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드랑이 뾰루지 4기 뒤를 잇는구나
나 지금 떨고 있니. 응 심해. 거의 진상급이라 할 만큼. 숨죽여 품고 있던 나의 건강염려증은 지금 최고치를 향해 달리고 있다.
3주 전 자궁 적출 수술을 했다. 자궁근종이 너무 커져서 배 아래를 절개해서 자궁을 꺼내는 개복술을 해야 했다. 절개 부위가 커서 걱정은 됐지만 의학적 지식이야 내가 생각해 봤자 머리만 복잡해지는 것이라 그냥 깔끔히 개복하고 자궁만 잘 꺼내면 만사 오케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개복술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혈액응고가 잘 안되는 체질로 근육막에 출혈이 생겨 아랫배에 피가 차오르게 됐다. 출산을 연속 10번 정도 하는 고통과 맞먹을 수 있는 정도의 고통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뱃속에 차오른 피는 11센티 정도의 양으로 거의 삼다수 반 통 정도의 꽤 많은 양이었기에 그 피를 품고 있는 내 아랫배와 옆구리는 올챙이처럼 볼록 나와있었다. 피가 묽어지는 걸 기다려야 한다고 하셔서 퇴원 후 일주일이 지난 며칠 전 출혈된 피를 제거하러 병원을 다녀왔다.
수술이 아닌 시술이라며 조금은 불편할 수 있지만 괜찮을 거라고 말씀하시던 의사선생님의 말씀은 너무나도 착한 거짓말이셨다. 마취도 없이 뱃가죽에 구멍을 낸 후 호수를 내 배에 넣고 의학 드라마에서만 듣던 석션! 을 외치시더니 배 안을 헤집으며 출혈된 피를 뽑아내시는데 나도 모르게 으아아아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 순간 발로 간호사 선생님을 차버릴 뻔한걸 나만의 지성과 의지로 겨우겨우 참아냈다. 우여곡절 끝에 시술은 끝났고 올챙이처럼 나왔던 배는 좀 사람답게 평평한 배로 들어가 있었다. 교수님은 밝게 웃으시며 출혈이 또 생긴다면 배가 나오는 걸로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다음 주에 보자며 외래를 잡아주셨다.
잠깐만. 배가 나오는 걸로 출혈을 알 수 있다고?? 출혈이 또 될 수도 있는 거라고?? 그럼 배를 뚫어져라 볼 수뿐이 없잖아! 집으로 돌아온 후 난 배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오빠, 아까보다 배가 좀 더 나온 거 같지 않아?”
“응? 아니 비슷해 보이는데”
“아니야. 내 평소 배보다 분명 더 튀어나오고 있어.”
하루 종일 종종거리며 걱정을 하던 나는 그날 밤 옷을 갈아입다가 문득 다시 거울을 보니 분명 오늘 아침보다 내 배는 더 튀어나와 있었다.
“오빠!!! 내 배 좀 봐봐 확실히 더 튀어나왔지??”
“어? 아.. 좀 그래 보이긴 한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내일 근처 병원이라도 가서 초음파로 출혈이 있는지만 확인해 보는 게 어때.”
“흑… 어떻게… 또 출혈이 생긴 거야.. 확실해.. 또 수술하게 되면 난 정말.. 흑.."
난 좌절했다. 기운이 쪽 빠지고 온몸이 액체가 되어 흘러내리는 기분이었다. 저녁 내내 난 소파에 온몸을 걸친 채 멍한 얼굴로 걱정근심에 빠져 혼잣말을 중얼거려댔고 아이와 남편은 내 눈치를 보면서 나를 위로해 주느라 진을 뺐다.
다음날 아침 무기력에 빠진 난 이불 밖을 나오지도 못했고 아이 등교도 대신 시켜준 남편은 집으로 돌아와 절망에 빠져 뒹굴고 있는 나를 추슬러서 근처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선생님, 여차여차해서 수술을 했는데 와이프가 지금도 출혈이 있는 것 같다고 해서 확인 좀 해보려 해요”
멍하게 앉아있는 나를 대신해 남편이 병원 선생님께 설명을 해주었고 난 좀비처럼 걸어가 진료실에 누운 채 선생님께서 해주실 말씀을 기다렸다.
“음….”
“왜요 선생님... 저번처럼 출혈이 많나 봐요...”
“아, 아니요 그게 아니라 1센티 정도 피가 고여 있긴 한데 이건 출혈이라고 볼 순 없고 흡입 후 남은 피가 보이는 것 같아요. 이 정도로 배가 나온 걸 느끼신 건… 아무래도 식사를 많이 하셔서 배가 나오신 게 아닐까 싶은데요?”
“네??”
출혈로 인한 빈혈로 창백하리라 생각했던 내 얼굴은 붉게 타올랐고 남편은 또다시 할 말을 잃고 선생님께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아, 어제 와이프가 저녁을 많이 먹긴 했는데 그게 아무래도 배를 나오게 했나 보네요. 아하하하….”
병원 밖으로 나온 난 먼 하늘을 쳐다봤고 남편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어제 고등어가 빈혈에 좋다고 2마리나 먹더니 피가 아니라 고등어로 찐 뱃살이었네. 병원까지 와서 뱃살을 확인하고 싶었던 거야?”
“아니.. 그게 분명.. 배가 나와서…”
“배가 나오긴 했지. 그렇게 먹고 어떻게 배가 안 나오겠냐. 나 빨리 회사 들어가 봐야 해. 얼른 집에 들어가서 아무 생각 하지 말고 그냥 좀 자”
“으응..”
내 건강염려증은 이번에도 크게 한 건을 올렸고 남편은 이젠 익숙해질 만도 한 내 진상을 또다시 겪더니 도망치듯 회사로 달려나갔다.
난 정말 개진지했다. 고등어를 좀 많이 흡입하긴 했지만 고등어 2마리가 내 뱃살을 이렇게 차이 나게 부풀릴 줄은 몰랐다. 고등어 정도는 먹자마자 온몸으로 흡수돼서 사라지는 가벼운 생선이 아니었던가.
오늘 이 글을 쓰면서 다짐해 본다. 이제 건강염려증으로 일으키는 진상 짓은 그만해보자고. 수술 전부터 수술 후까지 필요 이상으로 걱정하느라 집안일도, 아이 케어도, 글쓰기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이러다 걱정이 걱정을 만들고 그 걱정이 나를 집어삼킬 지경이다.
자궁도 나를 잘 떠나주었고 든든한 뱃살까지 나를 지켜주고 있는데 무얼 더 걱정하고 있는 걸까. 고등어로 가득 채운 뱃살은 그만 주시하고 현재에 집중해 본다. 좋아졌고 앞으론 더욱더 좋아질 것이다. 배에 힘 가득 주고 포비 언니 파이팅.