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을 알라'는 테스형의 말

by NAMIBORA

연휴를 조용하게 보냈다. 단지 주일날 오후에 친한 교회 찬양단 멤버들하고 벙개로 저녁식사를 함께하고 차를 마시고 정말이지 시원한 봄밤이었던지라 동네를 두어바퀴 걸었다. 모두다 여행을 떠났는지 유난히 한적하기까지 하여 참으로 걷기 좋았던 날. 모처럼 대화 퀄리티가 확 올라갔다. 오십 중반인 한 언니가 대입을 앞둔 조카가 하고 싶은 일, 가고싶은 길이 비교적 명확한 것을 부러워하며 자신은 아직도 본인이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를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했다.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전혀 좋아하는 일이 아니었지만 밥 먹고 살아야 하니깐 그냥 했고, 그렇게 30년 넘게 그럭저럭 밥은 먹고 살고는 있지만, 정녕 좋아하거나 잘하는지조차 잘 모르겠다고.


나도 그랬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사회생활을 했고 상냥하고 싹싹한 태도와 센스있는 일머리로 어디서나 환영을 받았다. 결혼도 매우 일찍 스물 초반에 했고 내가 사랑한 이 남자에게 나는 잘 맞춰서 행복하게 살 자신이 있었다. 회사생활에서든 결혼생활에서든 언제나 남에게 맞추는 생활을 했다. 성격좋은 사람, 모나지 않은 사람, 까탈스럽지 않은 사람으로 인식되었고 특별히 예쁜 외모는 아니었지만 귀여운 캐릭터로 둥글둥글하게 잘 지낸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취향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것도 좋고 아니면 저것도 나쁘지 않았다. 상대방이 좋으면 나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아주 오랜 시간동안 이렇게 살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어쩌면 착한여자 콤플렉스 같은게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안다는 말이 있듯이 나의 저런 태도는 남편이 나를 무시하는 빌미가 되었다. 나는 일찌감치 나의 재능은 집안일이나 살림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시골에 살 때도 부엌일이나 방청소보다는 밭일하는 것을 선호했고, 그 일을 더 잘했다. 직장맘으로 일을 하는데 회사일에 있어서는 프로페셔널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면서 매일매일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집안일은 내가 한다고 해도 늘 남편의 기준에는 미달이었다. 남편은 내가 좋아 직장생활을 하는 것이니 일하고 왔어도 집이며 음식이며 아이들이며 전부 완벽하게 다 하기를 기대했고 내가 그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면 늘 타박을 일삼았다. 20년이 넘는 결혼생활동안 지속적인 가스라이팅 형태의 무시 더 나아가 경멸하는 눈빛 등은 나의 영혼을 서서히 갉아먹고 있었고 중간 중간 회복을 위한 다양한 노력(편지, 각서, 아버지학교 등)을 해 보았지만 결국에는 그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갔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잘 한 일은 아들 둘을 낳은 것이다. 지금은 29세 19세로 30년전 20년전에 낳은 일이라 내가 언제 아이를 낳았었나 싶다. 지금은 이혼한지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니 내가 결혼한적이 있었던가, 내가 언제 아이들을 낳았었나, 까마득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30년전일지라도 세상 감탄스럽던 큰아이의 얼굴을, 우리 둘째 콩알만하던 그 사랑스럽던 아기때의 얼굴을 생생히 기억한다. 세상 이렇게 신기한 일이 있을수가 있을까. 내가 어찌 이런 위대한 일을 해 낼 수가 있었을까. 세상 아가들은 정말이지 너무나 귀하고 축복스러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두번째로 잘 한 일은 이혼을 한 것이다. 내가 이혼을 결심할 수 있었던 것은 2013년 초 외국계회사로 이직을 하고 나서 한 2-3년 일을 해 보니 내 월급만으로도 내 애들을 다 케어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아이들 아빠는 내가 아이들을 버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았다. 자신이 내게 아무리 함부로 해도 내가 아이들을 버리고 이 가정에서 뛰쳐나가지 못할 위인이라는 것을 알아서 더 못되게 굴곤 하던 사람이었다.


이혼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떤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나, 내 장점 혹은 강점은 뭐고 또 단점은 무엇인가. 커리어 플랜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내 인생 전반을 돌아보기도 하고 내 인생 향후 10년 플랜을 작성해보기도 했다. 알고보니 나는 정말이지 취향이 확실한 사람이었다. 나는 결코 둥실둥실 좋은게 좋은거라며 모든 사람들에게 맞추고 사는 그런 종류의 사람은 아니었던 것. 스물 초반의 나는 그 얼마나 무모했던가. 이 얘기를 들으면서 그 언니가 '그래 너 못됐어' 라고 말한다. 그런가? 나 못되기까지 한건가? 어쩌면 그런면도 있는 것 같다. 내가 견딜 수 없는 것은 '선을 넘을 때'다. 언젠가 언니가 생전 안하던 김장프로젝트를 할 때 나를 이리저리 부르며 선을 넘었을 때 내가 매우 발끈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부터였구나 이 언니가 내게 먼저 연락을 잘 안하게 되었던 시점이.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싫은 건 싫은 거니까. 계속 선을 넘게 놔둘수는 없는 일인 것이다.


자신을 안다는 건 너무나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자신의 성격도 취향도 잘 모르면서 30년 가까이 다른 환경속에서 자라온 남을 섣불리 '사랑'이라는 콩깍지만 믿고 덤볐다가는.. 내 꼴난다. 매우 불행하기만한 결혼생활 20년. 그러면 안된다. 누군가를 사랑하려거든... 자기 자신부터 잘 알아야 하고, 자기 자신부터 사랑해야한다. '너 자신을 알라'는 테스형의 말이 정말 맞다. '우리 자신을 좀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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