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그 연봉 개나 줘버려!
남편은 17년 차 광고대행사 임원이었다.
그때 내 기억 속 남편에게 호감을 가졌었던 장면은 남편의 뒷모습이었다. 깨끗이 다려진 면바지는 남편의 가는 다리를 잘 감싸고 있었고, 단정히 빗어 넘긴 머리는 뒤통수에 가지런히 모여 있었다. 전체적으로 얇고 깨끗한 그의 뒷모습이 아무 이유도 없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아이를 낳은 내가 회사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관두게 되었고 남편은 더 바빠졌다. 회사가 커져가는 만큼 연봉 또한 올라갔으나 남편은 안 그래도 뒷모습으로 각인돼 있었던 나에게 진짜 뒷모습만 보이는 나날이 많아졌다. 그는 말수가 줄었고 예민해졌고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 같은 건 기대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나대로 육아에 지쳐 그를 들여다볼 마음의 여유 따윈 전혀 있지 않았다. 오히려 나와 아이를 돌보지 않는다며 남편에게 화내고 울며 모든 스트레스를 풀었다. 남편은 휴가도 연차도 쓰지 못했다. 아래 직원들도 쓰지 못하는데 본인이 쓸 수는 없다 했고 난 그것조차 화가 났다.
몸이 약했던 아이가 또다시 고열로 응급실을 향했던 날 남편은 아주 오랜만에 하루 연차를 냈다.
병원에서 근심 걱정으로 바들바들 떠는 나보다 그의 바지 주머니 속 핸드폰 진동이 더 징하게 바들바들 울려 댔다. 남편은 전화를 받으러 밖으로 나갔고 통화가 길어지는 그에게 서운했던 나는 남편을 찾으러 밖으로 나갔다. 뭐 하냐며 뒤통수를 후려치려던 찰나였다. 남편은 윗사람에게 욕을 듣고 있는지 계속해서 사과와 변명을 하고 있었다. 죄송하다고, 아이가 갑자기 아파서 어쩔 수 없이 연차를 냈다고 그는 끝없이 변명하고 사과하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분노를 가라앉히고 쳐다본 그의 뒷모습은 어느새 많은 부분 바뀌어 있었다. 잘 다렸던 면바지는 낡고 구깃 했고, 가지런히 모여 있던 뒤통수에 머리칼들은 여기저기 흩어진 채 비어 가는 정수리를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전화기를 뺏아서 상대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아기가 아파서 연차 쓰고 병원 온 게 그렇게 잘못이요!!! 17년간 연차 한번 못쓰고 밤낮으로 개고생 했는데 이렇게 인정머리 없고 소름 끼치는 회사 내가 때려치우라고 하고 말겠어!!’
그는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죄인이었다. 외롭고 지쳐 보였고 그는 아무 선택권이 없었다. 그냥 참고 또 참으며 하루하루를 버틸 뿐이었다. 우린 어쩌면 17년간 일해온 이 회사와의 인연이 거의 다 끊어져 간다는 걸 서로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남편의 나이, 경제적인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에 외면하고 매달렸다.
난 많은 생각과 고민을 했다. 이 회사를 그만두면 남편은 실패자가 되는 것인지, 지금의 연봉을 받을 수 없게 된다면 우리 가족이 정녕 생활을 지속할 수 없게 되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명쾌한 답은 없었지만 난 더 이상 힘들어하는 그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난 결심을 굳혔고 얼마 후남편에게 회사를 그만두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의 남편의 표정은 불안하고 혼란스러워 보였으나 눈빛 속 어딘가의 안도감 같은 감정이 일렁이는 게 느껴졌다. 그는 내게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을 들었다며 오히려 고마워했다. 남편의 그 눈빛에 내 머릿속 많은 고민들이 오히려 빠르게 정리가 되었다. 인연이 다한 곳은 떠나야 한다. 고여 있던 곳을 떠나야 새로운 곳을 찾을 기회가 주어진다. 그리고 남편은 어디에서든 충분히 인정받을 사람이라는 걸 난 뿌리 깊게 믿고 있었다.
생활권을 바꿔서 모든 걸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많은 고민과 대화 후 우린 제주로 내려왔고 사람인과 잡코리아 등등에 이력서를 내면서 남편은 불안해했다. 그럴 때마다 우린 불안에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 최대한 서로 조심했고 최대한 서로 배려하면서 밤에는 술을 벌컥벌컥 들이켜며 근심 걱정을 덜어내는데 집중했다.
역시 내 남자. 제주 온 지 얼마 안 가 좋은 곳과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었다. 비록 연봉은 지금 내는 연세만큼 깎였지만 우린 제주로 이주 후 마트 말고는 쇼핑은 하지 않고 있고, 집도 팔아버려서 집 대출도 없고(카드값은 넘쳐난다 넘어가자) 배민도 시켜 먹지 않고, 게다가 난 가계부도 쓰고 있어서(사람 됐다) 줄어든 연봉만큼 소비도 많이 줄어들었다.
어느새 근무한 지 일 년이 되어가는 남편의 제2의 회사는 연봉은 줄었어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진취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곳이다. 포기한 게 있는 만큼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걸 주고 있다.
퇴근 후 저녁을 항상 함께 할 수 있는 것.
잃은 것도 많겠지만 우린 잃은 것들보다 얻게 된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다시 그때의 선택으로 돌아간다면 난 남편에게 공중제비 두 번 돌며 날려 차기로 회사를 날려버리라고 할 것이다.
나이 50에도 이직은 가능하다. 버리고 비우고 믿고 도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