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의 영광은 시니어의 힘이 아니다.
나는 기획자라는 타이틀부터 해서, 지금 PM(Product Manager) 혹은 PO(Product Owner)라는 직함을 가지고 약 10년의 경력을 가진 기간 동안, 일을 가르쳐 준다는 개념으로 같은 직군의 사수를 만난 적이 없다. 사수라는 표현을 썼지만, 이는 시니어(Senior)라는 말로 대체가 되어도 될 것 같다. 뭔가 갈수록 영어를 더 많이 쓰게 되는 것인지,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스스로는 아직 시니어가 무엇인지 잘 정의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누군가가 물어보면 이런저런 대답을 하지만 아직도 고민 중이다.) 그저 시니어 연봉 밴드 속에서 연봉협상을 했고, 시니어 포지션으로 팀에 합류하곤 했다.
나는 내가 주니어인지도 모르고 사수도 없고 시니어도 없이 덜컥 시니어가 되었는데, 행운인지 모르겠지만, 너무나 훌륭한 주니어들을 많이 만났다. 각자의 개성과 강점들이 달랐고, 성실했다. 엄청난 인사이트, 발랄한 아이디어(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시하는 합리적인 방법들), 아이디어를 실행하기 위한 적극성, 열정과 꼼꼼함들을 보면, 시니어라는 나보다 주니어인 그들이 못한 게 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냥 내 능력이 부족한 것일 수도...) 여기서 고민은 계속 깊어진다. 주니어와 시니어의 차이는 뭘까? (물론 나는 그 차이 이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같은 동료라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그들 앞에서 시니어라고 알게 모르게 말에 권위가 생기는데, 이 권위가 쪽팔리지 않게 잘 활용하는 방법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속으로는 언제 나의 밑천이 드러날지 전전긍긍하면서...
나은 게 없는 와중에 쥐어 짜내자면 그래도 열심히 일을 해온 경험과 그에 대한 회고의 기억들이다. 그리고 "그래도 괜찮아"와 "뭐 큰 일 나지 않아"가 있다.
직장 생활 속에서 뭔가 잘못해서 프로젝트를 말아먹어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사실 뭔가 잘못하고 말아먹는 것이 기본 값이란 생각이 더 확고하게 들었다. 특히 주니어 때는 작은 힘을 갖게 되고, 당연히 책임도 작고... 영향을 미치는 범위도 크지 않았다. 그냥 일 못한다고 욕 좀 먹는다...? 일들에 대해 아무리 회고를 해봐도,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을 것도 같으면서도, 회고를 하고 나서야 겨우 다른 길들이 조금은 보인다. 그리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도 그 결정을 못했을 것이란 것도 알게 된다. 그런데 이 경험치가 다음에 조금씩 영향을 미친다. 잘못한 것 같은데 뭔가 대박이 나기도 했으나, 그렇다고 그 대박이 나에게 뭔가 드라마틱한 변화를 주거나 하진 않았다. 일희일비보다는 여러 경험들이 그냥 쌓이는 와중에
그래도 괜찮아, 뭐 큰 일 나지 않아
이러다 보니 의사결정과 업무 추진에 자신감이 붙었다. 그리고 그 자신감(약간은 무책임할 수도 있는)이 주위에 조금씩 영향을 주고, 빠르게 뭔가를 해보거나, 과감하게 무언가를 안 하게 할 수 있는 권위로 이어졌다. 잘해도 그렇고, 못해도 그렇고 큰일이 나지 않는다. 대신 그 조금의 자신감들이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처럼, 주식 수익률이 복리의 마법으로 올라가는 것처럼(나는 못 먹었지만) 일을 쉽게 접근하게 하고, 주변을 감화시키고 으쌰으쌰 하게 해주는 역량이 조금은 생긴 것 같다. 그리고 주니어들은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닐까? 나의 과감한 전진을 뒤에서 밀어주고, 나의 겁나는 한 발을 앞에서 끌어주는... 양심적으로 성공적인 문제 해결을 해낸다는 낯 간지러운 말은 도저히 못 하겠다. 난 잘 못한다.
지금까지 얘기를 그냥 "무지성 불도저가 아닌가?"라고 물어본다면, 그래도 나름 오랜 일을 하는 동안 꼼꼼하게 회고를 하면서 당면한 문제와 외부 환경, 그리고 내부적인 역량에 대한 고민을 바탕이 있었기에 무지성이라고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왜 성공했고, 왜 실패했는지, 내가 그렇게 성공했다고 다음에도 그것이 통할 것이라는 자만심은 버리고, 그때 실패했더라도 또 실패할 것이란 생각은 버리고, 그러면서 비 온 뒤에 굳어 가는 진흙처럼 단단해지는 철칙들이 쌓였다. 그래서 앞으로도 내가 하는 행동들이 성공을 불러오지 않을지 몰라도, 나름 자신 있게 일을 추진하는 원동력이 되고, 그것이 주변의 생산성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니어의 힘은 여기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답을 기깔 나게 찾는 능력이 아니라, 여러 해답에 대해 자신의 관점을 녹여낼 수 있는 그런 힘이 시니어의 역량이다.
최근 카카오톡 업데이트로 말이 많다. 유명한 네임드 CPO의 리더십 스타일에 대해서도 말이 많은 것 같다. 아마 성공가도를 달렸을 것이고, 어마어마한 경험치들이 쌓였을 훌륭한 시니어였을 것이다. 다만 그런 과정에서 자신이 가진 역량의 원천을 마법 같은 무언가라고 착각을 했기 때문에, 그런 독단적인 리더십이 나온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때로는 리더는 독단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독단 속에서도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내 과거에 대한 성공과 실패라는 결과와 그때의 방법론이 리더십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정 속에서의 치열한 고민이어야 하지 않나 싶다. 시니어는 결국 리더십을 발휘하게 된다. 별 것 아니지만 치열과 고민의 과정 자체가 리더십의 힘이고, 시니어의 힘이 된다. 단순히 성과와 영광은 절대 아니라고 확신한다.
오랜만에...
육아도 힘들고,
스타트업서 일하는 건 혼란스럽고,
방통대 수업 듣기는 귀찮고...
그래도 일주일 간 즐거운 연휴다.
가족들과 소중한 시간으로 충전하기 전에 뻘 생각 한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