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여행, 기대를 내려놓다

영어, 루틴, 그리고 아이의 속도를 배우다

by 포비포노

코로나 이후 세 번째로 아이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이번 여행은 사이판이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도 예전과는 다른 마음이 들었다. 짐을 싸는 순간부터 ‘이번에는 또 어떤 모습들을 보게 될까’ 하는 기대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혼자 떠나거나 남편과 둘이 떠났던 여행과는 확실히 결이 달랐다. 어디를 갈지, 무엇을 먹을지보다 아이들의 컨디션과 동선이 먼저였다. 계획 하나에도 ‘아이들이 괜찮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이번 여행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아이들의 성장과 나의 생각이 함께 변해가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몇 가지 분명한 변화를 느끼게 되었다.




아이들과 여행을 다니면서 가장 먼저 느낀 건, 내가 가지고 있던 기대였다. 엄마표 영어를 하며 영어책을 읽어주고, 영상도 보여주면서 해외에 가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외국인과 대화할 거라 생각했었다. 책이나 SNS에서 보던 모습처럼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아이들은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그 모습에 처음에는 솔직히 실망을 했다.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왜 말을 못 할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기대를 내려놓으니 훨씬 편해졌다. 우리도 영어를 공부했다고 해서 외국인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말이 나오지 않듯, 아이들도 마찬가지라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아이들에게는 낯선 환경과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더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가 필요할 때, 그동안 쌓아온 영어를 꺼내 쓸 수 있기를 바라며 기다리기로 했다.


두 번째로 느낀 건 여행 속 루틴의 변화였다. 나는 평소에도 꾸준함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여행을 가도 문제집이나 일기 등을 꼭 챙겨갔었다.


하지만 여행을 몇 번 다녀오면서 점점 간소화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국어, 영어, 수학까지 챙겼다면 이번에는 수학만 가져갔다. 아이들이 스스로 어린이 과학 잡지를 챙겨 읽었기 때문에 국어는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학원을 보내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꾸준함’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조식 전에 공부를 했고, 조금 늦게 일어나면 조식 후에 간단히 하고 일정을 시작했다.


이번 여행에서 달라진 점은 영어 노출 방식이었다. 호텔 TV를 틀어도 아이들이 원하는 콘텐츠가 없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신 이북으로 영어 콘텐츠를 보게 했다. 여행 중에도 자연스럽게 영어에 노출될 수 있도록 루틴을 바꿨다.


세 번째는 수영이었다. 주변에서 가장 만족도가 높은 사교육이 수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이번 여행에서 그 이유를 직접 느꼈다.


첫째는 작년부터 수영을 배워 모든 과정을 마친 상태였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바다와 수영장에서 마음껏 놀게 되었는데, 튜브나 구명조끼 없이도 자유롭게 물속을 누비며 노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반면 수영을 배우지 않은 둘째는 조금 달랐다. 둘째 날에는 갑자기 수영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형과 비교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았다. 물에 들어가면 결국 즐겁게 놀았지만, 아이 스스로 느끼는 차이는 분명히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둘째도 3학년이 되면 꼭 수영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니 여행의 의미도 많이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예전에는 그저 물놀이를 하고 노는 것 자체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스스로 이전 여행과 비교를 하고 우리나라와 다른 점을 찾기도 했다. 외국어에도 관심을 보이고, 역사적인 부분에도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은 분명 쉽지 않았다. 챙겨야 할 것도 많고, 준비해야 할 것도 많았고, 때로는 어른의 시간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즐거워하고, 그 안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기쁨은 몇 배로 커졌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을 계속 이어가기로 했다. 기대를 내려놓고, 대신 아이들의 속도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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