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보호자가 된다는 것.

부모님의 시간은 곱절의 속도로 흐른다

by 르미

어릴 적부터 나에게 부모님은 늘 선망의 대상이었다. 부모님 모두 본인의 능력으로 석사 학위 취득은 물론 사회적 위치도 지금의 나보다 훨씬 나은 분들이었다. 어릴 때도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인터넷보다는 부모님께 물었고, 사회 초년생 때도 어려움이나 고민이 있을 때면 부모님에게 많이 의지했던 내게 큰 사건이 하나 생겼다.


그 사건은 어머니에게 온 전화로부터 시작됐다. 아버지는 만성 B형 간염을 앓고 계셨어서 몇십 년째 약을 드셔 왔는데 얼마 전 내과에서 정기검진에서 간 CT 결과 상 결절로 보이는 부분이 보여서 큰 병원으로 가서 검진을 해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큰 걱정이 없었다. 왜냐하면 간은 보통 동적 MRI로 촬영을 하는데 지방에는 이 기기를 갖춘 병원이 잘 없기에 큰 병원으로 가는 것이 당연했다.


그렇게 아버지는 10년 전 간암 초기로 진단받았던 현대아산병원으로 향했고, 나도 어머니도 동생도 모두 일정이 안되어 아버지 혼자 가시게 됐다. 그리고 그날 나는 하필 너무 바빴고 부모님과 연락을 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마음 편하게 먹고 있었는데 퇴근길 마주친 어머니의 이야기는 뜻밖이었다. 검사를 하고 집으로 내려왔는데 아버지가 입원을 해서 정밀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뭐, 별일이겠어 싶어 네이버로 간암 진단 방법을 찾아보는 정도에서 그쳤다.


그리고 입원을 하신 날도, 입원해서 검사를 받을 때에도 나는 회사 일로 너무 바빠 병원에도 가보지 못했다. MRI, CT 촬영 이후 조직검사 하는 날 겨우 짬을 내서 병원에 가볼 수 있었는데, 병실에 가려면 환자와의 관계 증명도 해야 하고 정보 등록과 함께 상주 보호자라는 팔목 띠를 차야만 했다. 나는 병원 관계자에게 아버지의 보호자라는 사실을 말하면서도 흠칫, 했다. 내가 부모님의 보호자라니. 늘 나를 지켜주던 존재가 아니었던가. 나는 언제 이렇게 커버렸지, 아니, 부모님이 이제 더 이상 강하기만 하신 분들이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에 혼란스러워하며 병실에 도착하니 아버지는 조직검사를 받으러 가시고 안 계셨다. 간호사와 인사를 하고 병실에 앉아 있는데 남자 간호사가 아빠의 병상을 끌고 병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천천히 병실에 있던 침대를 밀어 꼼짝달싹 못하는 아버지를 끌고 온 침대에서 옮겼다. 조직 검사를 받고 온 직후에는 4시간 동안 움직이지 말고 식사도 웬만하면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으며 누워있는 아버지를 찬찬히 바라봤다.

하얀 환자복 아래 나온 가느다란 팔목을 보며 난 입 안에서 순간 쓴맛이 느껴졌다. 아침부터 이런저런 검사로 인해 아침, 점심을 전부 못 드셔서 그런지 힘이 없어 보였고, 하얀 환자복에 드러난 아버지의 피부는 환자복 못지않게 하얬다. 아버지는 조직검사를 진행한 환부를 꼭 잡고 눈을 감고 계셨는데 갑자기 무서움이 나를 덮쳤다.


사실 내가 스무 살 때 아버지는 간암 초기로 진단을 받아 수술을 하셨는데 그때는 어리기도 했지만 대학교가 멀리 있어 수술 후 겨우 한 번 가본 정도여서 부모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크게 없었다. 나는 복잡한 심경으로 버지를 몇 시간이고 바라보다 집에 왔다.


그리고 며칠 뒤, 검사 결과가 모두 나왔다. 아버지는 가족 단체 카톡방에 덤덤하게 방사선 치료 일정과 주의 사항을 올리셨다. 제발 아니길 바랐던 결과에 나는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하필 그날따라 회사일도 바빠 고객사와 미팅에 내가 마무리하고 와야 하는 일이 많아 퇴근까지 이 마음을 누구에게 들킬까 싶어 노심초사했다. 그리고 저녁 늦어서야 퇴근하며 부모님과 겨우 통화할 시간이 났는데 나를 걱정시키지 않으려는 마음인지 목소리는 오히려 담담하셨다. 그리고 나는 매 1분마다 무너지는 마음을 들키기 싫어 오히려 부모님에게 걱정하시지 말라는 말과 함께 내가 어떻게든 아빠 치료 일정에 내 일정을 맞춰보겠다고 부모님을 애써 안심시키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와서 남편 얼굴을 보는데 눈물이 주룩 났다. 왜 아버지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30여 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시고 이제야 명예퇴직을 하셨는데, 그동안 얼마나 주변인들과 가족들을 살뜰하게 챙기면서 책임감 있게 살아왔는데.. 왜 우리 아버지에게 이런 일이 생기나 싶어 난 하늘에 있는 모든 신을 원망했다. 그리고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 나는 돌아가신 친할아버지에게 빌고 또 빌었다. 할아버지한테 있는 자식들 중에 제일 효도하는 셋째 아들, 제발 좀 살려달라고, 빌면서 잠들었는데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래도 그 와중에 다행인 것은 간암으로 보이는 결절 부분의 크기가 작아 방사선 치료 4회 정도면 가능할 것이고 수술 없이 가능한 치료라 그나마 너무 다행이었다. 할아버지에게 전한 내 기도가 통한 것인지 아닌지 분간은 안 가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컨디션도 괜찮았고 혈액 검사상 결과도 모두 정상이라 그나마 한시름 놓았다.




30대에 접어들면서 나는 시간이 참 빨리 간다고 느꼈다. 그러나 내가 잊고 있던 게 있었다. 빠르게 흘러가는 나의 2배속 시간에 부모님의 시간은 곱절로 빨리 가고 있었던 것이다. 회사 일들로 개인적인 모임들로, 때로는 지친 나를 위해 휴식하는 시간을 줘야 한다는 이유로 나는 부모님의 시계를 외면해 온 것 같다.


회사 일에 바쁘다 보면 내가 좋아하던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중요한지 계속 놓치게 된다. 누군가는 이게 나이 들어가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이야기할지 몰라도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가족, 가족과의 함께하는 시간들은 절대 흘려보내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너무 늦게 후회할 행동을 절대 남기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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