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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bi미경 Oct 20. 2023

정력섹스를 때려치우다

부부관계 터놓고 얘기해요.


오늘저녁부터 남편에게서 신호가 느껴진다. 괜히 더 다정하고 괜히 더 스킨십도 자주 한다. 이 신호는 분명 오늘밤 뜨(거운) 밤을 보내자는 신호. 그의 다정한 제스처는 나에게 개부담을 안겨준다. 그는 오늘도 자고 싶고 나는 오늘도 자고 싶지 않다.


아이를 낳기 전 활발했던 우리 성생활은 육아 시작 후 나에겐 만사 귀찮은 일거리가 돼버렸다. 하루종일 아이와 집안일에 내 모든 걸 쏟고난 후 아이가 잠들고 나서야 겨우 찾아온 내 시간에 다른 누군가에게 또다시 내 몸을 내어줘야 한다는 게 나는 언젠가부터 싫고 부담스럽기만 했다. 징징거리는 그 때문에 어쩌다가 합궁을 한다 해도 내 머릿속은 자질구레한 딴생각들로만 가득 차 있느라 아무런 집중도 되지가 않았다.


남편에겐 남자로서의 무슨 자존심 때문인지 섹스란 성심성의껏 여러 자세로 몸을 굴려가며 오래 열정적으로 해야 정력이 좋은 남자일 것이란 착각이 있었다. 그의 착각을 깨부술 수 없던 난 그의 정력섹스에 만족하는 여자로 빙의된 연기를 하느라 목소리마저 안 나올 때도 있었고 이 정도의 연기력이면 19금 영화 여우주연상 감이라고 샤워를 벅벅 하며 혼자 중얼거린 적도 있었다.


연애시절엔 오히려 내가 남편을 잡아먹으려고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던 암사자였기에 나에게 맞춰진 남편을 탓할 수만도 없었다. 남편은 오히려 갑자기 변해버린 내게 말 못 할 서운함만 쌓여 가고 있을 것이다.

나에게 남편이란 굳이 정열적인 섹스를 나누지 않아도 마음깊이 스며든 깊은 사랑과 신뢰감이 있는 사람이다. 사랑이 식어서 섹스가 싫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 사람 자체를 모두 사랑하기에 세월이 흘러가며 젊은 시절 몸으로 나눠야만 느낄 수 있었던 사랑을 지금은 함께 잡고 있는 손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린 대화가 필요했지만 섹스에 대한 얘기는 언제 어떻게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괜히 무안하고 민망했다. 잘못 말을 꺼냈다간 그의 성적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낼 것 같았고 좋은 결론이 나올 것 같지가 않았다.

섹스 문제는 다른 부부들 사이에서도 말은 하지 못해도 다들 어느 정도는 품고 있는 고민거리라고 들은 적이 있다. 오죽하면 성격차이에서의 ‘성’이 부부간의 성관계를 지칭한다는 말이 있을까.


계속 품고 속앓이만 할 수는 없었다. 내가 이 정도로 고민이 된다면 그 역시 고민을 한다는 것이고 나의 일방적인 거절에 그는 마음이 많이 상한 상태였다.

시율이가 잠든 어느 밤 목 열고 술을 들이켠 나는 그에게 말을 꺼냈다.

“오빠, 우리 부부관계..”

“으응? 부부관계? 왜?”

“5분이면….”

“뭐라고? 뭐가 5분이면??”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5분이면 난 충분히 만족해! 이왕이면 여성상위자세로!”

“뭐.. 뭐라고??”

무작정 두서없이 외친 말들을 다시 정신을 차리고 풀어서 얘기하기 시작했다. 난 섹스를 하지 않아도 오빠를 충분히 사랑하고 있다고. 요즘에 자꾸 거절을 하는 이유는 아이를 키우다 보니 체력적이나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서 그렇다고. 오빠가 이해를 좀 해주면 좋겠고 섹스시간이 길어지면 내가 몸이 좀 힘들어지니 이왕이면 짧고 굵게 5분 정도면 좋겠다고.(여성상위자세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의 서운한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됐다. 그동안 내가 아무런 말도 없이 싫은 내색만 계속 해와서 그도 많이 서운했고 애정표현조차 내가 피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더 좋지 않았다며 털어놓았다. 단단해 보이던 그에게도 사랑의 표현이 필요하단걸 느낄 수 있었다. 굳이 섹스가 아니어도 다정한 스킨십으로도 많은 표현을 하기로 했고 짧은 섹스가 좋다는 얘기는 그는 오히려 반겨했다. 그는 아직도 내가 정렬적인 섹스를 원하는 줄 알았다며 만족시켜줘야 한다는 생각이 한결 덜어져서 편하다고 했다. 대화를 나눈 후 섹스가 더 이상 부담으로 느껴지지 않아 졌고 남편도 한결 편해 보였다.


함께한 지 15년이 넘어가고 있다. 나는 40대 중반, 남편은 어느새 50대로 들어섰다. 젊을 때처럼 열정적인 섹스는 하지 않지만 그 자리를 다정한 손길과 토닥임으로 채워나가고 있다. 앞으로도 많은 변화와 여러 일들이 우리 앞에 놓이겠지만 마주잡은 두 손 꼭 붙잡고 유연하게 헤쳐 나갈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싸우고 사랑하고 섹스한다.



뜨밤이 없어도 우리 둘은 여전히 다정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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