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드랑이 걱정하다 죽어나갈 뻔
난 오늘 하루 멋지게 살다죽자주의였다. 빡세게 일하고 빡세게 뒤풀이하고 그렇게 하루 알차게 사는 게 행복했다. 그렇게 불꽃같은 하루만 생각하며 살던 나에게 작고 연약한 아이가 생긴 후부터 세상 모든 게 다 걱정거리였다. 잔병치레와 고열로 매년 입원하는 아이를 키우면서 내 머릿속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건 건강 걱정이었다.
아이를 평생 지켜줘야 한다는 본능적인 생각 때문인지 아이뿐 아니라 나와 남편에게까지 내 걱정의 범위는 넓어졌다. 건강검진에 열을 올리고 어디가 안 좋다고 하면 그 질환에 대해 검색해 보면서 걱정을 사서 하곤 했다. 자궁경부암 검사를 하고 온 날에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자궁경부암 환자가 되어있었고 남편이 위내시경을 할 때는 대기실에서 두 손을 꼭 부여잡고 기도를 하며 제발 큰 병이 아니게 해 주세요라며 청승을 떨곤 했다. 매년 아이가 잔병치레로 입원할 때는 걱정으로 거의 시체가 된 채 아이보다 더 혈색이 안 좋은 보호자로 같이 링거를 맞곤 한다.
이런 걱정투성이 나에게 얼마 전 엄청난 일이 생겼다.
집에서 샤워를 하는데 왼쪽 겨드랑이에 뭔가가 만져지는 것이다. 으응? 이게 뭐지? 제법 커다란 원형 형태의 그 종기는 별 통증도 없이 내 겨드랑이에 몰래 자리 잡은 채 커가고 있었다. 가슴이 덜컥했다. 아- 이건 말로만 듣던 유방암 초기 증상이구나! 당장 네이버를 켜서 검색을 해보니 검색하면 해볼수록 이건 백 프로 유방암 초기 증상이었다. 남편에게 알렸다.
“오빠, 나 겨드랑이에 뭔가가 만져져..”
“그래? 음.. 너무 걱정 말고 병원 한번 가보자”
원래 걱정이 많은 나를 잘 알고 있던 남편은 큰 걱정 없이 받아들였지만 난 심장이 쿵쾅거리고 정신이 아득해진 상태였다. 유명한 유방외과를 예약해 보니 가장 빠른 날짜가 일주일 후였고 난 그 일주일 동안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오빠.. 유방암 1 기면 치료하면 살 수 있는 거지..”
“오빠.. 치료가 잘 안 되면 오빠는 나 없이 살 수 있어..?”
“오빠.. 재혼은 안돼.. 시율이만 키우며 살아..”
남편은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기더니 실제 왼쪽 겨드랑이에 난 커다란 종기를 보더니 그 역시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말 하지 말고 혹시 안 좋은 결과가 나와도 치료하면 돼. 벌써부터 너무 걱정하지 말자..”
기다리는 일주일의 시간 동안 난 매일 침울한 표정으로 네이버 검색에만 매달렸다. 유방암 초기 증상을 확인하면 할수록 모든 게 나에게 해당되는 것 같았다. 정신을 놓고 있는 나 대신 남편이 집 안 청소며 아이를 챙기는 것까지 모조리 맡아서 해줬지만 그 역시 많이 심란해 보였다.
검사 당일 남편은 바쁜 시간을 쪼개 같이 병원을 가주었고 난 드디어 순서가 되어 진료실로 들어가서 초음파를 시작했다. 초음파 화면엔 내 커다란 종기가 하얀색 덩어리로 보였고 그걸 본 순간 난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의사 선생님은 심각한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종기의 센티를 재며 진료기록에 뭔가를 써 내려갔다.
선생님은 나에게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커다란 뽀드락지군요. 무려 3센티가 넘어요.”
“네????”
“몸에 돌고 도는 피지가 겨드랑이에 우연히 모여 커다란 뽀드락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네에에?? 유.. 유방암이 아니고요?"
“풋(이렇게 웃으셨다) 크흠. 유방암 아니시고요. 자 이 뽀드락지는 지금 바로 째 드리겠습니다."
"아악!!!"
겨드랑이에 내 종기.. 아니 뽀드락지는 그렇게 의사 선생님 손에 의해 절개되어 빠져나갔고 난 겨드랑이에 커다란 붕대를 붙인 채 어정쩡한 표정으로 대기실로 걸어 나갔다.
"뭐라셔? 겨드랑이는 왜 들고 있어?"
남편은 나를 보더니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묻고 또 물었다.
"뽀..뽀드락지래…."
"뭐? 뭔락지???"
"뽀드락지….."
기가 막혀하는 남편은 회사에서 빗발치는 전화를 받으며 뒤도 안 돌아보고 병원 문을 나섰고 나 역시 쫄래쫄래 쫓아 나오며 변명의 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정말 유방암 초기 증상이랑 똑같았다니까. 검색해 보니까 정말 백 프로였어…"
난 유방암이 아닌 뽀드락지4기였던 것이다. 남편은 제발 의학지식은 미리 검색 좀 해보지 말라며 집에 가서 정신 차리고 밥부터 먹으라고 했고 그는 점심도 먹지 못하고 서둘러 회사로 돌아갔다. 개 쪽팔렸다. 병원에서 유방암이 아니냐고 묻는 나에게 의사 선생님께서 이렇게 큰 뽀드락지보신적 있냐며 보여줄 때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피지 조절이 안될 때 가끔 이럴 때가 있다고 하셨는데 그제야 겨드랑이 피지를 검색해 보니 나와 같은 사례들이 몇 가지 올라온 걸 찾을 수 있었다. 유방암에 꽂혀있을 땐 그런 검색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었다.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을 앞당겨서 고민하고 걱정하는 것은 그만두자. 햇빛 속에 거하라.-벤저민 프랭클린-
심장이 덜컥했던 뽀드락지 사건 이후 건강의 중요성을 느낌과 동시에 내가 얼마나 필요 이상의 많은 걱정을 하고 사는지 깨달았다. 그간 걱정하느라 난장판이 된 집을 정리하고 음식을 새로 해놓고 보니 마치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이젠 미리 걱정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건강을 걱정할 시간에 남편과 같이 산책과 운동을 하고 매 끼니 우리 가족들이 먹는 음식에 더 신경 쓴다. 사소한 일상 속에서 더 많이 웃기 위해 노력하고 심각해지려 하지 않는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방법은 불안에 사로잡혀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해서 걱정하는 게 아닌, 오늘 현재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건강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 하루도 안전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하고 뽀드락지가 사라진 내 깨끗한 겨드랑이에도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