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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와이 Oct 25. 2021

간 맞추기

간이 맞는데 맛이 없을 수 있을까?

반응이 느리고 소극적인 나에 비해, 남편은 즉각적이고 단순한 반응이 나오는 사람이다. 보이는 것과 생각하는 것에 차이가 없고, 가리고 숨기는 것이 없고 담백하다. 짧은 연애기간을 속전속결 결혼으로 마무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도, 남편의 그런 점이 참 좋아서였다. 이 사람과 함께하면 무슨 생각하는지 몰라서 답답하진 않겠구나, 싶었다. (물론, 그 큰 장점이 때론 치명적(?) 단점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은 할많하않, AS 기간이 있을 리 없는 결혼 라이프 중 깊이 깨달은 바라, 그냥 안고 살아가야 하지 싶다. )


먹는 문제에서 역시 남편의 이런 점은 다르지 않았다. 이 사람이 이 음식이 맘에 드는지 아닌지는, 첫 술을 넘기기도 전, 음식을 입에 넣고 씹기도 전, 입에 들어가 입을 다무는 ‘바로 그 순간’ 알 수 있다. 1초 만에 ‘맛있다’를 나타내는 반응이 나오지 않고, 그냥 시무룩하게 씹고 있으면, 이 음식은 그냥 그렇다는 것.


어느 날인가, 어떻게 그렇게 맛에 빠르게 판단하고 반응할 수 있는지 남편에 물어본 적이 있다. 그리고 돌아온 의외의 답.


사실 난 간만 맞으면 돼.


응?


사전적 의미의 ‘간’ 은 ‘음식물에 짠맛을 내는 물질. 소금, 간장, 된장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혹은 ‘음식물의 짠 정도’를 의미한다. 음식을 해볼수록 소금으로 간하느냐 간장으로 간하느냐에 따라 ‘짭짤함’의 결이 사뭇 다르다는 것을 점차 깨닫고 있는 중이다. 

소금


생 채소의 숨을 죽이거나 절일 때 사용하는 굵은소금과 음식에 간을 하는 가는소금은 필수이다. 요샌 소금통에 그라인더가 달려 있어 굵은소금 혹은 돌멩이 소금을 ‘갈아서’ 잔잔하게 만들어 쓸 수 있는 제품도 흔하다.


난 굵은소금(바다에서 만들어진 천일염)과 히말라야 핑크 솔트 두 종류(그라인더가 달린 것과 미리 갈아진 핑크 솔트) 쓰고 있다. 굵은소금은 배추나 무를 절일 때 사용하고, 가는소금은 주로 음식을 만들 때 사용한다. 갈아내는 소금은 고기나 생선에 밑간 할 때 사용한다. 특히 음식의 마지막 간은 꼭 소금으로 해야 도리어 감칠맛이 살고 색이 탁해지지 않는다.


스페인에 살고 있는 덕에 지중해의 이비사(Ibiza) 섬에서 생산되는 소금도 저렴한 가격에 사용하고 있다. 입자는 굵은소금과 가는소금의 중간 굵기이지만 질감이 촉촉하고  기운이   소금이다.  소금은 사골국을 먹을 때나 무침 등의 가열하지 않는 요리에    사용하고 있다.


  가지 갖추고 있는 소금은 바비큐용 소금이다. 각종 허브가 섞여 있어 간편히 바비큐 고기를 준비할  있으니 편하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신선한 고기는 후추와 소금 정도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다.



간장


진간장, 국간장, 몽고간장, 양조간장, 왜간장, 집간장... 소싯적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이 간장들이 무엇인지 사용법은 어떤지 잘 알지 못한다. 살림 고수님들은 다 달리 사용하시겠지만, 내 기준대로 챙기는 간장의 종류는 3종류이다.


국에 간을 하는 국간장은 짠기는 세지만 국물의 색이 진해지지 않아, 국물요리뿐 아니라 나물을 무칠 때나 고기를 잴 때 유용하다.

진간장은 도리어 재료의 색을 덮을 때(?) 사용한다. 장조림 등의 조림요리나 고춧가루와 섞어 매콤한 양념을 만들어 졸여내는 요리에 사용한다. 짜면서도 단 맛이 도는 이 간장은 오랫동안 끓여내야 하는 요리에 적합하다.

양조간장은 가열하지 않는 요리나 생으로 먹는 간장이다. 만두를 찍어 먹는 초간장이나 초밥을 찍어먹는 고추냉이 간장을 만들 땐 맛이 산뜻하고 풍미가 있는 양조간장을 사용한다.


그리고...


최근 들어 열광하고(?) 있는 간 맞추기 재료는 액젓과 앤쵸비(스페인어로는 Anchoa)이다. 소고기 미역국을 끓일 때 고기를 국간장 1, 액젓(멸치나 까나리) 1, 다진 마늘 1, 참기름 1에 잰 후 볶아내면 그 향기가 얼마나 감칠맛 나고 구수한지 모른다. 그대로 불린 미역도 넣고 볶아내다 끓이면 내가 좋아하는 ‘찐한’ 미역국이다.


멸치 크기의 작은 생선인 앤쵸비를 소금과 올리브에 절여 만들어낸 앤쵸비는 한국에선 흔치 않은 재료일 테지만, 스페인을 포함한 지중해권 지역에선 고추장, 된장과 같이 대중적이고 기본적인 재료이다. 통조림으로도 팔지만, 우리나라의 반찬가게 같은 곳에선 용량으로 달아서 팔기도 한다. 여기 사람들은 앤쵸비를 그대로 작은 빵에 올려 따빠스(Tapas) 로 내놓거나, 샐러드에 올려 니쓰와스 샐러드(지중해식 샐러드)로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앤쵸비(스페인어로는 안쵸아)를 한식에 응용하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익힌 묵은 배추김치가 귀한 환경에 살고 있다 보니(김치 냉장고는커녕, 고작  칸짜리 냉장고에 김치 익을 자리를 확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먹는 배추김치가 바닥을 드러내고 국물이 많아질 때쯤엔  방식대로의 야매(?) 김치찌개를 끓여내곤 한다. 얇게  돼지고기를 바싹 구워낸 (바비큐 하고 남은 고기로 만들어도  맛이 그만이다)  기름에 양파와 대파를 볶아내고, 조금 남은 김치(주둥이 부분도 잘게 잘라 넣는다. 버릴게 하나 없다) 달달 볶는다. 그리고 여기에 앤쵸비를 넣어 함께 볶는 것이다! 그러면,  익히지 않은 김치라도 감칠맛이  살아나는 것을 느낄  있다. 앤쵸비는 뜨거운 열로 인해 재료에 형체 없이 녹아들어 적절한 짠맛과 감칠맛만 남긴다. 이렇게 인생 김치찌개를 만난 , 앤쵸비는 항상  쇼핑카트에 담기는 물건이 되었다. 파스타를  때에도 올리브유에 마늘을 볶을  넣으면, 이후에 추가 소금간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음식의 맛을 끌어주는 재료이다.


맛의 반칙, 앤쵸비



‘맛’을 위한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간’만 맞으면 된다니? 너무 짜거나, 너무 싱겁지만 않으면 된다고 하는 남편의 싱거운 답에 당시엔 기분이 살짝 언짢았던 것 같다. “간이 맞아서 맛있어.”라고 해주면 어디 덧나나?


속이 훤히 드러나 보여서 이 사람 두고 두뇌 싸움하지 않아도 되니 맘 편할 것 같았던 사람이 너무 ‘간 치지 않고’ 하는 말들에 속상해했던 기억이 몇 번인지... 이런 걸로 속 타 하는 내게 엄마가 뭐라 다독여 줬을까 사뭇 궁금하다.


멀쩡해 보이는데 뒤집으면 타 있는 부침개보다 낫지 않니?
간만 따진다 하니 얼마나 쉽니!


라고 나를 살살 달래주지 않았을까...


엄마의 부엌에 있던 작고 둥근, 초록 뚜껑을 가진 투명한 플라스틱 통 세 개가 기억난다. 소금, 설탕, 미원. 세 가지 통에 담긴 하얀 가루들은 색은 모두 같았지만 그 안의 가루들은 모두 성격이 제각각이었던 것이다. 소금한테 설탕처럼 굴라고 할 수도 없고, 적당히 미원도 치며 그렇게 인생의 간을 맞추는 지혜를 아직까지도 매일 배우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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