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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bi미경 Oct 14. 2023

정신과라는 선입견을 때려치우다

저는 신경정신과에 다니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였을까. 꽤 오래전부터 난 지독한 마음의 감기를 심하게 앓고 있다. 전업맘이 된 후 멍하니 아이만 보고 앉아서 눈물짓던 그때부터였을까. 아니면 나완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 까지도 나를 끼워 넣으려다 상처받던 그때부터였을까. 사람들을 만나고 마음을 나누는 관계에 아무 거부감 없이 살아왔던 난 언제부턴가 사람이 두렵고 싫어지고 내 안에 숨고만 싶어졌다. 어떤 한순간이나 한 가지 이유 때문은 아닐 텐데 가벼운 감기라고 치기엔 너무 지독했던 마음의 병은 점점 더 깊고 어두워져 갔다.


나를 잘 아는 친구나 남편은 뭔가 느끼고 있었겠지만 아마 그 어떤 말도 건네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은 우울증인 것 같다는 말을 어느 누가 아무렇지 않게 건넬 수 있을까. 남편은 종잡을 수 없는 기분 변화로 별일 아닌 일에 혼자 울고 웃는 내게서 점차 지쳐갔고 아이 또한 어떤 날은 한없이 다정했다가 어떤 날은 차갑게 돌변해 버리는 엄마의 무서운 눈빛을 조용히 견뎌야 했다. 내 마음의 감기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나를 멀리하고 두려워하게 만들며 나를 잠식해 버리는 지독한 바이러스였다.


제주로 내려온 후에도 난 비슷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목표 없는 자격증 따기에 매달리고 편집증적으로 집안일들을 하면서 뭔가에 항상 바쁜 사람처럼 보이려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평범한 날 학교 갈 준비를 하는 아이가 아침 투정을 부리자 순간적으로 화가 났던 나는 물 한 모금도 주지 않고 학교로 떠밀 듯 보내 버렸다. 아이를 등교시킨 후 집으로 돌아오면서야 정신이 돌아온 나는 신경정신과로 조용히 차를 틀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내 마음의 감기를 정면으로 바라봐야 할 때가 이미 지나고 있다는 걸 난 알고 있었다. 신경정신과는 왠지 두렵고 멀게만 느껴졌다. 어딘가 눈빛이나 행동이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있을 것 같았고 그 안에 내가 속해 있어야 한다는 게 난 두려웠고 내키지 않았었다.

그러나 막상 병원에 들어가자 조용히 흐르는 음악과 차분한 분위기가 나를 맞아주었고 어색한 표정으로 들어오는 나를 부드러운 미소를 띤 매니저 선생님께서 접수하는 걸 도와주셨다. 주변을 둘러보자 어느 병원과 똑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각자의 할 일들을 하며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기도 전부터 구시대적인 상상을 하며 선입견을 갖고 있던 내가 오히려 부끄러워졌다.


순서가 되고 진료실에 들어가 여러 얘기들을 덤덤히 털어놓았다. 언젠가부터 조절할 수 없게 된 감정 변화,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 어느 날 내 곁에서 아이와 가족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이유 없는 불안감 등 두서없이 내뱉는 내 말들을 선생님께선 조용히 들어주셨고 나는 말을 하면서도 그 말을 내가 듣는 기분이었다.

난 우울증 보다 불안증이 더 큰 것으로 나왔다. 40이 거의 다 돼서야 낳은 아이로 인해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시작된 우리 부부의 불안한 미래와, 잦은 병치례로 몸이 약한 아이에 대한 불안감과 나 자신을 찾지 못하고 동동거리는 내 심리는 그 모든 게 합해져서 나를 지독한 불안증세로 덮어가고 있었다. 불안증이 커지면 공황장애로 이어질 수 있으니 약을 먹으며 천천히 상담과 약물치료를 해나가자고 하셨다.


작은 알약이 두 알씩 든 봉투를 들고 집으로 돌아와 꿀꺽 삼키고 나니 왠지 눈물이 났다. 그리고 긴 시간 혼자 울었다. 나는 많이 불안했고 많이 외로웠고 많이 슬펐나 보다.


약을 먹은 지 어느새 세 달이 넘어간다. 약 효과가 좋은 것인지, 어쩌면 심리적인 이유 때문인지 나는 남편과 아이가 느낄 정도로 많은 부분 안정이 되어가고 있다. 경제적 불안감으로 인해 무언가에 쫓기듯 마구잡이로 따려 했던 자격증공부도 천천히 내려놓기 시작했고, 남편에게도 더 이상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을 토로하지 않게 되었다. 아이가 갑자기 아프거나 변덕을 부리는 날에도 감정적인 대응이 아닌 이성적으로 아이와 대화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가족, 친한 친구, 그리고 내 일상을 털어놓던 블로그에도 글을 올리며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힘들었다고 그래서 약을 먹기 시작했고 많은 부분 괜찮아지고 있다며 숨기고 감춰야 할 것 같은 우울증을 나는 그냥 드러내 놓고 치료해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드러내기가 많이 두려웠다. 고작 그런 일들로 우울증을 겪냐고 핀잔을 받을까 두려웠고, 잘 사는척하더니 너도 별수 없구나란 시선으로 쳐다볼까 두려웠다. 어쩌면 내 행복이 모두 거짓으로 느껴질까 봐 그게 가장 두려웠던 것 같다. 그러나 내가 털어놓자 주변 사람들은 나를 이상하게 보기는커녕 잘했다고 본인도 한 번쯤 병원을 가고 싶은데 용기가 나지 않았었다며 같이 응원해 주고 격려해 주었다. 내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나를 이상한 시선으로 보지 않았고 다정했고 진심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은 어느 부분이 든 아픈 곳이 있다. 겉보기에 아무 걱정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그 속의 아픔까지는 알 수가 없다. 내 아픔이 너무 깊어져 사랑하는 이 에게까지 상처를 주게 된다면 그때는 멈춰 서서 나를 돌봐야 할 때다.

용기 내어 털어놨으니 앞으론 격려받고 힘낼 일만 남았다. 지금도 여전히 신경정신과를 주기적으로 가고 있다. 병원의 도움으로 나는 어둡고 깊기만 했던 우울증의 늪 속에서 오늘도 한발 더 올라온다. 언젠간 늪에서 완전히 벗어나 맑고 투명한 하늘만을 바라볼 날을 꿈꿔본다.



한바탕 비가 지나고 나면 무지개가 떠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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