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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a Dec 15. 2022

개인의 취향 VS 트렌드

당신의 삶을 바라보는 따듯한 시선을 위해, 꼭 한번은 읽어야 할 이야기.

몇 년 전까지만해도 인테리어에서 트렌드라고 하면, 어떤 특정한 자재와 컬러로 제시되어 왔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인테리어 트렌드를 흔히 모던, 내추럴, 클래식 등 단순히 보여지는 스타일의 흐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트렌드라는 것이 모기업에서 제안하는 'Homescape, Editopia, Housewarming'처럼 사용자의 생활패턴과 삶의 문화를 제안하는 것으로 발전하였다. 반가운 현상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제안된 트렌드를 표현하기 위해서, 혹은 기업과 업체의 마케팅의 이유로 그 시기에 자주 추천되고 사용되는 제품군들이 존재하게 마련인데, 단순히 이런 제품을 사용하는 것만으로 트렌드를 반영했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아직도 많다. 믿지 않는 분들이 많겠지만, 한 때 체리수종이 모든 자재 시장을 휩쓸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화려한 형형색색의 포인트 벽지는 어떤가. 너도나도 액자프레임을 벽체의 테두리에 두르고, 그 안을 독특한 포인트벽지나 타일로 채워넣었다.


이 업을 시작하던 초기에는 나도 인테리어란 이미지가 '갑'이라며 유행하는 자재를 디자인에 반영하는 것에 집착했다. 하지만 그 찬란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철거대상 1호가 되어버린 꽃무늬 포인트벽지와 체리색 마루와 몰딩을 보며 아마도 10년이상 이 일을 해온 디자이너라면, 허무함을 넘어선 혼란을 느꼈을 것이다. 나 또한 수많은 아이템들의 흥망성쇠(?)를 20년 가까이 직접 경험하면서, 그런 이미지적인 아이템의 한계를 알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모든 산업분야가 그렇듯 이 업에서도 의미없는 소비를 부추키는 기업의 마케팅전략이 존재하고, 그것은 타인의 삶과 자신의 삶을 끝없이 비교하게 만들어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욕망하게 한다.



이런 환경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미적기준과 취향을, 타인의 시선과 평가를 통해서 판단하고 가위질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각자의 소중한 현실속에서 취한 자신의 선택에 존중과 자부심을 부여하지 못하고 있다.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자.


나는 운이 좋게도, 오랜기간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주거공간을 다뤄왔다. 그만큼 수많은 클라이언트들과 그들이 가진 '집'에 대한 로망을 이야기할 수 있었고, 그들의 '삶'과 '취향'에 대해 많은 것을 나누고 느끼고 배웠다. 유명 건축가의 현학적 에세이보다, 그들의 삶을 통해 전달되는 메세지가 훨씬 담백하고 진실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된다.


그런 클라이언트들 중 나에게 감동을 넘어 감탄을 자아내게 했던 몇몇 분들이 있는데 이 분들의 공통점이, 자신들의 삶의 패턴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선택되어진 자신의 취향을 존중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이들은 그것이 단지 유행이라고 해서 또, 타인이 좋은 평판을 내렸다고 해서 검증이나 고민없이 내 공간을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그것이 경험 많은 디자이너의 권유라 할지라도. 자신의 미적취향에 맞는 것인지, 그것이 가진 기능이 그 가격을 들여서라도 취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또 나와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방해하는 것은 아닌지를 끊임없이 고민한 후 결정을 내린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통해 무언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의 삶이라는 스펙트럼을 통해서만 판단하는 것이다.



그렇게 들여놓은 것들은 그들의 공간안에서 존재하는 이유가 분명하므로, 그들의 생활의 일부가 되어 단순히 물건 이상의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즉, 그들의 삶의 스토리를 공유하는 귀한 동반자가 되는 것. 그러니 이들에게 인테리어 공사란 유행에 맞춰 집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송두리째 갈아치우는 작업이 아니라, 이런 인생의 동반자들에게 가장 적합한 제자리를 찾아주는 바탕작업에 불과한 것이 된다.


그러니 남들에게는 일생일대의 큰 작업이, 그들에게는 큰 고민거리가 되지 않는다. 경우의 수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에, 단지 변화되는 공간에 의해 필요해진 몇 가지의 물건만 다시금 고민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 마저도 공사일정에 이끌려 섯부른 선택을 하지 않는다. 그저 찾아보고, 굳이 당장 들이지 않아도 되는 것들은 원하는 제품이 발견될 때까지 공석으로 남겨두고, 꼭 필요하지만 원하는 제품을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엔,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취향의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되도록 심플한 것들로 대체한다. 언제든 원하는 것을 찾았을 때 미련없이 그것들에게 자리를 내어줄 수 있도록. 그러니 그런 제품들을 고르며 알아보는 과정이 그들에겐 얼마나 여유롭고 즐거운 여정이겠는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확신과 존중을 가진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다.


반면에 대부분의 클라이언트들은 인테리어를 계획하게 되면, '짜잔~'하고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다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기회에 세월지나 촌스러워진 것들을 싹 걷어내고, 이것도 바꾸고 저것도 바꾸고, 이러니 인테리어라는 것이 거창한 작업이 되고, 인테리어가 진행되는 몇 주 사이에 삶의 모습 전체를 바꿔야하니, 선택의 연속이 되어 스트레스는 말도 못하게 많아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는 충분한 고민없이 이뤄지는 결정이 반절이상이 될 것이고, 그것들을 살면서 뒤에 후회가 되더라도 그저 불편함으로 품고 살아가거나 또 다시 비용을 들여 교체하게 되는 것이다. 금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큰 낭비일 수밖에 없다.


또 그렇게 다사다망한 작업이라 생각하니 아예 마음먹기도 힘들어지고 그렇게 모든 것이 바뀌는 인테리어를 하기 위해 돈을 최대한 아껴야 하니 지금의 삶은 궁색해지고, 또 인테리어 공사를 한다고 소문이라도 나면 주변사람들의 기대치가 높아지니 자존심에 그 시선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정말이지 인테리어공사라는 것이 어떻게 힘이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흰머리가 하루에 한줌씩 생겨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럼 이쯤에서 튀어나오는 한마디!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인테리어를 하라고, 하지 말라고? 결론이 뭐야?


결론은 인테리어의 순서와 주체를 정확히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테리어의 주체는 앞서 수없이 언급했으니, 그 순서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내 소유의 집을 마련하고, 그 시기의 트렌드에 맞추어 완벽하게 인테리어를 한 뒤에, 원하는 물건을 몽창 들여놓겠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바탕 인테리어가 완벽하지 못하더라도 나에게 주어진 현실 안에서 나의 생활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부터 하나 둘 씩, 천천히 진짜 내 것으로 바꿔가야 한다. 지금의 다른 것들과 조화롭지 못하더라도 그런 연습을 계속해야 한다. 처음에는 이런 작업들이 의미없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눈으로 보기엔 그닥 드라마틱한 변화가 없으니까. 하지만 하나 둘 씩 내가 원하고 가족에게 꼭 필요한 물건들로 바꿔진 뒤, 나의 생활과 의식은 분명 바뀌어있을 것이다. 그 동안 뜬구름 잡는 것 같았던 자신의 취향을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선물일 것이고 삶의 질이 어딘가 모르게 달라지는 것은 두번째 선물일 것이다. 그렇게 내가 원하는 제품들로 어느 정도 채워졌을 때, 인테리어를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인테리어라는 것이 사실 그 본질을 들여다보면 바탕작업에 불과하다. 그래야만 인테리어공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베이스를 만드는 작업으로 인식될 수 있다. 희한하게도 이런 단계를 거친후엔 공사의 방향도 명확해진다. 앞의 과정을 거치면서 계속되는 연습으로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인지하게 되는 것도 있지만, 바탕작업이란 것이 주인공이 돋보이게 하는 작업이므로 선택의 여지가 그닥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사람들이 뒤바뀐 순서를 정석으로 알고 이 작업을 진행해왔을 것이다. 유행하는 인테리어로 공사를 한 뒤에 구색 맞추기식의 가구와 소품을 선택하는 것, 트랜드하게 바꾼 인테리어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족들의 휴식의 자세를 고스란히 담고 있고 기억하는 소파를 쉽게 버리고 새로 구입하는 것처럼. 그래서 그 많은 돈을 들이고 그 많은 물건을 들여도 얼마짜리 물건이라는 것과 어디 브랜드 제품이라는 것 말고는 자랑거리가 없는 것이다.


자신의 선택에 자부심과 존중이 없고 브랜드와 가격에 대한 존중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각각의 물건들이 서로 조금 맞지 않는 구색이더라도 그것을 선택한 이유가 분명하다면 그 조합이 결국 당신의 스타일, 즉 자신의 삶을 반영하는 취향이 되는 것이다.


많은 디자이너에게도 이 이야기는 전하고 싶다. 미적으로 뛰어난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도 디자이너에겐 중요한 사명 중 하나이지만, 주거공간에서만큼은 클라이언트가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도록 도와주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을 안내해주며 자신들의 선택과 그 선택의, 바탕이 되었던 현실을 스스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해 주는 것도 중요한 사명 중 하나라고.


요즘 유행하는 북유럽디자인을 내 집에 들여놓고 싶은 마음에, 알파벳 액자를 소파 뒤에 걸어두고 저건 내 이름의 이니셜이야 혹은 내가 좋아하는 문구의 첫 글자야 라는 식의 단순한 만족을 취하는 것보다는(물론, 이런 방향의 디자인을 추구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를 찾는데 삶의 시간을 투자하고, 그 시간과 작가를 기억하기 위해 그의 작품의 원본이 아닌 포스터에라도 내 중요한 공간을 내어준다면, 그 작품 하나가 내 삶의 시간과 취향을 증거하고 기록하는 존재가 되어 그 또한 의미있는 삶의 한 조각으로 내 공간에서 나와 함께 내 삶을 꾸려가게 되는 것이 아닐까.


가족들이 함께 한 추억을 담은 한 컷의 사진을, 공을 들여 멋지게 편집하고, 발품팔아 어울리는 프레임을 만들어주는 수고를 담는다면, 그것은 유행에 따라 쉽게 들여놓고 또 쉽게 버려지는 장식용 액자와는 비교할 수 없는 당신의 인생스토리가 담긴 취향이 되는 것이다. 둘 중 어느 것이 좀 더 가치있고 나와 가족들에게 소중하게 느껴질까.


내가 좋아하는 인테리어 아이템중의 하나가 테이블에 올려진 가족들의 행복했던 순간을 기록한 사진들을 보는 것이다. 액자의 모양도 다다르고 규격도 다 다르지만, 그것들은 가족들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회상하는 훌륭한 장치가 된다. 그 집을 방문하는 타인에게 그것만큼 재미있고 흥미로운 인테리어 데코피스가 또 있을까? 어느 순간부터 가족사진을 걸어두는 것을 촌스러운 아이템이라 여기는 이들이 있지만, 표현방법과 디자인만 조금 달리하면 최고의 아이템이 될 수 있다.


나의 이 모든 제안은 물건을 들여놓는 것 하나하나에 꽤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그러기에 우리가 지금 하려는 인테리어 공사라는 것이 '완벽한 디자인의 공간을 몇 주 사이에 뚝딱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최종점이 될 수가 없다.


 어차피 누구에게나 완벽하게 아름답고 기능적인 공간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자신에게 맞는 무언가를 찾아가는 과정을, 줏대를 가지고 여유롭게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그러니 이런 생각으로 인테리어 공사를 하게 되면 공사후에도 여기저기 빈 공간 투성일테지만 이것을 허전함이나 미완성이 아닌 내 삶의 여유와 여백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그 빈 공간에 무어라도 들여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이나 강박의 시간은 좋은 물건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즐거운 여유로 바뀌게 될 것이다.


가끔 드물게, 잡지를 통해 발견되는 집주인의 다양한 취향들이 멋스럽게 어우러진 보석같은 집들을 본다. 그런 집들의 공통점은 인테리어공사를 한지 적게는 한해가, 많게는 수년이 지난 집들이라는 것이다. 그 사진에 등장하는 아이템들은 돈만 있으면 하루 이틀만에 매장에 가서 싹쓸이 해 올 수 있는 그런 제품들이 아니다. 소중한 여행을 추억의 시간으로 되새길 수 있게 해주는 것에서부터, 아이들이 성장의 시간속에서 선물처럼 주는 사건과 순간을 되돌아보고 서로 이야기할 수 있게 하는 상징적인 아이템들까지, 그들의 삶의 스토리를 담은 소품과 가구들로 가득하다. 그러니 어찌 한달안에 이런 소품을 구할 수 있으며, 같은 곳을 여행하고 같은 아이들과 살아온 것이 아니라면 같은 스타일의 인테리어가 나올 수 있겠는가.


한 고객이 세 딸이 다 같이 신었던, 이제는 낡고 낡은 꼬까신을 보물처럼 나에게 조심스레 내민 적이 있다.  딸들이 늘 볼 수 있는 곳에 이쁘게 둘 방법을 물어왔다. 낡고 변색되고 헤진 그 신이 나에겐 눈물나게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클라이언트에겐 세 아이와 나누었던 행복했던 시간을 회상할 수 있는 더없이 소중한 아이템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런 것들과 비슷한 물건들, 혹은 같은 물건들로 흉내는 낼 수 있겠지만 삶의 이야기가 담겨지지 못한 그것들은 그저 영혼없는 장식품에 불과할 것이다. 과연 그런 물건들이 줄 수 있는 행복의 기한은 얼마이며, 어떤 것일까. SNS에 올려서 자랑하는 사진 한 컷 만큼의 행복? 아니면 어쩌다 한 번 찾아오는 친구들에게 듣는 칭찬 한 마디와 질투의 시선? 하지만 그런 순간을 위해 사들이는 트렌디한 소품들의 비용은 생각보다 비싸다.


얼마전까지 북유럽 광풍이 불고 있어 어딜가나 비슷한 것들로 가득 채워진 비슷한 공간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지금은 또 화이트, 무몰딩, 졸리컷 광풍. 어찌보면 정말 트렌디한 민족이지만, 또 달리보면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남의 눈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는 것에 애잔함도 든다. 생각해 보라. 어찌 이 많은 삶의 개성들이 북유럽 디자인만을 향해 있는가. 자신의 삶에 필요한 것들에 오랜 시간 자신의 색깔을 입혀내는 작업이 주거에서의 진짜 '인테리어'이다. 그러니 매번 달라지는 트렌드에 자신의 삶을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적절히 활용해서 자신만의 조합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나만의 취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줏대가 있었으면 한다.


한가지만 더, 어느 누구도 같은 현실과 같은 취향을 지니고 살아가진 않는다.


각자가 자신이 지닌 현실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살아가고 있으니, 제발 타인의 수많은 삶의 이유와 기나긴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공간에 대해 어설픈 미적 잣대로 함부로 평가하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말자.


자신의 공간이 정말 어떤 디자이너에게 내어놓아도 훌륭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자신하는 오만함을 지닌 이가 아니라면 말이다.


멋진 소품을 구입할 비용으로 한 아이를 후원하는 일이 더욱 값지다고 생각하는 이의 검소한 공간이 의미없는 소품들로 가득 찬 모델하우스 같은 공간보다 아름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우리만이라도 눈에 보여지는 것 이상의 가치를 디자인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신념을 지닐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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