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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와이 Oct 12. 2021

손등 높이의 미스터리

따끈하고 구수하게 잘 지은 막 지어낸 밥은, 찬이 변변찮아도 한 알 두 알, 한 수저 두 수저 퍼먹게 되는 마법의 존재다.  고슬고슬한 밥도, 진득한 밥도, 알알이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밥도, 그 나름의 풍미가 있다. 물론 ‘잘 지은 밥’의 범주에 들었을 때 얘기다.


신혼 초 밥 물을 잡을 때, ‘손 등 높이’로 잡아야 한다는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손이 도톰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나처럼 손이 작은 사람도 있을 텐데 ‘손 등 높이’로 어림잡는다는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씻은 쌀에 아무리 손을 넣어 재보아도 알쏭달쏭이었다. 이 정도 물로는 탄 밥이 될 것 같아 물을 더 넣으면 내가 좋아하지 않는 질은 밥이 되고, 이 정도면 되었겠지 싶다 보면 생쌀 밥이 되곤 했는데...



<준비하기>


1. 계량컵을 이용해 흰쌀과 현미의 비중은 3:1 정도로 섞는다. 어른들만 먹을 밥이라면 2:1도 괜찮다.

2. 쌀은 항상 되도록 좋은 쌀을 산다. 크게 가격차이가 안 나지만 밥 맛은 다르다. 한 번에 많이 사지 말고 4-5kg 정도의 포장으로 사도 충분하다.

3. 쌀을 깨끗한 물로 세 번 씻어낸다. 손으로 씻어도 되지만, 쌀 씻는 도구나, 나무로 만들어진 큰 포크형 주걱을 사용하고 있다. 휘휘 저어 씻어낸다. 이때 쌀 씻어낸 물은 집에서 기르는 채소에 물을 주거나, 찌개를 끓일 때 쓴다. (사실 매 번 물 버려놓고 아차! 한다)

4. 현미 외 잡곡을 섞을 때도 계량컵을 사용해 넣는다. 난 렌틸, 검은콩, 퀴노아를 주로 쓰는데, 요즘 나오는 믹스 잡곡도 참 좋다. 생각엔 5곡 정도 섞인 것이 좋지 않나 싶다.

5. 압력솥, 밥솥이 워낙 좋아서, 안 불려도 밥이 참 잘된다. 건조 옥수수 같은 지나치게 딱딱한 재료를 섞은 게 아니라면 안 불려도 괜찮다.

6. 물은 정수기나 생수를 사용한다.

7. 작은 다시마 조각을 넣어도 좋은데, 이 경우 밥의 색이 변하므로 빨리 먹어 치워야 한다.




신혼 초 죽밥 혹은 탄 밥을 번갈아 수 번의 시행착오 끝, 난 ‘계량컵’으로 1:1’에 안착했다. (이는 비단 쌀(현미 포함)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밥에 섞는 모든 잡곡 포함이다. )


단순히, 재료를 계량컵으로 1컵 넣었으면, 물 역시 1컵을 넣는 것!

약간 고슬고슬한 밥을 좋아하는 내 선호가 반영된 100% 주관적 기준이므로, 시행착오를 통해 얼마든지 고치는 건 개인의 영역. 단, 꼭 계량컵일 필요는 없다. 컵으로 하든, 밥그릇으로 하든 1:1의 비율을 유지하는 것이 포인트이다.




1. 전기밥솥으로 하는 경우

재료를 넣고 적당한 세팅을 눌러주면 된다. 밥이 잘 되지만, 시간이 약간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예약기능과 보온기능에 있어서 절대 강자.


2. 압력밥솥 

wm*나 휘슬* 같은 유명한 브랜드 솥이 무척이나 좋지만, 국내산 풍* 브랜드도 써보면 만만치 않게 좋다. (압력이 오르면 삐 소리 나는 그 솥)


- 뚜껑을 잘 닫고 압력 배출구도 잘 닫은 뒤, 센 불에 올린다.

- 각 솥의 방법대로 최대 압력에 오르면(배출구가 돌출되거나, 소리가 나거나, 치키치키 벨이 울리거나...) 약불로 줄여준 후 3분을 유지한다.

- 불을 끄고 자연스레 압력이 빠질 때까지 둔다. (하이라이트의 경우 잔열이 남는데, 그 위에 그대로 둔다. )


3. 무쇠솥 

르크*제나 스타*브 등. 한 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무겁고 세척이 신경 쓰인다. 그러나 디자인이 예쁘기에 가지고 있으면, 활용도는 둘째치고 마음이 흐뭇하다. *일반 냄비밥도 마찬가지 방법


- 센 불 위에 올린다.

- 쌀이 끓으면, 스텐 숟가락으로 바닥까지 휘젓는다.

뚜껑을 닫고, 불을 가장 약하게 줄인 후, 10분 이상 뜸을 들인다.

- 맨 위의 쌀 알을 맛봐서 잘 익었으면 완성.

- 누룽지를 위해 좀 더 눌여도 좋다.




Made in Japan 물건이 흔치도 않았을뿐더러, ‘고품질’ ‘고급’ ‘비싼 물건’의 대명사였던 그때 그 시절, 엄마가 신줏단지처럼 아끼던 회색의 ‘조지루쉬’ 일명 코끼리 밥솥은 우리 집 부엌살림 도구의 대장 격이었다. 매일매일 주인에게 불려 나가 심복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지 못한 녹즙기는 얼마나 부러웠을까.


일제 코끼리 밥솥은 110V의 가느다란 코드여서 이를 위한 ‘도란스’가 꼭 함께 있어야 했다. 네모반듯 육중한 그 기구에 잘못해서 손이나 발 끝이 닿는 경우 찌릿하며 오르던 전기의 감촉이 아직도 떠오른다.


중고등학교 6년간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뜨끈한 밥으로 도시락 싸주던 엄마. 그 정성의 위대함을 학교 다니는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지금에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 내 도시락에 뜨뜻한 밥이 있으려면, 그 전날 밤 밥솥에 쌀을 씻어 넣고 예약 시간을 맞춰 버튼을 누르는 사람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점심 급식 먹는 아이들 간단한 간식 챙겨주는 것만 해도, 아이들 기상시간보다 한 시간 먼저 일어나 부산을 떨어야 하는 건데 말이다.


사춘기 중2병이 제대로 들어 반항한답시고 도시락 가방을 두고 간 어느 날. 그걸 챙겨 학교로 가지고 온 엄마에게 내가 되려 툴툴거리며 가방만 낚아채 휙 교실로 올라간 딸내미였던 나. 그 등을 보던 우리 엄마는 그래도 우리 딸 점심은 안 굶겠구나 하고 안심하며 돌아갔을 것이다.


그런 사랑을 받아 컸으면서도, 나는 너무 모진 엄마로 큰 거 같아 우리 딸들에게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내일 아침엔, 조금 일찍 일어나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후딱 밥을 지어

뜨끈히 먹여 보내보리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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