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유든 모유든 사랑이 최고쥬
"으악!! 제발 그만!!!"
이것은 산고 따위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고문방이 따로 없는 수유실속 내 비명소리다.
나는 내 퉁퉁 불어 뭉친 젖가슴을 붙들고 풀어주시는 산후조리원 원장님의 손모가지.. 아니 손목을 꺾을뻔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이만 낳으면 힘든 건 다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편하게 누워만 있을 줄 알고 들어간 산후조리원은 고문실+정신 병동 같았다. 출산모에게 좋다는 최고급 침대 따위는 2시간마다 울려대는 공포의 수유 콜 때문에 제대로 누워본 적도 없었고 진수성찬으로 차려지는 조리원 밥도 피곤함에 퉁퉁 불은 내 모습 때문에 제대로 먹히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산후조리원에서 친구도 만든다던데 난 인생 최악의 모습으로 나와 같은 모습의 누군가와 굳이 인연을 맺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산후조리원 속에서도 계급은 존재했다. 조리원에서 가장 젖이 잘 나오는 산모는 왕으로 받아들여진다. 그에 반해 내 젖은 고통을 참으며 유축도 해보고 통곡의 소리를 내며 마사지도 받아보았으나 젖은 고작 몇 방울만 맺혀버릴 뿐이었다.
새벽 4시 또다시 울리는 수유 콜에 좀비처럼 기어나간 나는 아이를 안아 들고 웃통을 훌러덩 깐 채 애를 내려다봤다. 꼬몰꼬몰 빨간 피부를 가진 작은 내 아이는 이내 젖을 빨다 울며 잠이 들어버렸고 곧이어 절망과 원망의 눈물이 내 젖가슴 위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나는 벌써부터 육아에 실패한 것일까. 모성이 풍부하면 아이 울음소리만 들어도 젖은 흘러나온다던데 내 모성은 도대체 언제 나타나는 걸까. 나는 모성이란 감정이 있기는 한 걸까. 부족한 내 모유로 인해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나지 못하면 어떡하지. 모유 수유로 시달리느라 내가 아이의 눈망울을 제대로 본적이나 있었을까. 이게 과연 정상인 걸까.
조용했던 새벽 수유실은 내 흐느낌으로 가득 채워졌다.
나는 그날 밤 잠든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편의점 가서 맥주 좀 사 와봐.”
남편 눈은 휘둥그레졌지만 내 비장하고 살기 가득한 눈빛을 보더니 분위기 파악이 좀 됐던지 당장 일어나 캔맥주 잔뜩 사 왔다.
"벌컥벌컥벌컥"
한 캔이 한 모금이었다. 멋들어지게 원 샷 했다.
"나 모유 수유 관둘 거야. 모유 안 먹여도 충분히 우리 사랑이면 건강하게 키울 수 있고, 세상에서 제일 좋은 분유를 찾아 먹여서라도 내가 모유 먹은 아가들 못지않게 건강하게 키워낼 거야."
난 남편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뒤로한 채 모유로 인한 모든 걱정 따윈 다 집어치우고 최고급 침대에서 처음으로 코를 골며 깊게 잠이 들었다.
“모유 수유 안 하겠습니다. 분유 주세요.”
다음날 나는 신생아실 간호사분께 메모지 하나를 내밀었다. 내 딸의 머리맡에는 내가 자랑스럽게 써준 노랑 포스트잇이 떡하니 붙게 되었고 출산 7일 만에 내 모유 수유는 비장하게 마무리되었다. 남은 조리원 기간 동안 나는 최고급 침대를 매일 밤 온몸으로 느꼈으며 모유 마사지 대신 부기 빼는 마사지를 불었던 살들을 하루가 다르게 쏙쏙 빼내갔다. 젖이 가장 많이 나오셨던 왕산모님은 모유 마사지와 밤샘 수유로 지친 얼굴로 내심 부러움 가득한 눈빛을 보내셨고 나는 조리원을 씹고 느끼고 즐겼다.
조리원 퇴소 후 난 아이 입맛에 가장 잘 맞는 분유를 찾아 아주 딱 좋은 온도로 맛있게 흔들어서 아이의 눈망울을 바라보며 정성스레 먹였다.
엄마들에게 원하는 건 뭐가 그리 많은 것일까.
제왕절개보단 자연분만을 해야 하고 분유보단 모유를 먹여야 아이가 건강하게 클 수 있다는 이런 얘기들은 도대체 언제부터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말일까. 이 많은 얘기들 중 엄마의 입장이나 엄마의 상황은 왜 쏙 빠져있는 것일까. 모유 수유는 엄마들의 개인적인 상황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이어야 한다. 모유가 좋다는 주변 말들로 인해 스트레스까지 쥐어짜 낸 내 젖보단 아이 입맛에 맞는 분유를 찾아 내 아이의 눈망울과 표정을 들여다보며 먹이는 분유 수유가 아이에게 훨씬 더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조리원에서 젖 말리고 맥주 까마신 산모는 흔치 않겠지만 내 아이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고 나를 위한 최고의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