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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bi미경 Nov 04. 2023

학벌콤플렉스를 때려치우다

나 글 잘 쓰는 여자야

나는 전문대 시각디자인과를 나왔다. 대기업에서 전문대 출신은 서류전형조차 통과 되지 않던때, 천운인지 특채로 입사하게 되었다. 회사에는 명문대 나온 사람들로 가득했고 그들이 해온 노력의 시간만큼 특유의 우월감과 (그들만의) 공동체 의식이 있었다. 그 시절 사내에서 만난 남자 친구도 전형적인 강남출신으로 일류대를 나온 사람이었다. 그는 옥동자를 닮은 외모를 가졌으나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었다. 그는 웬일로 본인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해 주고 싶다며 나에게 괜찮냐며 의사를 물었고 나는 신나고 재미나겠다며 흔쾌히 응했다.


회사 근처인 종로에서 당연히 볼 줄 알았건만 나는 어느새 압구정동 어느 와인바에 앉아있었다. 내 옷은 그가 제일 좋아하는 브랜드의 옷을 차려입고 옷깃에는 회사배지까지 찔러놓았다. 고작 25살 때의 난 압구정동 고급 와인바는 가본 적도 없었기에 그 분위기도 함께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어색했다. 건들면 깨질 것만 같은 와인 잔을 남친무리들은 어찌나 빙글빙글 돌려대던지 보고만 있어도 최면이 걸리는 것 같았다. 대화의 얘기는 주로 학교, 유학, 회사얘기가 대부분이었다.      


“이 자식 그때 학과에서 얼굴이며 학점이며 인기가 정말 대단했어”

“넌 언제 들어온 거야? 유학생활 너무 즐기는 거 아니야”

“우리 기업은 비전이란 게 없어. 경력이나 좀 쌓을 겸 다녀주다가 내 사업 시작해야지”      


그들의 대화 속 모든 단어에서 그들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나게 뿜어져 나왔다. 나는 그 어떤 주제에도 끼어들 수가 없었다. 그게 신경이 쓰였던지 와인 잔을 가장 잘 돌리던 한놈이 내게 말을 걸었다.    

 

“참, 형수님(내가 왜 니 형수니?) 전공이 뭐라고 하셨죠?”

“저 시각디자인과요.”

“아! 시각디자인과!! 저희 누나는 홍대에서 조소전공인데 형수님은 시각디자인과라니 여기서  누나 동문을 다 만나네요”     


 그는 끊임없이 홍대를 다니는 누나얘기를 시작했고 난 이미 홍대 졸업생이 되어있었다. 그 옆 내 남친 이란 놈도 정정을 하기는커녕 함께 열을 올리며 말을 이어갔다. 그들의 대화는 날 초라하게 만들었고 내 몸은 점점 작아들었다. 사방에서 빙글 대던 와인 잔은 내 속을 울렁거리게 만들었다. 난 결국 입을 뗐다.

     

“전 홍대에는 술만 마시러 가봤지 홍익대학교 안엔 들어가 본적도 없어요. 전 **전문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했는데 혹시 들어나 보셨을까요?”     


남친과 무리들은 당황했고 나는 말을 마친 후에도 얼굴이 벌게져있었다. 자신 있게 말은 했지만 이미 난 주눅이 들었다. 그들과 나는 같은 무리가 될 수 없음을 서로 느꼈다. 모임은 서둘러 마무리 되었고 내 속은 울분과 속상함과 창피함으로 일렁거리고 있었다. 종로로 달려와 친구와 소맥을 말아 마시며 왜 내 자존감이 바닥이 돼버린 건지 울분을 터트렸지만 학벌컴플렉스는 전혀 해소되지 못했다. 그들이 잘못한 것도 내가 잘못한 것도 없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학벌에 대한 은근한 차별은 언제나 느꼈고 오늘 그 정점을 찍은 것일 뿐이라 생각했다. 회사를 벗어나게 된다면 학벌콤플렉스는 날 쫓아다니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내 착각이었다.      


 학벌콤플렉스의 정점은 따로 있었다. 육아가 시작된 후 엄마들의 모임이었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서로의 전공을 당연하다는 듯이 물어보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대학을 나온 이가 있다면 나오지 않은 이도 있을 텐데 고졸이나 전문대생 엄마들은 세상에 없는 것처럼 말이 없었고 존재를 느낄 수 없었다. 학벌이 무엇이길래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도 그 영향력을 느껴야 하는 걸까. 엄마의 부족한 학력이 내 아이까지 저평가 받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학벌 콤플렉스를 없애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움츠러드는 학교얘기에서 당당해지고 싶었다.


육아와 공부를 병행할 수 있는 학점은행제와 사이버대학교를 여러 군데 알아보았고 이곳을 통해 4년제 학위를 따기로 결심했다. 육아 후 블로그를 하게 되면서 책과 글쓰기에 관심이 많았던 난 전공도 바꿔 사이버대학 문예창작과를 입학했고 2년 후 성적장학생으로 졸업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4년제 학위를 따고나자 어느 정도 만족감은 올라왔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사이버대학 졸업만으론 뭔가 부족했다. 나는 어디 대학 출신이라는 타이틀이 필요했다. 결국 다시 대학원준비를 했다. 힘들었지만 마지막으로 힘을 내 달려보자라는 마음으로 대학원 준비를 하게 되었고 J대 국문학과에서 결국 합격을 받아냈다. 이제 대학원을 다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또다시 2년을 조용히 공부하면 타이틀이 생기는 여자가 되는 것이다.


또다시 2년. 순간 숨이 막혀왔다. 나는 무엇 때문에 학벌에 이렇게까지 욕심을 내는 것일까. 내가 만들어내고 내가 부풀려온 콤플렉스 하나를 없애기 위해 육아도 뒷전으로 미룬 채 엄청난 학비까지 들이며 대학원을 다녀야 할 이유가 지금 정말 있는 것일까. 난 아직도 25살 그때 그 와인바에 얼굴이 벌게진 채 앉아있었다. 누가 들어도 알만한 대학을 나온 여자라는 그 한마디가 하고 싶어서 그날 그 자리에서 돌아가던 와인잔과 함께 맴돌고 있었다.     


 깊은 고민 끝에 대학원 등록을 하지 않기로 했다. 대학원에서 합격을 받고 나자 객관적 검증을 통해 나를 인정받은 것 같았고 그러자 나를 짓누르고 있던 학벌콤플렉스에서 점차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콤플렉스는 내가 만들어낸 것이고 내가 스스로를 인정해주자 더 이상 학벌에 매달리지 않게 되었다. 난 이미 지나온 과정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걸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는 글쓰는 게 행복한 사람이었다. 대학원에서 또다른 교육을 받기보단 아이를 키우며 나 자신도 함께 커가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다. 누군가에겐 학력이 더없이 소중한 조건일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글을 쓸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지 남에게 보여주기식의 학벌을 따는 시간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원하는걸 확실히 인지하자 속이 후련해졌다. 미련도 후회도 아쉬움도 남지 않았다. 


누가 뭐하는 사람이냐고 전공은 뭐냐고 묻는다 해도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나 *대 나온 여자야~!’라는 말 대신 ‘나 글 쓰는 여자야~!’ 이 한마디가 훨씬 매력적이다.

글 쓰는 포비언니, 오늘도 이렇게 매력적으로 글을 쓴다.     


어머 얼굴이 짤려도 매력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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