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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a Dec 14. 2022

내가 사는 '공간'을 즐긴다는 것

당신은 왜 그 많은 수고와 예산을 들여서 '집'을 고치려고 하는가.

그럼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이 있다.



당신은 왜 그 많은 수고와 예산을 들여서 '집'을 고치려고 하는가. 지금의 우리는 왜 그토록 '집'의 이미지에 집착하는 것일까. 과연 '집'이란 우리에게 어떤 가치이길래 내가 그토록 열심히 벌고 모아 온 것들을 과감히 내어놓을 수 있는 것일까.



과거 우리에게 '집'은 재테크의 대상일 뿐, 개인의 취향과 '집'이 가져야 하는 진짜 이유를 담고 있지 못했다. 경제적인 가치 기준에 맞춰 디자인된 수많은 아파트들의 비슷한 프레임 속에서 우리 대부분이 그것에 끼워 맞추듯 각자의 삶을 담고 살아왔다. 지금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아파트가 지닌 건조함이 그때만 해도 쿨한 세련됨으로 포장되어 선망의 대상이 되기까지 했으니, 그때를 돌아보면서 비교해본다면 지금 우리들의 '집'에 대한 생각은 분명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요즘에 들어선 또 다른 회의가 찾아온다.


분명 내 삶의 '질'을 위해 그리고 나의 '취향'을 담아내기 위해 '내 공간'에 대한 투자를 아낌없이 하고 있지만, 단순히 유행의 광풍에 쓸려가듯 따라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의미 없는 장식에 지나치게 과한 금액을 지출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이 업을 사랑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이 방향이 맞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또다시 던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사실 이런 질문을 해야 할까를 두고 나름으론 깊은 고민이 있었다. 그냥 작업의 프로세스나 알려주고 정보나 전달해주면 될 텐데, 왜 이런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그래도 나름은 건축을 공부한 사람으로, 다른 공간은 접어두고라도 '집'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의미와 그런 집을 '디자인한다'라는 말의 의미가 단순히 공간을 트렌드에 맞춰 꾸며내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늘 들어오고 사용해온 '인테리어'라는 단어는 애초에 상업시설에서 많이 사용되었던 말이다. 사람의 마음을 잠깐의 스캔으로 끌어당길 수 있는 매력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상업공간에서의 '인테리어'가 가져야 할 가장 큰 이유이자 목표이다. 짧은 시간에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에 많은 비용을 들이는 작업. '인테리어'라는 개념이 여기서부터 시작하다 보니 주거공간의 인테리어에도 같은 의미로 적용되어 단지 공간을 보기 좋게 꾸미는 것으로 단순화된 듯하다. 사람들을 유혹하기 위해 만들어진 모델하우스의 화려한 인테리어들과 또 여기에 넘쳐나는 해외의 인테리어 자료를 보면서 데코 피스들로 가득한 그 이미지들이 인테리어의 표본이라 생각하게 된 것도 그 생각을 굳히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주거공간에서의 인테리어란, 상업용의 목적과는 달리, 나의 취향과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관심있게 들여다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남들의 시선과 평가로 내 공간을 재단할 필요없이, 오롯이 나와 내 가족의 취향으로 가득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되는 것이다.



나는 어떤 색감의 공간을 좋아하고, 어떤 크기의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끼는지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그리고 우리 가족들에게 제대로 된 휴식을 제공하고, 서로의 커뮤니케이션을 자연스레 이끌어내어 주는 공간은 어떤 것인지 서로 같이 이야기 나눠 본 적 있는가. 매끼 가족의 식사가 만들어지는 주방의 구조가 불편하진 않는지, 이런 불편함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그 가족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같이 고민해 본 적이 있는지. 단지 불편하고 맞지 않다는 불평만 있을 뿐, 어떤 것들이 나한테 맞는 것인지, 보완되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세심하게 들여다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욱 근원적으로, 내 집은 나와 내 가족들에게 어떤 공간이어야 할까부터 생각해볼까. 바깥 생활에서 지친 내가 '집'이라는 둥지에 돌아와서 누려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일을 마치고 돌아온 집. 깨끗한 욕실에서 여유롭게 씻고, 가족들과 다정하게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잠깐일지라도 자신만의 시간을 가진 후, 포근하고 편안한 잠자리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며 내일을 맞이할 에너지를 채우는 곳. 가장 일반적이기도 하지만 가장 이상적이기도 한 모두의 로망이 아닐까. 여기에 개인의 특성에 따라 몇 가지가 더해지거나 덜어지거나 하겠지만 '집'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바람은 모두가 비슷할 것이다. 그럼 이런 기준으로 다시 내 집을 들여다보자.



정리되지 않는 신발들로 바닥이 보이지 않는 현관, 입었던 옷들과 가방들이 정신없이 뒤섞여있는 드레스룸, 겨울이면 결로 때문에 한없이 울어대는 다용도실 벽체, 이런저런 물건들로 항상 어수선한 식탁 상판, 불편한 동선으로 쉽게 피로해지는 주방, 거실 발코니 쪽에 늘상 자리잡고 있는 빨래건조대와 사용하지 않는 러닝머신이 24시간 점거하고 있는 거실, 충분한 시간을 자고 일어나도 온몸이 찌뿌둥한 침대 매트리스와 새벽부터 여름 햇살을 쨍하게 맞이하는 있으나마 나한 커튼이 있는 침실, 설명할 수 없이 총체적 난국인 아이들 방.



우리가 집에서 흔히들 맞는 이 문제들이, 몇 천만 원을 들여 최신 트렌드의 자재로 공사를 하고, 오리지널 의자를 들이고, 유행하는 소품을 사들인다고 사라질까. 한동안은 불편하더라도 들인 돈이 아까워 처음의 상태를 유지하다가 결국 몇 달 뒤엔 같은 패턴의 문제 속에서 변화 없이 살아가게 될 것이다.



보이는 것에만 집착했던 클라이언트들의 집을 1년 뒤 AS를 이유로 다시 찾았을 때, 도대체 왜 그 많은 돈을 들여 인테리어를 했는지 모를 정도로 창고같이 변해버린 모습에 가슴이 답답해진 경험이 있다. 처음 3개월동안은 집들이 때문이라도(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하니) 그대로 왠만큼 유지가 되다가, 결국 자신의 생활에 집중하게 되면 집은 다시 내팽개 쳐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보이지 않을 때는 창고처럼, 그러다 누군가가 집을 찾게 되면 멋진 '1회용 게스트홈'이 되는 것이다.


매일이 풍요로운 '마이 스윗홈'이 아니라.



사실 일상생활을 유지하면서도 잡지에 나오는 집처럼 깨끗하고 아름답게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유지관리를 위한 누군가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고갈된 에너지를 보충해야 하는 집이 누군가에겐 또 다른 일거리가 되는 것이다. 남들에게 보여주는 멋진 집을 만들기 위해서, 내가 누려야할 것들을 포기하고 뒤로 숨겨두면 여지없이 집은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하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불편하더라도 보기에 멋진 것이 좋고, 거기에 내 에너지를 기꺼이 투자할 여력이 있으며, 그것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라면야 상관없겠지만, 집을 유지관리하는 일이 나의 휴식을 삼키는 또 다른 '짐'이 되게 해서는 안되지 않을까.

이쯤되면, 앞서 언급했던 나와 내 가족의 삶을 세심하게 들여다보라는 말이 이해가 되는가.


쉽게 예를 들어본다면, 집안에 옷들이 항상 여기저기 널려 있는 상황이 발견된다면, 그것은 현재 옷을 수납하는 공간이 부족하다는 의미이거나 수납장이 적절한 위치에 배치되지 않아 그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거나 수납장의 형태가 사용자의 사용패턴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잔소리로 행동을 교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믿음을 가지는 것보다 우선, 옷장을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이다. 현재의 수납장이 가득차 여유공간이 없다면 수납공간을 늘려야 할 것이고, 반대로 수납장에 여유가 있다면 위치가 잘못된 것이니 적절한 위치에 보관장소를 마련하거나 이동해야 할 것이다. 가족들의 생활의 흐름을 고려하지 못한 수납의 구조는 생활을 혼란으로 빠뜨린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이 또 하나 있는데, 이렇게 생활패턴을 확인한 뒤, 한 사람의 기준으로 그 행동패턴을 잘못된 것으로 단죄하고, 행동교정을 강요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한두가지 정도야 부던히 노력하면 고쳐지겠지만, 생활습관을 전체적으로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와 내 가족의 생활패턴을 쿨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결국은 거기서부터 그 집만의 인테리어 개성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용 중인 이미지는 패스,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우리집에는 검정색의 오픈형 책장이 집의 가장 중심 공간인 거실과 식탁을 이어주는 벽에 크게 자리잡고 있다. 우리부부의 성격상 뭔가를 숨겨두면 찾지를 못해서 거의 사용하지를 못하니, 왠만한 물건들을 죄다 밖에 내어 놓아야 하는데, 이런 것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게 되면 집이 어지러워지는 것은 순간이었다. 처음엔 어떻게 구석구석에 숨길까를 고민하다가, 그냥 우리의 패턴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서는 오히려 답은 쉬웠다.


집의 모든 공간에서 접근이 가까운 중심공간의 벽체에 큰 오픈형 수납장을 배치해서 필요한 것들을 짧은 동선으로 찾을 수 있게하였고, 여러가지 다양한 모양의 물건들을 수용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 크기의 칸을 만들었다. 이렇게 필요에 의해 생겨진 크고 작은 칸들을 리듬감있게 반복배치함으로서, 규칙성있는 디자인으로 구성하고, 여러가지 물건들의 다양한 컬러의 산만함을 잡아주기 위해 무게감있는 어두운 컬러를 베이스로 선택했다. 덕분에 우리는 모든 물건을 널부러(?) 놓는 자유를 누리면서도, 나머지공간들은 항상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재미있는 건, 그렇게 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보니 칸칸마다 나름의 질서가 생겨지고, 1년이 지나니 각각의 물건들이 놓여지는 장소가 늘 같은 위치가 되어 이제 문을 달아도 찾을 수 있을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최근엔 꼬맹이의 책들과 장난감이 하단부를 점령중이다.


디자인이라는 것이 이렇게 주어진 조건들에 맞는 조합을 퍼즐처럼 맞춰가는 작업이다. 이 과정에 꼭 필요한 것이 나에게 지금 주어진 조건들과 앞으로 필요한 조건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물론, 어느 누구도 아름다운 것을 마다할 사람은 없다. 또 아름다움에서 얻는 우리의 정서적 충만함도 매우 중요한 요소임이 틀림이 없다.



하지만 집은, 단순히 아름다운 것을 넘어서 사용자들의 생활패턴을 자연스럽게 품을 수 있어야하며, 평화로운 힐링의 공간이 되어 그것으로 그들의 성장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



디자인작업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겠지만, 그런 공간으로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공간을 적절하게 분류할 수 있어야 한다. 기능적인 부분이 주가 되는 공간, 기능적 부분과 미적인 부분이 상호작용해서 그 가치가 발현되는 공간, 또 철저히 미적인 것의 조건에 내어주어야 하는 공간, 이렇게 현명하게 공간을 분류한 뒤, 각각의 공간에 합리적으로 예산을 배분하고, 자신의 취향과 예산을 맞추어 필요한 자재를 선택하고 그 형태를 잡아가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단순하다.

주거에서만큼은 디자인의 시작이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신과 가족의 삶에 대한 진심어린 관심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이다. 집에 발을 디디는 그 순간부터 내가 어떤 패턴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그 패턴안에서 반복적으로 느꼈던 불편함이 무엇이었는지, 늘 눈에 거슬렸던 것은 무엇인지, 그렇게 나와 내 가족의 삶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면서, 공통점은 공유하고 차이점은 존중해주도록 공간을 구성한다면, 작은 공간도 알차게 계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디자인된 집'에서의 생활이 어찌 여유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모든 공간들이 제 역할을 충실이 해냄으로서, 나와 가족의 삶에 든든한 서포터가 되어주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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