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학교 정보통신대학원에 합격했다. 전공은 블록체인이다. 3달 전 특수대학원 진학을 목표할 때는 빅데이터 관련 전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원할 학교들을 탐색하다가 블록체인이라는 재밌는 토픽을 발견했다. 블록체인 전공은 여러 대학원 중에서도 유니크한 전공이다. 뭐랄까, 원초적인 끌림이 있었다.
#2. 옛날얘기
나는 대학교에 입학할 때도 의외의 선택을 했다. 고3까지 변하지 않은 내 꿈은 법조인이 되는 것이었다. 수능을 잘 보고 최상위권 대학에 가서 로스쿨에 진학하고 싶었다. 그 꿈은 수능 고사장에 입실한 지 1시간도 채 안 되어 무너져버렸다. 너무 긴장한 탓에 덜덜 떨며 1교시를 날려버렸던 게 기억에 선명하다.
점심시간, 소화가 잘 되도록 챙겨간 죽을 씹으며 지난 수험생활을 돌이켜봤다. 여러 생각이 스쳐갔다. 후회스러운 순간이 참 많았다. '매일 최소한 새벽 2시까지는 공부를 했어야 했나?', '아니, 그럼 진짜 오늘 안 떨었을까?', '이 시험으로 내 남은 인생이 결정되는 건가? 억울하다.', …, '나는 뭘 위해서 이렇게 달려왔을까?'
메스꺼웠다.
수능이 끝난 후에도 생각은 이어졌다. 수험생활을 1년 더 하면 스트레스로 병에 걸릴 것 같았다. 이왕 계획이 틀어진 김에 아예 다른 학과로 가고 싶어졌다. 그때 내가 학과를 선택한 기준은 2개였다.
1. 살면서 한 번이라도 푹 빠져본 적이 있는 분야인가?
2. 내게 따뜻한 심상을 주는 분야인가?
생각은 많은데 경험도 배짱도 없는 10대의 내게 인문학은 삶의 용기였다. 답답한 매일, 카뮈와 니체를 읽으면 하루를 견뎌낼 힘이 생겼다.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며 의미를 창조해 가는 인간이 돼야 했다. 막연하지만, 삶의 질을 개선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인문학 베이스로 경영을 배우는 학과를 선택해 내가 해결할 문제를 끊임없이 찾았다. 문제를 찾아 해결하다 보니 자연스레 PO라는 직무를 선택하게 됐다. 여전히 더 큰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3. 왜 블록체인?
블록체인은 탈중앙화(Decentralization)의 철학이 담긴 기술이다. 고대부터 중앙화(Centralizaiotn) 여부는 집단의 흥망성쇠, 성장 속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중앙으로 힘이 모이면 집단에서 벌어지는(혹은 벌어질 수 있는) 현상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화폐 발행과 유통의 중앙화는 금융위기를 낳았고, 기업의 정보 중앙화는 프라이버시 문제와 과도한 수수료를 낳았다. 기업은 개인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지만, 반대의 경우는 거의 성립하지 않는다.
기술의 발전은 멈추지 않을 것이고, 지금보다 더 많은 것들이 연결되는 미래가 온다. 연결성이 강해질수록 기술 보유자는 '앎'의 영역이 넓어지고 자연스레 중앙화가 강해진다. 그렇게 권력은 계속해서 생성되지만 분배되기는 어려워진다.
블록체인은 이에 대한 도전이다. 연결 통로에 투명 망토를 입혀서 '앎의 주체'를 늘리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매력을 느낀다. 물론 블록체인이 인간 삶에 스며들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규제의 변화, 소프트웨어/하드웨어 기술 발전, 네트워크의 성숙 등 여러 과제가 남아있다. 오히려 좋다. 문제가 어려울수록 재밌는 법이다. 나는 블록체인이 사회에 기여하는 과정에 참여하며 의미를 창조하는 인간이 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