학부모밖에 없었으므로...
학교도 나름 시행착오를 거쳐 개선해나가고 있었지만, 시간이 필요한 문제였음을 알고 있었기에 부모 된 이유로 어쩔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감내해야 했다. (할많하않, 후에 교육에 관한 생각을 쓸 기회가 있을 것이다)
매일매일 아이들의 코칭 매니저로서, 학습 환경을 조성하고(남편은 IT요원이 다 되었다.) 아이들과 크고 작은 싸움을 벌이고, 봉합하고, 정신적으로 지친 나머지 다시 아이들이 미디어에 노출되어 버리는 악순환.
학부모 단톡에 올라오는 거의 울음 섞인 푸념들을 나누며, 아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라는 거에 작은 위로를 얻던 그때. 2020년 3월.
그래도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간다고 했던가.
끝이 안 보이는 어두운 상황에서 힘을 낼 수 있게 하는 것은 웃음과 유머라는 것을 믿는다.
우리 가족 역시 이 상황을 즐기기 위한 나름의 해결책을 찾고 있었다.
코로나 시대를 맞아 대 호황을 누렸다는 닌텐도 게임기! (품절도 되고 중고 가격도 치솟았다는데 다행히 그전에 구입했었다!) 게임을 즐기기 위해 벽에 쏘는 프로젝터도 구입했고, 그걸로 영화도 자주 보았다.
보통 옛 명작을 찾아서 보았는데, 쥐라기 공원 시리즈, 타이타닉,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도 아이들과 함께 보았다. 영화를 함께 보며 이런 내용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은 코로나 시대에 얻은 작은 깨달음이랄까.
또 해가 방안에 드는 시간엔 창가에 붙어 어떻게든 햇볕을 쐬려고 했다. 볕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과의 직접 교류를 할 수 없다는 것은 꽤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심지어 감정을 풀 새 없이 가족과 매일 24시간 피할 곳 없이 부대껴야 했던 것은 심정적으로 매우 코너에 몰리는 상황이었음을 기억한다.
톡방에서 수다도 지쳐 이제 서로의 안위를 묻는 것도 지쳐가고, 자주 우울감에 빠지던 그 시절, 작은 활력소가 되던 그 시간이 있었으니...
매일 저녁 8시경, 아파트의 정원 방향을 바라보는 창문을 열면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 둘 내밀며, 누구는 국기를 흔들기도 하고 누구는 응원 도구를 흔들기도 한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스페인의 국가 Marcha Real(마르차 레알, 왕가의 행진)
¡Viva España!
Alzad los brazos,
hijos del pueblo español,
que vuelve a resurgir.
Gloria a la Patria que supo seguir,
sobre el azul del mar el caminar del sol.
¡Triunfa España!
Los yunques y las ruedas
cantan al compás
del himno de la fe.
Juntos con ellos cantemos de pie
la vida nueva y fuerte de trabajo y paz.
오랫동안 존속할 에스파냐여,
너의 팔과 손을 들어라.
에스파냐인을 위해,
누군가 다시 일어설 것이라네.
조국의 영광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네.
바다의 푸른 빛깔을 넘어
태양을 향하거라!
에스파냐의 승리 -
모루와 차바퀴는,
신뢰를 위한
노래라네.
함께 그들의
노래를 부르자.
새로운 힘찬 노래는
노동과 평화일 것이니.
(출처:위키피디아, 원 곡은 가사가 없다고 하며, 사람들이 불렀던 비공식 가사 2번을 인용하였다. 프랑코 정권 당시 사용되던 가사라고 하는데, 보수 색채가 짙은 마드리드 지역이라 그런지 이 가사를 사람들이 합창하였다.)
이 행사의 원래 의도는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의료진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는데, 한편으로 사람들에게 이 시간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작은 축제였을 뿐 아니라, 옆 집 앞 집 사람은 무사한지 확인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말하기 좋아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이 사람들은 음악이 끝난 후에도 한참이나 창문을 통해 담소를 나누곤 했다.
아파트 단지 내 (아마도 유일했을 동양인 가족이었을 우리였기에) 다른 사람들과 전혀 교류가 없었던 우리 가족도, 이 시간만큼은 이 공동체 안에 속해 있음을 느끼며 가슴 뛰게 모든 사람의 안녕과 건강을 바라게 되는 것이었다. 우릴 향해 손을 흔들어 주고 ¿Qué tal? (괜찮아요?) 라 물어주었던 사람들...
이 먼 나라에서 우리의 애국가가 아닌 남의 국가를 그렇게 매일 크게 진심으로 부르게 될 줄 예상하지 못했던 그 시간들.
2020년 봄은 그렇게 지나갔고, 물론 2021년 봄 현재 코로나라는 거대한 적은 완전히 물러나고 있지 않지만, 그때도 지금도 난 스페인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