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스타트업에 어울릴까?
최근 마음의 정신병이 도져서 작은 스타트업에 합류했다. 원래 다니고 있던 곳과 매출은 얘기할 것도 없고, 인원 규모로만 봐도 신생아 수준의 창업팀에 첫번째 PO(PM)로 새 커리어를 시작하기로 했다. 당연하지만 두 자식의 아빠이자, 소위 말하는 집안의 가장으로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그동안 나의 커리어와 앞으로의 미래를 고민했다. 동시에 스타트업이란 것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이 글은 폭발적 성장, 세상을 혁신하기, 초인과 같은 업무에의 몰입과 같은 미사여구 가득한 스타트업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조금 더 현실적인 모습과 나의 욕심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다.
작은 스타트업에서 열정을 불태우는 많은 사람들을 폄하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냉정하게 한국 사회에서 스타트업은 좆소가 대부분이다. 그러다가 어쩌다가 토스 같은 곳이 나오게 된다. 가뭄에 콩이 나듯… (더이상 토스 같은 곳을 스타트업이라고 하지는 않았으면, 거기는 이미 대기업이다) 스타트업은 정말 힘들고, 보상이 작고, 진정 개판이다. 스타트업에서 열정을 불태우는 많은 사람들도 다른 한 편에서는 더 좋은 기업을 가기 위해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정리한다. 중고신입이 되기 위해 울면서 다니는 곳이기도 하다. 잔인한 세상은 이름이 조금이라도 알려졌다는 이유로 신입을 잘 뽑지 않는다. 무명의 헌신과 노력이 이력서와 포트폴리오에 담겨 있어야, 유명의 누군가가 누군가를 채용하려 한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망한다. 그리고 망하지 않은 스타트업의 대부분은 좀비화가 된다. (좀비화라 함은 자기 제품으로 고객에게 가치 전달은 제대로 못하면서, 정부 과제로 인건비를 타서 운영이 하는 그런 기업의 변화를 얘기한다.) 그리고 극 소수만 스타트업의 성공 신화를 쓰게 된다.
위의 모습을 적잖이 보아왔고, 간접 경험을 했으면서도 다시 이곳에 뛰어들게 하는 나의 정신병에 대해서 돌이켜 보려 한다. 자발적으로 이 정신병의 세계에 뛰어들려 하거나, 혹은 뛰어들지 않아도 정신병에 걸린 사람의 입장에서 스타트업에서 일하면 좋을 사람의 모습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곳이 아닌, 정말 회사를 다니면 모든 구성원이 서로를 다 알면서 가족 같은 규모 수준의 회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리고 위에 얘기한 것처럼 경력을 쌓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다니는 것이 아닌… 진짜로 신생 스타트업에 도전을 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이다. 어떤 것을 기대하면 안되는지, 반대로 어떤 것들에 매력을 느껴야 하는지…
혁신이나 세상을 바꾸고 싶다 이런 소리는 집어 치우라고 얘기하고 싶다.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고, 그런 창업자들의 얘기와 직장인의 현실적인 관점은 조금 달라야 한다고 하고 싶다. (나라는 인간이 지독한 유물론자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솔직해 지자, 돈은 중요하다
지금의 실리콘밸리를 있게 한 유명한 8명의 배신자가 있는데, 그들을 움직이는 가장 큰 동기는 돈이었다.
페어차일드 직원 중 한 사람은 퇴사 설문지에 퇴사의 이유를 이렇게 적었다. "나는...부자가...되고...싶다."
크리스 밀러, <칩워>, 노정태 옮김, 92쪽, 부키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High Risk, High Return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어야 한다. 이 성향은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일 수록 더욱 강하게 기대 해야 한다. 나 같은 역량이 무슨 High Return을 기대할 수 있겠어? 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게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초기 개국공신은 그래도 좋은 대우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고생을 같이 하는만큼 성공하면 괜찮은 보상을 받을 수 있으며, 성공이라는 훈장이 그다음 이직을 위한 레버리지가 된다. (예를 들어, 초기 토스 출신, 초기 당근 출신 이런 것들이다.)
경제적 보상에 대해서 조금 정리를 하자면
(1) 일반적 급여에 관해
일반직원에 대한 경제적 보상은 당연히 대기업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다만 초기에 잘 합류해서 로켓에 올라탄 경우, 잘 풀렸을 대의 보상은 대기업의 일반적인 수준을 훨씬 뛰어 넘게 된다. 물론 매우 많이 받기로 유명한 그런 대기업에 비할 것은 아니다. 다만 누구나 이름을 대면 아는 대기업에 다녀보고 그 동기들의 연봉을 대략 아는 입장에서 스타트업에서도 충분히 대기업에 준하는 경제적 보상은 얻을 수 있음은 확신한다. 스타트업은 표준적인 연봉 체계라기 보다는 매우 유연하고 폭 넓은 연봉 밴드가 존재한다. 나의 직인 PM(Product Manager) 역시 천차만별이다. 소위 말하는 좆소 연봉 수준부터 해서, 동년차 대기업 후려치는 연봉 수준까지 다양하기에 일괄적으로 얘기하기 힘든 수준이다.
(2) 급여 외의 금전적 기대
High Risk, High Return 과 밀접한 부분인데… 더 높은 Risk를 지는 곳일 수록 더 높은 Return을 얻을 확률이 높아지고, 이는 스톡옵션 등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스톡옵션은 당연히 초기 멤버일 수록 부여 가격이 낮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 스톡옵션이 휴지조각이 아니라 정말로 가치가 있어지면 꽤 큰 금전적 보상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합류하고자 하는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이 스톡옵션의 가치는 줄어든다. 당연한 얘기로 그만큼 커진 것은 Risk의 가능성이 줄어든 상태이기에 Return도 작아지기 마련이다. 늦은 합류는 스톡옵션의 부여 가격이 높아서 스톡옵션 행사 시에 큰 보상을 못 받게 된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려면 High Risk, High Return의 마음가짐으로 기본 급여보다는 스톡옵션에 관심을 가지면서 위험을 감수할 사람이 더욱 어울릴 것이라 생각한다.
채용을 할 수준이 되는 정도까지 성장한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높은 인재밀도를 갖추고 있다. 불편한 진실일 수 있지만, 투자라는 것이 학연과 상당히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겉에서 살펴볼 때 학벌이 좋고, 유명 회사 출신의 사람들이 모여서 창업을 했을 때, 시드 투자까지 연결이 잘된다. (실제 역량으로 끌어 올리는 것은 학벌이나 유명 회사 출신이냐와 전혀 무관하다고 본다.) 이렇게 소위 엘리트 중심의 스타트업들이 다음 스텝을 밟으면서 성장하기 위해서 채용을 하려 하면... 큰 문제가 생긴다.
아무도 오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뭔가 애매모호한 제품과 비전(사실 이것도 뭔지 이해가 한 번에 잘 안간다)을 가진 연매출 1억원(사실 연매출 1억원을 빠르게 내는 것도 엄청 대단한 것)이 날까 말까한 회사에 어느 누가 지원을 하겠는가? 창업자들이야 애매모호한 제품이 아니고, 명확한 비전이 있다고 하겠지만 외부의 시선에서 볼 때, 그런 제품과 비전이 있다면 이미 어느 정도 꽤나 의미있는 성장을 하고 있어야 한다. 여튼 그렇다 보니… 성장의 중간 단계에서 인재밀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동료들의 수준을 따지고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리고 흔히 삐까뻔쩍해 보이는 겉모습과 실제 일을 잘하는 것은 큰 연관성이 없다.) 스타트업에 들어왔다면, 어떻게든 모든 구성원들의 각자의 장점과 개성을 살리는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내 동료의 장점과 개성을 살리기 위한 고민을 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물론 이걸 하기 위해 너무 많은 비용을 들이게 된다면, 이건 역량의 문제라기 보다는 애당초 팀의 핏이 안맞는 문제일 수도 있다. 그리고 동료 불만을 계속해서 토로하는 사람이 나라면…? 내가 스타트업이라는 기본적인 핏에 안맞는 사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소위 말해서 불평러…) 동료를 탓하기 시작하면, 스타트업은 잘될 수가 없다. (스타트업은 사람이 전부다... 사실 스타트업이 아니라도....)
“우리 회사는 주먹구구식이에요!”
“체계(혹은 시스템, 프로세스 등과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가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이런 불만을 쉽게 얘기한다. 솔직히 말해서 작은 스타트업은 그런 체계와 시스템이 크게 필요 없다. 다른 사람들이 업무의 시스템(혹은 프로세스 등)을 어떻게 얘기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시스템은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조금 불편한 약속을 모두가 지키는 것”이라고 나름 정의한다. 시스템이라는 것이 엄청난 효율화를 의미하는 것 같지만, 그것을 구축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비용과 수고가 든다. (이러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에 대한 생각들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써보려 한다.)
작은 스타트업에서는 업무의 약간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구성원들이 조금의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 오히려 큰 비용이 될 수도 있다. 스타트업은 작으면 작을 수록 개인이 알아서 잘 하는 것에 기대는 레버리지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다.
조직이 크면 클수록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당연히 절대적으로는 크겠지만), 작으면 작을 수록 시스템의 효율보다는 개인기에 의존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회사가 가장 신경써야 하는 것은 개인이 개인기를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몰입하게 하는 동기부여라 생각한다.) 그리고 시스템을 잘 갖추는 것은 개인의 역량이 파고들 부분을 줄이게 된다.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곳일 수록 개인의 힘은 상대적으로 작게 발휘된다. (가장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곳은 은행 같은 곳인데, 은행 창구는 개인의 역량이 큰 가치를 창출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제나 저런 주먹구구식 체계를 흐린 눈하고 무시하고 살 수는 없다. 성장의 과정 속에서 부채를 남기지 않고, 앞으로 업무 효율의 복리를 노리기 위해서는 체계를 잡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스타트업에는 그러한 체계까지 잡는 것에 흥미를 갖는 사람이 가는 것이 좋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이러한 체계를 잡는 과정 속에서 매니징에 대해 많이 고민하게 되고, 시니어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한다.
PM이라서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초기 스타트업은 제네럴리스트로서 역량을 요구 받을 때가 많다. 아니… 5명이서 일을 하는데, 어떻게 특정 작은 영역의 일만 하겠는가? 그냥 뭐든 누군가는 해야 한다. 일당백의 역량을 갖고 있느냐와는 별개로 우선은 혼자서 매우 많은 범위를 커버하게 되어 있다. 나 역시 직접 영업을 뛰기도 많이 했고, 주말 아침에 CS 응대도 많이 해보았다. 지금 PM들이야 SQL도 잘 사용하고 그러지만, 나는 뭔가 개발자들의 손을 덜 빌리기 위해 SQL과 Python을 배워서 활용을 했다. 이런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PM으로 있게 하는 밑거름이기도 했다.
"PM이 이것도 하는게 맞나요? "
"JD에 없는 일을 시키는 것 같아요!"
종종 커뮤니티에서 위와 같은 얘기를 많이 본다. 물론… PM이 PM의 전문성을 잘 살리는 것만 잘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 있거나, JD에 것만 할 수 있으면 좋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작은 스타트업에서는 그것을 기대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제 망할지도 모르는 회사에서 이것저것 다 해보겠다 싶은 근본 없는 시스템도 받아 들일 사람들이 스타트업에 어울린다.
지금 새롭게 합류한 곳도 그렇지만 작은 스타트업들의 개발자 대부분은 프론트와 백을 가리지 않는 풀스택이었다. PM도 그렇다. 화려한 PM 스페셜리스트가 되고 싶은지 모르겠지만, 그러기 전에 스타트업의 생존을 위해서는 개똥 밭을 구르는 PM이 되는 것이 중요했다.그렇다고 스페셜함을 갖추지 말라는 것은 아니고, 그것은 또 어떻게든 키워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별도의 공부와 이를 어떻게든 실무에 적용해 보려는 시도를 통해 키워 보려고 하는 편이다. 나중에 PM이 하면 좋을 것 같은 공부에 대해서도 글을 써보겠다.)
지금 당장 회사의 런웨이는 명확하게 보인다. 회사가 런웨이 동안 이륙하지 못하면 비행기가 펑하고 터진다. 이륙한줄 알았는데, 다시 땅으로 쳐박기도 한다. 체계도 없어 보이고, 보상도 크지 않고, 뭔가 동료들도 애매해 보이는데, 작은 성과들을 조금씩 보면 강렬한 희열을 느끼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별 것 아니지만 회사의 런웨이를 3개월 늘리는데 행복해 하는 이상한 사람들. 고객 100명만 들어와도 눈에 불을 켜고, 고객을 깊이 파보고 싶은 이상한 도파민 중독자들… 고객의 악플이 너무나 즐거운 변태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스타트업에 잘 어울린다. 뒤가 든든해서 회사 망하지 않는 안전함 속에서 일을 하는 것과는 다른 스릴과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스타트업에 어울린다. (이런 사람들이 흔치는 않다고 보고, 이런 것이 꼭 훌륭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돌이켜 보니 내가 이런 성향이 있을 뿐)
안정적으로 적당한 높은 급여를 꿈꾸면서, 있어빌리티에 현혹되어 스타트업 문을 두드리는 것은 개인이나 회사나 피차 피곤하다. 글을 보면서 내가 어떠한 성향의 사람인지를 돌아 보면서 스타트업에 도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 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 말고도 매우 많은 스타트업 합류에 대한 고려사항들이 있겠지만, 그건 나중에 또 글을 써보려고 한다.)
현생을 핑계로 매우 오랜만에 글을 쓰게 되었다.
(오늘에서야 방송통신대 기말고사 끝! 육아는 끝이 없음...!)
이번주는 무조건 글을 올리겠다고 전직장 동료에게 약속을 했기도 했고...
조금 더 글쓰기 근육을 붙이고, 가볍게도 꾸준히 쓸 수 있게 바꾸어 봐야겠다.
그리고 이 글은 예전에 졸업한 대학 커뮤니티에서 스타트업에 대해서 일하는 것에 대해 알리고 공유하고 싶어서 적었던 글이 있는데, 그 글을 조금 수정해서 작성한 글이다. (당시 그 글이 상당히 인기가 많았고, 좋은 반응을 얻었었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