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을 조여오던 사원증을 벗어던지다
내 첫회사는 대기업이었다.
마침 학교 선배가 근무하던 회사 부서에서 디자이너를 뽑는다는 모집공고가 뜨게 되었고 학과교수님께서 감사하게도 나에게 추천서를 써주면서 서류통과가 수월히 진행되었다. 날고 긴다는 사람들이 모인 면접대기실에서 난 여기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지 눈치를 보다 긴장 가득한 대기자들의 표정과 달리 마치 합격이 보장된 사람처럼 보이게끔 여유를 부려보자 마음먹었다. 아마 그렇게 자기 암시를 걸었던 듯싶고 전략이 통했던지 면접에 합격 후 3차 최종실기까지 합격하게 되었다.
첫 출근이 어찌나 설레고 감격스럽던지. 집 앞으로 오는 통근버스가 마치 나만을 위한 리무진 같았고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사원증을 목에 걸자 마치 인생의 결승선으로 들어가는 금메달리스트가 된 것 같았다.
난 알지 못했다. 그날은 결승선이 아닌 무거운 사원증을 목에 매달고 서로 밟고 올라가야 하는 경쟁사회에 선 출발선이었다는 걸.
홍보팀 디자이너로 8년을 재직했다. 주어진 디자인 업무를 잘하는 것보다 견적을 짜고 업체를 선정하고 보고할 서류를 만드는 일이 더 중요했다. 매년 인사고과가 시행되는 연초는 살얼음을 걷는 기분이었다. 누가 S등급(최고점)을 받았는지 누가 C등급(최하점)을 받았는지는 비밀이라곤 없는 회사내부에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그 결과로 생기는 인사발령과 자리이동은 우리 모두를 천국과 지옥으로 이동시켜 주었다. 지옥의 자리로 발령이 난 한 대리님은 다음날 아침 술에 취한 채 본인 모니터를 부수고 회사를 나가기도 했다.(결국 돌아와서 징계를 받았다) 드라마에서 봐왔던 빛나는 동료애도, 상사와의 허물없는 술자리도, 의기투합으로 한 몸으로 뭉친 팀도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았다. 약해 보이면 잡아먹히는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강해져야 했고 남을 밟아야 했고 평가받아야 했다.
오랜 시간 그곳을 벗어날 수 없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주변의 시선. 어딜 가도 명함 한 장이면 인정받는 사회적 분위기, 지인들의 부러움, 부모님께 성공한 딸이란 이 타이틀들은 힘들다는 이유로 내려놓기엔 너무나도 달콤했다. 달콤한 맛에 오래 취해보고 싶어서 붙잡고 물고 빨아보았지만 이 달콤함이 씁쓸함으로 바뀌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점점 내가 한일들에 회의감과 죄책감을 갖기 시작했다. 난 디자이너였지만 어떤 프로젝트건 내가 한 디자인이라고 내놓기엔 나는 업체를 뽑고 견적을 내주고 회의를 하고 보고를 했을 뿐 사실 그건 내가 그린 디자인이 아니었다. 서류를 만들고 팀장님과 상무님들의 싸인을 거쳐 뽑은 광고대행사가 그려낸 결과물이 진정 내 실적인 건지 점차 스스로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디자이너인가 기획자인가 보고자인가. 내가 무엇을 할 때 성취감을 느끼고 보람을 느끼는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좋은 고과점수를 받아도 그 생각은 끊질기게 나를 따라다녔고 이렇게 회사의 부속품처럼 일을 해서 대리가 되고 과장이 된다면 그다음은 무엇인지 답답해졌다.
8년의 시간 동안 팀장님으로 모신 분들은 8명이었다. 그중 2분은 암에 걸리셨고 4분은 인사발령으로 또 다른 지옥에서 근무 중이다. 내 미래는 무엇인가. 여자로서는 팀장도 없는 이 회사에서 내 쓸모는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그동안 내가 일을 하면서 과연 행복했는지 내가 진정 바라는 삶이 이 회사에 있는지 아무리 고민해 봐도 답은 하나였다. 난 지금껏 회사를 다니면서 일로서 행복을 느낀 적이 없었고 항상 외줄 타기를 하는 기분이었으며 지금 자리는 내 자리가 아니라는 결론이었다.
주변인의 반대,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국 난 20대를 바친 회사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었고 아무 날도 아닌 어느 날 난 사직서를 냈다.
남들이 어떻게보고 어떤 말을 해도 정말 속이 후련했다.
한동안 방황도 하고 여행도 하고 실컷 놀고먹고 마시고 흥에 취해 살았다.
그리고 1년 후 내가 바라던 광고대행사 디자인팀장으로 입사를 했다.
광고대행사 면접 때 대표님이 물어보셨다.
“왜 대기업을 관두고 힘든 광고대행사를 선택했나요?”
“아, 빡세게 일해보고 싶어서요.”
난 그렇게 광고대행사에서 내가 직접 만들어내는 디자인 결과물에 행복과 성취감을 느끼며 진정 빡세게 8년간 일을 했고 그곳에서 일생의 반려자를 만나 결혼도 했다.
20대 때 대기업에서 보냈던 8년과 30대 때 광고대행사에서 보냈던 8년의 회사생활은 무엇이 더 좋다 나쁘다로 비교할 순 없다. 각자의 회사는 각자의 이유로 존재하고 내가 어떤 자리에서 행복감과 성취감을 느끼는지가 중요하다. 나의 그릇이 대기업을 담기엔 너무 작았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반대로 내 그릇이 더 컸기에 대기업만으로는 성이 안 찼을 수도 있다.
가끔 아직 그곳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소식이 들려온다. 오래 버텨온 그들이 대견하고 안쓰럽다.
내 경험과 선택으로 만들어져 가는 나의 삶이 하루하루 소중하고 궁금해진다. 앞으로의 8년, 아니 80년은 내 사랑하는 가족과 글쓰기로 가득 채워나가고 싶다.
내 삶에서 가장 보람된 현재를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