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 없는 고민들
AI의 발전은 괄목할만 하고, 실제 많은 곳에서 생산성을 높여주는 것은 사실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고 있고, 조금 한 눈 팔면 세상의 경쟁에서 뒤쳐질 수도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없다.
하지만 AI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깊게 현실적으로 얘기하는 사람은 아직 본 적이 없다. 물론 이걸 깊고 현실적인 조언이나 컨설팅을 할 수 있다면, 압도적인 업계 탑이 되어서 어마어마한 부를 쓸어 담고 있거나, 현자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기껏 AI 한다면서 해봐야 바이브코딩 해서 LLM 집어 넣어 뭔가 그럴듯 한거를 오! 하고 보여주지만, 현장의 실제 문제를 잘 건드리지 않는다. 대부분 뭇사람들이 떠드는 AI전환으로 보여주는 패턴은 대동소이하다.
작년에 한창 고객사를 만나러 다녔다. 우리가 만든 제품을 소개하고 교육하기 위해서였다. 지방의 제조업 상장사 고객이다. 본미팅이 끝나고 재무팀장이 따로 본미팅과 별개로 질문을 할게 있다고 했다. 질문의 요지는 대충 아래와 같다.
0. 회장님이 AI 전환을 얘기하신다.
1. AI 전환을 하려면 뭐부터 해야 하나?
2. 어떤 업체를 어떻게 찾아서 컨택해야 하나?
질문을 듣고, 곰곰히 생각하다가 솔직한 대답을 했다. 우리팀도 AI로 제품에 사용하기에, 농담으로 우리에게 맡기라고 했다. 그리고 진심을 다시 얘기했다.
현재 회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풀어야 하는 문제가 무엇인가요?이런 문제 정의가 없으면 제 아무리 좋은 AI 구축해도 아무도 활용하지 않고, 반발만 살겁니다.
고객이 내부에서 겪는 진짜 문제, 구성원들이 힘들어 하는 내부의 비효율성이 무엇인지 부터 냉철하게 따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계속 나누었다. 문제를 정의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했다.
그리고 정말 현재 회사가 풀어야 할 문제를 발견했다면, 그걸 풀어내는 방법이 AI가 맞는지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것은 낭비입니다. 저희 회사도 AI를 사용하지만 모든 것을 AI로 풀지 않습니다. 그건 비효율적입니다. 분명 AI가 잘 못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만약 풀어야 하는 회사의 진짜 문제를 찾았다면... 그리고 그걸 AI로 푸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면 그때 AI 업체를 알아 보라고 했다.
그런데 이걸 AI로 푸는 것이 좋은지는 어떻게 판단하나요?
뭔가 문제를 풀고 싶을 때, AI 잘하는 기업 이런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해당 문제를 파고 드는 기업을 찾으라고 말했다. 마치 우리팀처럼 매우 특수한 분야를 잘 풀기 위해 집중하는 곳...
대충 이런 흐름으로 약 40분 정도 나름의 컨설팅을 했다. 고객은 꽤나 많이 공감했고,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고객이 이렇게 말했다.
다음에 오실 때는, 저희 내부의 문제들을 다시 정의하고, 회장님께도 보고해 보겠습니다.
너도 나도 AI 한다는 기업이 많고, AI를 전면에 내세우는 기업이 많아도 너무 많다. 그런데 정작 그 기업이 AI로 무엇을 푸는지는 봐도 봐도 모르겠다. 우리 진짜 개쩌는 AI 회사에요! (그런데 어쩌라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정말 풀어야 할 문제를 푸는 것이다.
그런데 너무 많은 호들갑을 보면, AI로 없는 문제를 만들고, AI로 멋지게 이렇게 했어요 데모를 보여주고, AI 안하면 뒤쳐져요 라고 하는 동일한 패턴들의 반복. GPT에 자기들 UI 덮어 씌우고는 대단한 것을 한다고 착각하는 기업들이 너무 많다. (솔직하면서 거칠게 말하자면 몇 년 안에 다 망할거라 생각한다.)
AI는 결국 문제를 푸는 하나의 수단이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그러했듯이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냐이다.
돌고 돌아 PM에 대해 생각해 보면, AI 시대라고 해서 PM의 직군이 사라질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아직은) 많은 전문직들이 대체될 것 같고, 코딩과 같은 하드스킬들이 대체될 것으로 보면서도 PM은 대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신감은 뭐냐고 물으면, 아직 문제 정의를 잘하는 AI를 본 적은 없기 때문이다. 문제의 정의는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이는 지식의 습득과는 다르다. 몸으로 경험해 보지 않으면 절대로 느낄 수 없는 불편들, 그런 것들이 문제다. 이런 문제를 인터넷에 쓰다 보면, 이걸 AI가 또 문제 정의를 잘 할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대신 누구나 PM이 될 수 있기에, 인간에 의해 대체 되기 쉬운 어마어마한 레드오션 직종이라 생각한다. AI의 도움을 받아 날개를 달게 된 디자이너와 프로그래머들이 문제 정의에 더 집중할 수 있다면, PM이라는 직군의 정체성은 더 옅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