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사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곳이다
남편과 나는 쭉 서울에서 살아왔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 부부의 목표는 다른 보통 부부들처럼 저 높은 곳을 향해 달리는 것이었다. 저 결승선의 끝은 아무도 본 적은 없지만 그곳에 도착하기 위해선 적어도 내 이름으로 된 내 집과 그에 어울리는 멋들어진 차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쉬지 않고 일을 하며 돈을 모아 내 소유로 된 집을 마련했고 최장기 할부로 차도 마련했으며 차림새 또한 빠지지 않도록 갖춰 입었다. 아이 수준 역시 집과 어울리게 만들어야 했기에 남들 따라서 사교육도 시키며 좋은 유치원도 보냈다.
열심히 달려 처음 내 집을 마련하는 날 우린 결승선에 다 온 것이라 생각했다. 잠시잠깐 승리의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뭔가 부족했다. 다시금 눈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번 결승선은 왠지 결승지점이 아닌 새로운 출발선인 것 같았다. 더 좋은 학군과 더 좋은 생활권이 있는 더 완벽한 곳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린 또다시 달리기 시작했고 얼마 안 가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듯한 우리 집을 만들어 냈다.
만족스러웠다. 인테리어는 고급졌으며 나는 성공한 여자가 된 것 같았고 우리 가족은 완벽해 보였다. 더 넓은 곳으로 이사하느라 영혼의 바닥까지 당겨 받은 집대출금 따위는 이런 고급진 집에 살면서 내야 하는 응당한 대가라고 생각했고 남들도 다 이 정도의 대출금은 서울생활에 필수적인 조건으로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린 우아하고 완벽해 보였다. 그렇게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하고 끝맺을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결말이었을까. 결승선 안에 들어온 남편은 이미 너무 지쳤고 내 두 눈은 무섭게 충혈됐으며 아이는 숨 막히는 분위기 속 눈치를 보며 엄마아빠를 쳐다볼 뿐이었다.
우리는 집을 받들고 살았다. 모든 걸 바친 집이니 집이 제일 소중했고 집이 가장 우선이었다. 그런데 그 소중한 집을 받들고 사는 삶이 뭔가 자꾸 맞지 않았다. 점차 지낼수록 사교육이 넘쳐나는 교육관도 주변사람들의 끝없는 소비패턴도 점차 무거워지는 대출이자까지도 그 집과는 뭔가가 자꾸 어긋나듯 맞지 않았다.
그래도 이곳은 결승선 안이니 그 안에 나를 맞춰 넣어보려 애를 썼지만 애를 쓰면 쓸수록 나라는 사람은 작아지고 집은 더 거대해져 갔다. 난 내 소유로 된 집이 무거워졌고 그곳에 더 머물다간 내가 집의 소모품이 돼버릴 것만 같았다. 결국 집이란 건 내가 있어야 할 이유가 사라져 버리자 그냥 그곳에 남겨두고 나와야 하는 영원히 내 것일 수도 없고 나 자신 일수도 없는 그냥 집일 뿐이었다.
고민에 빠졌던 난 박혜윤 작가님의 ‘숲 속의 자본주의자’에서 그 해답을 찾게 되었다.
‘내가 식물이 아니고 동물인데, 왜 뿌리를 내리려고 했을까? 내가 사는 동안은 내가 사는 곳이 가장 좋은 곳이고 그게 아니라면 어디로든 갈 것이다. 그러려면 아름다운 집이 짐이 된다.’
나는 이 끝없는 경주를 그만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무엇을 위해 달려왔는지 그 답이 나오지 않았고 그건 포기하고 변해야 될 때가 됐다는 신호였다. 경주를 포기하기로 한 나 스스로를 인정해 주고 내게 맞는 집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나에게 집이란 나를 포함해 내 가족 모두의 심신이 편안하고, 좋은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고, 건강한 음식을 해 먹으며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내가 살고 싶은 진정한 ‘내 집’이었다.
그 시절 매해 우린 제주도로 여행을 왔었다. 제주도로 올 때마다 느껴지는 여유로운 자연풍경과 해맑아 보이는 아이들의 표정, 수더분하지만 정겨워 보이는 제주도민들의 미소까지 지쳐있던 우린 점점 더 제주도에 빠져들게 되었다. 많은 갈등과 고민이 있었지만 우린 결심을 했고 실행에 옮겼다.
2022년 12월 발가락이 꼬부러지도록 추운 어느 날 제주로 이주를 했다. 제주에 멋들어진 집을 산 것도 아니었고, 남편이 일자리를 구한 것도 아니었지만 우리 세 가족은 아무것도 손에 쥐지 않은 상태로 서울에서의 생활을 접고 진짜 내 집을 찾아 제주로 내려왔다.
세련되거나 넓진 않지만 보자마자 마음에 쏙 들어왔다. 우리 가족에게 딱 맞는 작은 주택에 연세로 어느새 1년째 거주 중이다. 아이가 신나게 뛰어놀 수 있는 계단과 마당이 있고 남편 역시 집 근처에 새로운 직장을 구해 퇴근 후 같이 아이와 매일 저녁시간을 함께하고 있다. 집 앞 작은 마당은 여름엔 물놀이를 할 수 있고 세 가족만을 위한 작은 바비큐파티도 할 수 있다. 매일 아침 틔여진 제주 하늘을 바라보며 자연에 감사하고 주말엔 집 근처 발길 닿는 데로 작은 오름들을 오른다. 사교육을 내려놓고 온 곳이라 아이는 많아진 시간만큼 자연과 함께 더 많이 웃게 되었고 남편과 나 역시 집을 이고 사는 게 아닌 집을 느끼고 활용하고 즐기며 지내고 있다.
내 필요에 의해 내가 선택하고 지금 내 마음이 편한 이곳이 가장 아름다운 ‘내 집’이다.
시간이 흘러 상황에 따라 우리의 삶의 질을 높여줄 또 다른 집이 우리를 부른다면 우리는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집은 소유가 아닌 쓸모에 의해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