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건이다
나는 비건이다.
해산물은 먹는 비건을 페스코베지테리언이라고 지칭하던데, 각종 고기류와 계란 우유 등 동물과 관련된 음식을 먹지 않고 해산물과 야채류만 먹은 지 2년 차가 되고 있다.
난 원래 철저한 육식주의자였다. 삼겹살집에 가도 야채류에 손을 대면 고기님께 배신이라며 오로지 고기와 소금만 찍어 먹었다. 곱창은 목도리처럼 두르고 뜯어먹고 싶을 만큼 마니아였으며 해장용으로 먹는 소고기 해장국은 내 숙취를 달래주는 나의 가장 친한 절친이었다.
그렇게 고기님을 애정했던 내가 바뀐 건 어느 날 읽은 책 한 권 때문이었다.
김한민 작가의 ‘아무튼 비건’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난 후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외면하며 열고 싶지 않았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것만 같았다.
‘살처분을 맡은 보건 담당 직원이었다. 그는 새벽에 이상한 소리를 듣고 깬다. 나가보니, 낮에 산 채로 묻힌 수천 마리 돼지 중 두세 마리가 밤새 사력을 다해 땅을 파서 거의 지면에 도달하려던 차였다. 이 공무원은 삽을 들어 돼지들의 두개골을 후려쳐 다시 땅에 묻어버린다.’
오 마이갓. 머릿속에서 이 장면이 계속 재생되었다. 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땅에서 기어 나올 때 본 빛 한줄기가 그 돼지들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그렇게 나온 돼지들을 처참하게 죽일 수 있는 권리를 어느 누가 인간에게 준 것인지. 마음이 너무 아프고 구역질이 올라왔다.
아무도 모르게 비건을 시작했다.
바로 주변인들에게 알리기엔 괜히 남들 눈이 신경 쓰였다. 그동안 먹어온 육식의 삶이 민망하기도 했고 무턱대고 주변에 알리고 시작했다가 중간에 흐지부지될까 봐 두려웠다.
초반엔 쉽지 않았다. 뭘 먹고 뭘 먹지 않아야 하는지 헛갈렸다. 해산물 짬뽕인 줄 알고 먹은 짬뽕의 육수가 닭 육수였다는 걸 나중에 알기도 했고, 외식을 할 때면 코앞에서 구워지는 삼겹살을 애써 외면한 채 버섯만 쌈 싸 먹으면서 내가 지금 뭘 위해서 이러고 있나 싶기도 했다. 정신을 놓고 한 젓가락 향하려 할 때마다 내 결심을 붙잡아준 건 살처분당한 돼지들의 눈빛이었다. 글로써 읽은 그 페이지는 마치 내 눈으로 직접 본 것 같은 한 장면으로 나에게 각인 돼버렸다. 죽어가는 돼지들의 슬픈 눈빛과 살기 위한 몸부림이 자꾸 떠올랐고 결국 그렇게 육식을 내 삶에서 지워나갔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확신이 생긴 나는 남편과 아이에게 공표했다. 그들은 평생을 육식주의자로 살아온 나를 잘 알기에 극구 만류했다. 몰래 혼자 고기 한 근 구워 먹다가 개망신당하고 싶냐며 채식주의자인 이효리도 집에 삼겹살 구워 먹는 방이 따로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는 얼토당토않은 모함을 하며 나를 말려댔다.
난 굳은 결심을 한 채 오이를 씹으며 당근에게 맹세했다. 너희들만 씹어 먹고 고기는 먹지 않으리라! 내 기필코 이효리 허리가 되리.. 가 아니고 당당한 채식주의자가 되리라! 하며 결심을 굳혀나갔다.
어느새 채식 2년 차, 즐겁게 잘하고 있다.
몸이 가벼워졌고(허리는 그대로다. 왜지? 왜?) 맥주가 더 잘 들어가고(아, 이것 때문이군) 생리 전 증후군도 줄었고 거북하도록 배가 부른 느낌도 들지 않아 아침이 되면 항상 공복감이 들고 개운하다.
비건이라는 얘기를 하면 주변에서 간혹 식물도 생명이 있다며 야채와 해산물은 왜 먹냐고 건강에도 좋지 않다고 만류하시는 분들이 있다.
개개인의 음식 취향은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음식이 좋고 나쁘다가 아닌 본인이 먹었을 때 행복감을 느끼고 좋은 음식이라면 그게 나에게 맞는 음식이다. 나는 비건 캠페인을 하는 게 아닌 내 선택에 의해서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일 뿐이다.
얼마 전엔 건강검진을 했다. 비건이 된 후 처음 하는 검사라 몸에 뭔가 부족하진 않을지 사실 걱정이 좀 되었다. 검사 결과 콜레스테롤도 없고 암을 발생시킨다는 염증수치도 보통 사람보다 현저히 낮게 나왔다. 밤마다 맥주를 목 열고 들이켜지만 지방간도 없게 나왔고 피부도 맑아지고 야채 위주의 음식들을 먹다 보니 몸에서 나는 체취도 깨끗해진 기분이다.
나는 비건을 앞으로도 지속해 나갈 것이다.
각종 야채와 해산물만으로도 내 몸에서 필요한 영양분은 충분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기를 먹지 않는 내가 좋고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비건에 관심 있는 분이 있다면 추천을 해주고 싶을 정도로 난 비건이 좋다.
비건은 김한민 작가님의 책 속 말씀처럼 연결이다. 한 개인의 소소한 선택으로 한 마리의 동물이라도 더 살릴 수 있게 되고 그 선택은 크게 사회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 사회는 정치, 경제 변화로 이어지며 결국 기후, 환경까지도 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내가 책 한 권을 만나 연결됐듯이 내 연결 끈이 누군가에게 닿아 또 다른 시작의 끈이 될 수 있길 바라본다.
“자, 저와도 연결될 준비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