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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와이 Jul 17. 2020

2년간 무엇을 할 건가요?

내 인생의 공백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는 것

2년간 스페인에서 살게 되었다는 소식을 주변에 알리자 지인들이 보인 반응들은,


- 유럽이라니! 정말 부러워~

- 스페인 꼭 가보고 싶었는데- 이 참에 가볼까?

- 그동안 보고 싶을 거야...

- 너 스페인어는 할 줄 알아?

- 애들 학교는 어떻게 되는 거야? 애들은 학교에서 스페인말 배우는 건가?

- 우와, 축구 경기 많이 보고 오겠는데!

- 짐 정리는 어떻게 하고? 집은 내놨어?


등등, 대체로 기대와 우려가 섞인 그러나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잘 다녀오라는 반응이었다.

소위 유럽 톱 클래스 국가는 (독, 영, 프 등) 아닐지라도 당당히 EU 안의 나라이고, 근래 들어 스페인을 테마로 만들어진 리얼리티 예능(스페인 민박, 윤식당 등)의 영향으로 좋은 방향으로의 인지도가 많이 높아진 나라이기 때문이다.


(덧, 지금, COVID-19 사태로 부정적인 방향의 인지도가 심각하게 올라간 상황인걸 감안하면, 일 년 만에 많은 것이 변화하였지만...)


남편의 원래의 급여는 그대로 받으면서 주거, 교육, 그리고 일부의 생활비도 지원받으며 타국에 갈 수 있는 기회. 남편에게는 외국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으며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이자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교육을 맛볼 수 있는 기회. 이런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은 분명 백번이고 감사한 일임에 분명하다.


... 다만, 내 마음 한 구석의 저 멀리 떠 있는 작은 먹구름 같은 고민을 제외하곤 말이다.


또 내 경력엔 2년의 공백이 생기겠구나.


80년대 초 생 어떤 여인의 흔하디 흔한 이야기는 이렇다.

직장생활 5년 차에 한 남자와 결혼한 그녀는, 결혼 4개월 후 공부를 좀 더 해보겠다며 대학원에 진학하며 당당히! 회사에 사직서를 던졌다. 대학원 1학기를 다니던 그해 봄, 첫째 아이가 찾아왔다. 만삭인 몸으로 캠퍼스를 누비며 조교 생활을 병행한 학교 생활을 하던 그녀는 첫 아이를 낳고 1년의 육아 휴학을 신청한다. 그 1년이 끝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갈 때쯤 예상치 못한 (혹은 방심으로 인한) 둘째 아이가 찾아왔다. 남편은 주중엔 지방 출장을 갔다 주말에만 돌아오며, 양가 부모님이 도와주실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던 이 여인은 첫 아이가 돌이 막 지난 시점이었던 3학기까지는 임신한 채로, 이 집 저 집 첫 아이를 맡겨가며 학교를 다녔다. 그러다 임신 20주 차가 되기 직전이던 그해 여름, 대상포진에 걸렸다. 몸과 마음 모두 피폐해진 상태로 좀 안정된 상태에서 다시 공부하자며 마지막 학기를 미뤄둔 상태에서 하릴없이 일 년 반의 시간이 지나던 중 예전 직장 상사분의 추천으로 모 회사에 입사하고 워킹맘이 되었다는 현재 진행형의 이야기이다.


대학원을 다녔으나 졸업하지 못했고 생업을 핑계 삼아 현업으로 돌아와 버렸으니... 수료도 아니고, 휴학도 아니고 항상 내 이력서엔 몇 년의 기간이 공백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이 기간 동안 당신은 무얼 하셨나요?라는 질문에 위의 구비구비 구구절절 흔한 여인의 사연을 늘어놓는다거나, 용감히 “애 키우고 가정을 돌봤습니다!” 하는 것 모두 내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심지어 이전 직장의 사직 사유까지도 적어 내어야 하니... 도망갈 곳도 없다. (내 손으로 사직 사유에 당당히 ‘학업’이라고 썼던 젊은 날의 패기 넘치던 내가 있었다!)


이제는 설명하기 쉽지 않은 그 애매한 기간이 2년이 더 생기는 것이다.

“전 남편 따라 해외에 갔다 왔습니다.”라고 한다 쳐도, 내가  그 기간 동안 녹슬지 않고 무언가, 그 무엇인가를 갈고닦아서 당신의 회사에 득이 될 인간이 되었다는 것을 설명해야 할 텐데.

역시나 쉽지 않다.


그런 내게 이 2년은 어떤 의미로 남고, 난 어떻게 살아가게 될 것인가.


지인이 출국 전 조촐한 축하 파티를 열어주었다. 잘 다녀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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