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 본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그리고 나의 스칼렛
내가 초등학생 때 우리 가족은 네 식구 몸만 겨우 누일 수 있는 다락방에서 살았다. 남 밑에서 일 못하는 아버지가 회사를 일찌감치 그만두고 차린 횟집이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야무지게 망했다. 낮에 엄마와 단둘이 집에 있는데, 낯선 아저씨들이 들어와서 세간살이에 빨간딱지를 붙이고 갔고, 얼마 후 우리는 그 동네를 떠났다. 새로운 동네에 부동산 사무실부터 차린 아버지는 벼락치기로 며칠 공부하시더니 제4회 공인중개사에 합격했다. 그리고 사무실을 반으로 나누어 엄마에게 양품점을 차려주셨고, 목수를 불러 양품점 안에 다락방을 뚝딱 완성했다.
다락방이 완성되자 나는 오빠와 함께 나무 사다리를 타고 신나게 올라갔는데, 합판 냄새가 매워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한쪽 면에 낸 두 개의 동그란 창구멍에서는 양품점이 내려다보였다. 양품점에 있는 싱크대는 세면대이자 부엌이었고, 부동산은 소파와 TV가 있으니 거실이었다. 화장실은 상가 뒷마당에 있었지만, 좋은 집에 대한 기억이 없으니 불편한지도 몰랐다. 하교 후와 주말엔 그 작은 거실에서 군것질하며 TV 보는 것이 주된 일과였고, 손님이 오면 조용히 자리를 비켰다. 그리고 폐점 시간이 되어 가게 안쪽에서 셔터를 내리면, 그곳은 거실과 부엌과 침실이 있는 우리만의 집이었다.
내가 하교하면 엄마는 다락방에 올라가 눕는 날이 많았고, 나는 양품점을 지키다가 손님이 오면 물건을 팔고 선물 포장을 했다. 가격 흥정이 필요할 땐 다락방 창구멍을 올려보기만 하면, 엄마가 눈짓으로 사인을 보내곤 했다. 장사를 제법 잘하는 나는 쓸모 있는 어른이 된 것 같았고, 나도 엄마도 숙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양품점에서 파는 예쁜 신상 머리핀과 머리끈은 내가 제일 먼저 착용할 수 있었고, 덕분에 같은 반 아이들은 내가 있는 집 딸인 줄 알았다.
그 특이한 형태의 집에서 보냈던 가장 좋았던 시간은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시청하던 ‘토토즐’, ‘주말의 명화’, ’ 유머일번지‘, ’ 전설의 고향‘ 등을 보던 때였다. 다른 프로그램을 볼 때는 가족과 함께 웃거나 공포에 떨었던 기억이 있건만, ’ 주말의 명화‘를 보던 시간만큼은 오롯이 혼자인 것 같았다. 아마도 그 시간에 나는 시공간을 벗어나 온전히 영화에 몰입했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러닝타임이 무려 4시간 가까이 되는, 초등학생이 이해하기 어려웠을 법한 내용인데도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이후에도 몇 번을 더 봤을 정도로 좋아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여자 주인공 스칼렛은 인형같이 예쁜 얼굴에 18인치 허리를 자랑하며 예쁜 드레스를 입고 다닌다. 미국 남부 대농장주의 딸인 그녀는 대저택에 살았고, 사이좋은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다. 동생들과는 사이가 나쁘지만,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곁에서 살뜰히 챙겨주는 하녀도 있다. 불안과 무기력이 지배적인 가정에서 편안하게 웃는 날을 즐기며 살던 나였기에, 시공간을 이동해 가고 싶은 곳이 있었다면 바로 전쟁 전 스칼렛의 집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녀는 사랑하지도 않은 남자와 두 번이나 결혼하고도, 다른 여자와 결혼한 애슐리밖에 모른다. 그 철부지 스칼렛을 사랑하는 레트는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하오. 우리는 비슷한 종류의 사람이요. 난 당신이 철들고 애슐리를 잊을 때를 기다렸소.”라며 사랑을 고백한다. 그는 전장을 뚫고 타라 앞에 그녀를 데려다주고는 전쟁터로 떠나면서, “당신이 연약하다고? 양키도 당신은 못 이길 거요.”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위기의 순간마다 나타나서 도와준 레트 덕분인지, 전쟁을 겪은 후 스칼렛은 단단한 ‘과부 가장’으로 다시 태어나 친정을 일으킨다. 막막해진 상황에서 그녀는 “맹세코 난 절대로 지지 않아. 이 모든 걸 이겨내서 다시는 굶주리지 않을 거야. 나도 내 가족도!”라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어리석은 사랑, 전쟁의 비참함과 배고픔, 자식을 잃은 슬픔까지 겪은 후에도, 스칼렛은 삶을 놓지 않는다. 오히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거야.”라며 온전히 그 순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낸다. 그리고 타라의 붉은 흙을 떠올리며 다시 일어날 의지를 불태운다.
돌고 돌아 자영업을 계속하신 내 부모님은 우리 남매를 먹이고 입히고 가르쳐 주셨지만, 무거운 빚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자신들의 삶을 사회 초년생인 남매에게 의지하고 싶으셨다.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마다 쏟아지는 부모님의 분노와 원망을 짊어지고 있었기에, 앞으로 나아가는 남매의 삶에는 죄책감과 무력함이 악착같이 따라다녔다. 그래서였는지 영화를 볼 때마다 전쟁 같은 삶 속에서 어떤 일을 겪어도 절대로 주저앉지 않았던 스칼렛에게서 용기와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며, 쓰러지기 전에 반드시 어디선가 나타나 슈퍼맨처럼 나를 구해줄 ‘나의 레트’를 애타게 기다리면서 말이다.
내 남편이 떠나지 않는 버전의 ‘나의 레트’인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삶의 중반에 이른 나는 ‘내일은 내일의 해가 떠오르는 날’을 살아온 것 같다. 비록 스칼렛만큼 단단하지는 않은 나만의 흐물렁 버전이긴 하지만 말이다. 내게 용기를 준 스칼렛, 어쨌거나 당신을 존경해!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