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15
토요일 오전마다 가는 아이들 학원이 정동에 위치해 있다. 이상시리 이 동네에 오면 아련함과 추억, 그리움 그리고 그냥 막연히 좋은 어떤 느낌이 드는데, 이상하다 함은 실상 이 동네에서 어떤 특별한 이벤트를 겪은 일은 떠오르지 않기에 그렇다. 어릴 적 살던 동네가 사대문 안 동네에서 멀진 않기야 했지만, 고만고만한 세상 속에 살던 내가 뭐 얼마나 활동 반경이 넓었을까.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헤어진데, 같은 상투적인 얘기를 읊으며 걸었던 기억은 날락 말락 할 것 같기도 한데, 그 대사를 한 대상이 뒤로 내 인생에 큰 영향 미친 사람이 아니었는지….(ㅎㅎ)
굳이 토요일 아침에도 일찍(한 시간쯤 더 잘 수 있긴 하지만) 일어나 운전해 데려다줘야 하는 이곳 학원에 아이들을 입소시킨 건, 강쥐 산책을 빙자해 이 동네 구석구석을 냄새 맡고 돌아다니고자 한 염불보다 젯밥에 관심 있는 내 의지가 한 스푼 반영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동네 역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많이 현대화되어, 여기저기 프랜차이즈 음식점이나 멋진 카페도 많이 있고, 곳곳에 삐까번쩍한 건물도 많이 지어졌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쁜 척 안 해도 원래 예쁜 존재가 가질 수 있는 근본적인(?) 자신감이 느껴진달까.
사실 뭐 다른 미사여구가 필요할까. 난 그냥 요 동네만의 정취와 무심한 나른함이 좋다. 난 멋져, 힙해, 핫해, 트렌디해, 같은 말들이 조금 덜 들리는 곳.
마침 이곳에 정원이 무척 이쁜 여자 고등학교들도 있으니, 혹시나 내 딸들이 어머니 나 그 학교가 좋소, 라이딩해주시오. 하면 못 이기듯 기꺼이 해주리라 하는 섣부른 상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