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더 잘 이해하는 내가 되길 바라며
최근 회복탄력성이라는 한 책을 읽으며 최근에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 감정에 솔직하게 행동한 하루가 생각이 났다. 책에서는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기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자기이해지능이 높다고 했다. 예를 들어 과학자의 경우 논리, 수리 지능만 높다고 되는 것이 아니며, 음악가는 음악지능만 높다고 해서 뛰어난 음악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자기이해지능은 결국 감정 조절 능력을 기반으로 하는데, 자기이해지능은 자기감정 상태를 정확히 인지하는 능력과 자신의 감정 상태를 원하는 방향으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나는 한평생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게 살아왔다. 그렇게 보면 나는 참 자기이해지능이 낮았던 것 같다. 더 어릴 때는 함께 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다치게 할까 봐, 분위기가 괜히 나로 인해 쎄- 해질까 봐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나는 내 감정을 드러내길 두려워했던 것 같다.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그걸 이야기했을 때 누군가 이렇게 생각하는 게 본인과 맞지 않거나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걸 두려워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늘 가면 쓴 착한 아이처럼 싫어도 좋은 척, 나쁘지 않은 척 남들에게 맞추며 살아왔고 그게 미덕이라 믿었다.
그러나 30대가 넘어가고, 사회생활도 8년 차에 접어들 무렵 나는 내 내면을 마주하고 그게 착한 '척'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싫어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꽤 명확한 사람이었다. 나에 대해 점점 알아갈수록 은근히 선을 넘는 사람들에게 내 선을 정확히 그어줄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최근 회사에서는 회사 렌터카를 타다 범칙금이 발생한 상황을 가지고 팀 내부적으로 말이 많았다. 나는 해당 사이트의 담당자였기 때문에 이런 일도 자연스럽게 내 일이 되었는데, 몇 달이 지난 일이다 보니 운행했다고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메일을 10명에게 보냈는데 단 1명에게만 먼저 연락이 왔고, 나는 나머지 9명에게 기억이 나느냐며 미안한 기색으로 연락을 돌려야 했다. 헌데 다들 본인 일이 아니라는 느낌으로 대답했고 그날을 기억해 보려는 노력은 없었다.
이러다 보니, 나 혼자서만 할 일이 아니라 느껴 사무실에 있는 선후배들에게 어떤 식으로 관리를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같이 좋은 방안을 도출해 보자며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추가적으로 해야 하는 이런 일들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는 자리가 아니라 지금 이런 상황이니 계속 반복되면 안 되지 않겠냐며 이야기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전했다.
이때 한 선배가 "ㅇㅇ씨는 엔지니어들을 이해 못 해서 그래요. 엔지니어 직무 한 지 오래되지 않았어요? 제일 최근까지 엔지니어로 일한 건 저잖아요? 메일 확인하기도 힘들고 일하는 게 힘드니까 답장 안 하는 거예요. 당연하지" 라며 자꾸 엔지니어 직무를 하지 않는 나를 찍어 누르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나는 엔지니어 직무를 안 한 지 지금 2년 반이 넘은 건 사실이나 그들을 이해 못 하는 게 아니었다. 선배는 남의 일 이야기하듯 하며 앞으로의 개선 방법엔 관심을 두지 않고 계속해서 나를 누르고 본인을 치켜세웠다.
평소의 나라면 그저 "아 선배, 그렇죠. 맞아요. 그러게요. 쉽지 않네요." 이런 식으로 응수했을 텐데 계속해서 나에게 감정적이라며 나를 누르는 그를 보며 나는 그 순간 수백 가지의 생각이 스쳐갔다. 그 자리에는 팀 매니저와 선배, 동기 몇몇, 후배가 있었는데 내가 이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컨트롤할지 말지 고민이 됐다. 처음에는 감정을 누르기 위해 "선배, 저 감정적이지 않아요. 이걸 해결하고 싶을 뿐이에요."라고 했는데도 계속해서 나에게 "ㅇㅇ씨 진정해요~ 너무 감정적이네~ 엔지니어는 제가 제일 잘 알아요. 이건 안 돼요. 범칙금 그냥 제가 낼게요~ 뭐 얼마 된다고."라고만 했다. 몇 번의 대화 끝에 나는 확신했다. 이 사람은 지금 내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고 해결하려는 의지도 없으며 사람들 앞에서 본인을 치켜세우고 싶은 거다. 이런 생각에 이 대화들이 더 의미가 없다고 느꼈다.
그 순간, 나는 잘 잡아왔던 감정의 끈을 일부러 놓았다. '일부러'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이 선배는 종종 깐족거리며 선을 넘어왔는데 늘 그냥 생글거리며 넘기고 대화를 피하는 식으로 해왔었다. 나는 감정을 얼굴에 다 드러내며 화가 난 티를 충분히 냈다. 그리고 목소리와 함께 몸도 떨렸다. 입사하고 8년간 나는 이런 감정을 사람들에게 내비친 적이 있었나. 순간적으로 자기 검열 시스템이 돌아가며 이게 맞는 행동이었나, 다른 사람들도 주변에 있었는 데하며 고민했지만 현재까지도 후회하지 않는다. 이를 계기로 아무리 후배더라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으며, 그 선을 넘었을 때의 결과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화를 순간적으로 냈다가 주변인들의 대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다음 바로 숨을 고르고 아무렇지 않게 대화에 참여했다. 주변인들은 죄가 없으니. 그렇게 화를 내도 그 선배는 이후에 단 한마디 사과도 없었고 지금 아무렇지 않게 지내긴 하나 조금 더 나를 의식하는 느낌이 든다.
살다 보면 어떤 사람들은 본인이 남에게 다가갈 수 있는 범위를 함부로 판단해서 그 선까지 가거나 그 선을 넘어버리는 경우들이 있다. 나는 이번 기회로 내 감정 자체를 들여다볼 수 있었고, 내가 이 감정을 드러냈을 때 주변인들을 고려해 적정 수준으로 컨트롤해서 적어도 본인에게는 전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선배는 다신 내게 그런 식으로 선을 넘을 수 없을 것이다. 분명히 선을 그어줬으니.
같은 자리에 있던 동기 언니가 내가 그렇게 화난 모습을 입사하고 처음 봤다며 놀랬다고 했다. 그리고 그 선배가 너무 선을 넘어간 것 같다며 말을 조금 조심했어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고 나를 두둔했다. 매일 생글거리며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행동하는 게 사회적으로 문제없는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나 나는 이제 그렇게 살지 않을 거다. 나는 내가 소중하고 내 감정에 솔직하고 싶다. 나를 함부로 하는 사람이 나를 다치게 했는데 당사자는 다치게 한 줄도 모르고 그냥 넘어가지 않게 분명히 알려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누군가의 선을 넘었을 때는 바로 사과하고 더 조심해야겠지. 그 점만 명심하며 내일 회사 가서 만날 사람들의 각각 가진 선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서로 배려하며 지내야겠다.
내 감정에 솔직하며 나를 더 잘 이해하는 내가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